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K씨는 재테크에 관심이 없다. 30대 중반에 미혼인 그녀는 스스로 지성인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돈' '돈' 거리며 부동산과 주식·펀드 같은 금융상품에 열올리는 것이 잘못되었는 생각을 갖고 있다. 주위에서 재테크로 돈 벌었다는 이야기에도 시큰둥하다. 재테크 책을 읽느니 연애 소설책 읽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서른살부터 부모에게서 독립해 혼자 살면서 내 집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은 이 나이까지 열심히 돈 번 것 같은데 집 한칸도 마련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녀는 나름대로 검소하게 생활하고 있고 저축도 안하는 것이 아닌데 7년간의 사회생활 동안 집 한 채 갖지 못한 것이 화가 난다.
집값이 어느 순간 너무 가파르게 상승해서 빚을 끼지 않으면 집을 살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현실이 너무 짜증이 나는데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직장동료 L씨는 연신 오른 집값 자랑을 한다. 같은 동네에 사는 그는 K씨와 달리 지출도 헤프고 재테크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그는 3년 전쯤 빚을 크게 끼고 주택 마련을 했다. 그 당시 L씨는 K씨에게 앞으로는 집이 대세라며 빚을 끼고 집을 사라고 종용했다. 잠깐 고민이 되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빚에 눌려 사는 것이 싫어서 K씨는 그의 조언을 무시했다. L씨는 매일 직장에서 눈이 마주칠 때마다 K씨에게 매일 오르는 주택 가격을 자랑하며 놀리듯 이야기한다.
세상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면서도 K씨는 허탈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간 성실하게 일하고 열심히 저축해왔다. 심지어 혼자 살면서 가계부도 쓴다. 그런데 그런 성실함만으로는 뒤처지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저축에는 콧방귀 뀌며 관심도 없던 동료는 기회를 잘 잡아 자신이 노력한 몇 년을 공짜로 사는 것이다. 동료의 부동산 성공담을 들을 때마다 이유없이 가난해 지고 이유없이 불행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다들 부자되는데 나만 가난해!재테크가 크게 유행하고 부자열풍이 분다고 모두가 그 대열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상당히 많은 직장인들은 투자를 두려워하고 있고 재테크를 위해 시간내기 어려워 한다. K씨와 같이 '지나친 물신주의'라며 재테크에 부정적인 사람도 적지 않다.
투자 수익 챙기는 것보다 원금손실에 대한 걱정으로 투자를 주저하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그저 검소하게 살면서 최대한 저축하는 것만이 자신이 하는 유일한 재테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반대로 귀찮아서 혹은 돈에 관심이 없어서 재테크를 소홀히 하기도 한다.
이렇게 재테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은 집값이 크게 오르고 주가가 대세 상승 분위기로 흘러가면서 이유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중국펀드' 등 해외펀드가 고공행진을 할 때 직장 안은 온통 펀드 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순식간에 앉아서 돈 번 사람들 뿐인 것 같다. 집 한채 잘 산 것으로 앉은 자리에서 몇년치 연봉을 버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적금 통장과 가계부가 구질구질해 보이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보통 사람들은 조급함과 불안함을 느낀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던 자신의 이력이 초라해지고 자신이 성실히 뛰어가는 동안 옆에서 발빠른 사람들은 최첨단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기분이 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세계에서는 뛰어도 뛰어도 제자리인데 우리의 현실은 뛰어도 뛰어도 뒤처지는 것 같다. 절망감이 느껴지고 이제라도 독하게 재테크에 미쳐야 하는지 짜증이 밀려오고 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이다.
뒤늦은 추격 매수, 소수에게 부를 던져준다이런 조급함이나 허탈함은 때로 뒤늦게 무모한 투자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뒤늦게 머니 게임에 동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보통 사람들의 재테크는 이미 지는 게임일 수밖에 없다.
