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사는 이아무개씨는 마이너스 통장이 생활에 아주 유용하다고 생각해 왔다.
올해 32살인 이씨는 6살인 아들과 3살인 딸을 키우는 전업주부이다. 1년 뒤 취업을 계획하고 있지만 아직은 남편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살고 있다.
남편의 연봉은 2900만 원이지만 보너스 달과 평달의 급여 차이가 100만원 가까이 된다. 이씨는 평달에 부족한 자금은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해서 사용하고, 보너스 달이 되면 메워넣는 식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처음 몇 달간은 (+)와 (-)를 오가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가 점점 늘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보너스달에 보너스를 모두 마이너스통장에 넣어도 (+)가 되지 않아요. 한번 (-)가 되니 좀처럼 회복이 안 되더군요."
이씨의 마이너스통장은 평균 (-)350만원이다. 대략 매달 2만5000원의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 큰 돈이 아닌 것 같지만 9%에 가까운 고금리 대출이다. 1년이면 30만원이며, 연봉의 1%를 갉아먹고 있다. 일반 예금이자가 5%대임을 감안하고, 이자소득세 15.4%를 감안하면 예금 금리의 두 배인 것이다.
"저도 마이너스통장을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생활을 하다보면 예상하지 못하는 지출이 있잖아요. 매달 정기적으로 지출하는 것은 예상이 되지만 꼭 예상하지 못하는 지출이 발생해서 (-)가 늘어나요. 꼭 필요하면서도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발생할 때는 마이너스통장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마이너스의 유혹
"현금서비스보다 훨씬 저렴한 이자의 마이너스통장" "○○직장인만을 위한 특별할인 마이너스통장" "월급통장으로 사용하면 추가할인 되는 마이너스통장"
위 문구는 다시 이야기하면 '당신만을 위한 특별한 빚, 고리사채보다는 저렴한 이자, 월급을 마이너스 메우는 데 사용하면 이자 0.2% 깎아줌'의 뜻이다. 언뜻 보면 마이너스통장은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해주는 금융서비스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씨의 경우처럼 마이너스통장은 부채를 양산하는 도구가 된다. 처음에는 달콤한 문구에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만들어두면 괜찮겠지, 언젠가 필요할지 몰라' 정도의 생각으로 일상적인 빚을 쓰게 되리라 생각지 않고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월급통장으로 사용하는 마이너스 통장은 불필요한 소비를 늘리고 저축을 해야 하는 불편을 참지 않게 해서 애초의 목적과 달리 마이너스 생활로 이끈다. 금융회사들의 과도한 부채 장사에 이유 없이 일상적인 빚을 끌어쓰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은행들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신용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이른 아침부터 천막까지 쳐가며 대출 세일을 하던 과열경쟁이 직장인 신용대출로 옮겨오고 있는 것이다. 그에 맞춰 요 몇달 사이 신용대출이 급증하고 있다.
가뜩이나 700조가 넘는 가계부채로 가계 재무 건전성은 심각한 수준이다. 기존의 담보대출 상환도 허덕이는 가정이 적지 않다. 심지어 상담을 하다보면 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을 위해 마이너스 통장과 신용대출을 일으키는 '네거티브 케리'에 빠진 가계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은행들의 과도한 대출세일이 다시 시작되는 것이 두려운 것은, 바로 이씨와 같이 마이너스 통장만 아니었어도 굳이 빚을 만들면서 살지 않아도 되는 가정에 빚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마이너스통장 쓰면서 부채 안 쓴다? 담배 갖고다니며 금연하는 꼴
빚 권하는 사회, 과도한 빚 장사를 하는 은행, 재테크 서적들에 점점 빚에 둔감해지는 가계가 늘어나는 것은 대단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담배를 끊으려면 담배뿐만 아니라 담배와 관련된 라이터·재떨이도 눈에 보이지 않도록 없애야 한다.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하면서 부채와 담을 쌓는다는 것은 호주머니에 담배를 지니고 다니면서 담배를 끊는다는 것과 같다.
이씨의 경우처럼 (-)가 늘어나는 원인은 대부분 비정기 지출에 있다. 정기적인 지출은 통제하기 쉽지만 비정기 지출은 예상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통제하기도 힘들다. 이씨의 경우 비정기적으로 지출하는 내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교통비 103만원(자동차 수리비 40만원, 자동차 보험료 30만원, 자동차 세금 23만원, 과태료 10만원) - 병원비 20만원(남편 보약비 10만원, 아이들 병원비 10만원), - 의류/피복 115만원(남편 의류비 30만원 이씨 의류비 20만원, 아이들 의류비 30만원, 신발 25만원, 액세서리 10만원), - 미용 70만 4천원(남편 머리손질 8만4천원, 이씨 머리손질 20만원, 아이들 머리손질 12만원, 이씨 화장품 30만원) - 가구/가사비 65만원(수선/수리비 20만원, 가구/가전교체비 30만원, 생활용품 구입비 15만원) - 교육비 42만원(담임선물 12만원, 자녀수련회 등 30만원) - 세금 9만원(재산세 8만원, 주민세 1만원) - 기타 190만원(여행 15만원, 여름휴가 20만원, 경조사비 40만원, 명절 40만원, 친구/인척 생일선물 30만원, 어버이날 15만원, 부모생신 30만원)
이처럼 월 51만2000원, 연간 614만4000원을 비정기 지출하고 있으면서도 비정기 지출에 대한 계획이 전무하다. 그나마 이씨의 경우는 비정기 지출이 양호한 편이다. 이씨의 경우 매월 정기적인 지출액 227만원의 23%지만 30%를 넘어서는 가정도 있다.
비정기 지출은 저축마저도 위협한다
비정기 지출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정기적인 지출을 중심으로 지출파악을 하다보면 대다수의 가정이 과도한 저축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정확한 지출(특히 비정기 지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저축 계획을 수립해야만 목표한 저축을 달성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저축계획을 세우기 때문에 무리한 저축으로 인해 현금흐름이 나빠지고, 결국은 중도에 저축을 해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처럼 비정기 지출은 저축을 위협하는 가장 커다란 적인 것이다.
비정기 지출에 대한 연간 계획을 수립하고, 매월 지출액이 얼마인지 계획해야 한다. 또한 비정기 지출통장을 별도로 마련하여 정기적인 지출이나 저축이 위협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씨의 경우 매월 52만원을 월급통장에서 비정기 지출 통장으로 자동이체를 하도록 하고, 비정기 지출이 발생할 시에는 계획한 범위 내에서 비정기 지출통장을 이용해서 사용하여야 한다.
비정기 지출과 더불어 저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는 긴급자금이 있다. 현대사회를 살다보면 긴급자금을 사용해야할 일이 종종 발생한다. 긴급하게 사용해야할 돈의 액수가 크지 않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수백 만원이 된다면 가정경제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긴급자금으로 대표적인 것은 자동차 사고로 인한 차량구입비나 이직으로 인한 단기간 휴직상태에 필요한 생활자금 등이 있다. 비상예비자금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면 고스란히 부채로 남을 것이다. 이처럼 비상예비자금은 가계를 운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필수 자금이다. 비상예비자금의 크기는 가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평균 가계생활비 3개월분 정도가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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