메뉴 건너뛰기

close

ⓒ 도서출판 한길사
세계제국 로마에는 모세의 신, 아브라함의 신은 없었다. 메시아 예수는 제정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원로원으로부터 '국가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고 난 후에야 출생하였다. '신은 없었다'는 필자의 선언은 그런 이유로 옳다.

그러나 기원후 19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니체에게는 아브라함과 모세의 신, 그리고 그의 독생자 예수가 있었다. 그러니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할 수밖에. 로마를 이야기하다 갑자기 니체를 등장시킨 까닭은 필자가 <로마인이야기>를 읽으며 니체, 아니 그의 초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니체 철학의 기저는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이며 그것의 극복이다. 그는 이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에 의해 자라온 유럽 문명의 몰락과 니힐리즘의 도래를 예민하게 감득한다. 그 근대의 극복을 위해 그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피안적(彼岸的)인 것에 대신하여 차안적(此岸的)·지상적인 것을, 즉 권력에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생을 주장한다.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라는 입장에서 삶의 가치를 부정하고 권력을 쇠퇴시키는 그리스도교 도덕이나 불교 도덕을 수동적 니힐리즘이라고 하여 배척하고, 삶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긍정하면서 기성가치의 전도(顚倒)를 지향하는 능동적 니힐리즘을 제창하였다. 인간은 권력에의 의지를 체현(體現)하는 초인이라는 이상을 향하여 끊임없는 자기 극복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로마에는 모세의 신이 없었기에, 즉 내세의 구원에 기대어 현실의 의지를 박약하게 하는 신이 없었기에 로마인들은 현실을 중시할 수 있었고 인간중심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포용적 세계를 건설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문명의 충돌은 각기 다른 유일신 사상으로 무장한 세계의 충돌이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거나 지배하려 들 때 비극은 잉태한다. 카이사르가 입신의 발판으로 삼은 최고제사장은 종신직일망정 권력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로마시대의 제사는 인간을 위한 축제였지 인간을 벌하거나 규율하는 정신의 감옥은 아니었다. 중세의 성직자들이 권력화되었을 때 세상의 암흑은 도래하였다.

로마의 세계화가 중세의 십자군 전쟁이나 오늘날의 중동전 같았다면 로마는 그 장구한 세월을 영속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인간들 사이의 싸움이었기에 팍스 로마나는 가능했다. 그러나 신들의 대리전으로 변한 오늘의 전쟁은 따라서 팍스 아메리카나가 되지 못하고 세계 곳곳의 반발을 불러 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세워야 할 것은 인간의 제국이지 신들의 제국은 아닌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의한 냉전이 사라진 시대에,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곳곳에서 발생하는 테러와 전쟁에서 종교적 갈등과 반목을 걷어내기는 어렵다. 믿는 그들이야말로 죽으면 가게 될 신들의 제국을 왜 그리도 이 땅에 세우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인간이 없으면 그곳이 곧 지옥이다. 로마제국의 주춧돌이 된 카이사르도, 아버지의 제국을 반석 위에 세운 아우구스투스도 모두가 인간이었고 인간의 제국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들이 바로 니체가 말한 초인이었고 그들은 또한 권력에의 의지로 끊임없이 자기 극복을 위한 일생을 살았다.

카이사르와 그의 시민군이 갈리아의 혹한과 굶주림을 참아가며 9년이 넘는 시간을 희생한 것도, 한니발의 침공 당시(2차 포에니 전쟁) 그 긴 세월동안 로마인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국력을 한데 모으며 절치부심한 것도, 아우구스투스가 제국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딸까지 유배 보내는 아픔을 감내한 것 모두가 인간의 제국 로마를 위한 처절한 자기희생이었다.

그런 초인들의 불멸의 의지가 제국을 세우고 지켰다. 그런 다음에야 죽어서 신격(神格) 카이사르, 신격 아우구스투스가 되었다. 나는 <로마인이야기>에서 니체를 만난다. 니체의 초인에서 오늘의 지도자상을 발견한다. 그런데 세상은 어떤가? 신들은 이 세상을 언제나 지옥으로 만들고 그 대리인들은 평화를 부르짖으며 오늘도 방아쇠를 당긴다. 야누스 신전의 문을 여는 것도 닫는 것도 모두 인간임을 왜 모르는 것인지.

덧붙이는 글 | *<로마인이야기> 글쓰기 대회 응모글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로마인이야기#카이사르#아우구스투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