일명 '쩐모양처', 혹은 '펀드 부인'들이라 일컬어지는 재테크 귀재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재테크 책에서는 심지어 강남의 복부인에게 술을 먹이고 공인중개사와 친하게 지내며 건교부 장관이나 기타 공무원들과 자주 면담을 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아마 재테크만 놓고 보면 이 정도 해야 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조언을 보통 사람에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 대다수가 강남 복부인에게 술을 먹여 취중진담을 듣겠다고 쫓아다니는 세상이라면 이상한 나라도 한참 이상한 나라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돈이 돈이 번다는 이야기라면 펀드 부인들처럼 거액의 돈을 사적으로 모아 돈이 될 부동산이나 해외 주식과 펀드에 은행 PB를 움직여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에게 하나마나 한 이야기다. 결국 보통 사람들이 뛰어도 뛰어도 제자리는커녕 뒤처지는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어 불행을 조장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점점 재테크는 돈으로 돈을 버는 노골적인 속성을 더해 가고 있는 분위기다. 심지어 쫓아오라고 유혹하는 쉬운 돈벌이, 대박 수익의 달콤함은 뒤늦게 들어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부자들이 사모펀드로 돈을 모아 투자한 대상을 팔아치워 차익을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사모펀드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펀드 부인들은 보통사람들에게 매물을 던지고 쉽게 차익을 실현할 뿐 아니라 세제 혜택도 톡톡히 본다.
예를 들어 몇몇 아는 부자들이 자금을 모아 사모펀드를 결성한 뒤 부동산을 취득하게 되면 '1가구 2주택'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취·등록세 50% 감면은 물론 펀드가 보유 부동산을 처분할 때는 양도소득세(3년 이상 보유시)나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심지어 업계약서까지 써서 계약서 만큼의 가격으로 되판다면 당연히 계약서상 차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3년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세금을 아낄 수 있다. 설사 차익이 발생하더라도 부동산 투자 차익에 대해서도 배당소득으로 간주되므로 15.4%의 세금만 부담하면 된다.
재테크의 귀재, 고도의 재무테크닉으로 돈을 버는 사람을 보통 사람들이 독하게 미쳐서 쫓는다고 이길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심지어 보통 사람들은 이런 대열에서 미래의 가처분 소득, 즉 빚까지 전부 걸고 지는 게임을 감행한다. 사모펀드로 투자한 부동산을 보통 사람들이 빚을 내서 뒤늦게 조급한 마음과 허탈한 마음으로 저지르듯 사주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부의 재분배가 이뤄진다. 문제는 부의 재분배가 많이 가진 사람에게서 적게 가진 사람에게로 공평하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의 윤리성 상실과 쉬운 돈벌이의 유혹이 가뜩이나 불안한 미래를 사는 사람들이 미래에 써야 할 돈까지 소수 재테크 귀재들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차익을 실현하고 떠나는 소수는 좋을 수 있으나 뒤늦게 들어간 사람들은 10년 혹은 그 이상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하는 기가 막힌 현실이다.
심지어 부동산 가격이 이대로 간다면 다음 세대는 집 사는 걸 포기하고 살거나 집을 사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 비용은 이미 오래 전에 팔고 떠난 사람들의 통장에 차익으로 남아 호화생활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재테크 환상을 접어야 재테크 스트레스 없앨 수 있다새 정부 들어 논란을 빚고 있는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파문은 우리 사회의 잠자고 있는 경제와 연결된 도덕관을 말해준다. 당사자들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번 것을 탓하면 안된다, 정당한 방법으로'라고 이야기해도 여론은 '투기'라는 단어 하나에 '부도덕'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재테크, 탁월한 재테크 실력이 도덕적 순리를 지키는 것으로는 안되는 것임을 잘 아는 것이다. 정부 정책의 수집 과정, 법망을 피하는 절세법, 보통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투자 규모로 시중의 자금들을 흡입하는 고도의 재테크는 시작부터 부도덕하다.
지위를 이용하거나 이미 돈으로 사는 정보를 이용해 평범한 사람들의 순진한 재테크 자금을 탐하기 때문이다.
그런 고도의 재테크 성공담은 부러움을 지나 허탈함을 만들고 사람들을 이유없이 불행하게 만든다. 그러나 언제까지 재테크 스트레스만 호소하고 살 수 없다. 재테크 귀재들의 단기간의 놀라운 수익률에 부러운 마음을 지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적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오로지 돈만 좇는 피곤한 삶을 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재테크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법은 대박 재테크에 대한 환상을 버릴 때 가능해진다.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리 미쳐서 독해져도 재테크에서 승자의 길만 걸을 수는 없다. 그보다는 머니게임의 패자로 남을 가능성이 더 크다.
사례에서 빚으로 집에 저지른 L씨도 아직까지는 장부상의 차익일 뿐이다. 아직까지는 오른 집값 만큼 차익이 되돌아와 삶의 여유에 기여하고 있지 못하다. 매월 이자만 꼬박꼬박 나가고 있을 뿐이다. 부러울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자로 인해 생활비가 줄어 저축이 불가능한 것을 염려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