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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집 근처 탁구장에서 만난 그는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였습니다. 이 곳 탁구장에선 잘 치는 회원으로 알려져 있어 대회가 있을 때마다 선발이 되곤 했습니다. 그런 그가 탁구장에서 인기가 많은 건 탁구를 잘해서라기보다 공을 제대로 받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초보들의 의기소침함을 잘 헤아려 준다는 겁니다.

 

탁구를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공을 받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요. 상대방이 공을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받아 넘길 수 있는 확률이 달라지는데 그는 어떤 초보자라도 자신 있게 받아 칠 수 있도록 공을 넘겨 준다는 겁니다. 특히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많아 팬 클럽을 결성해도 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까요.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실력이 탄탄한 사람일수록 본인보다 잘하는 사람과 게임을 하고 싶은 게 희망사항이지요. 그러나 그는 막 배우기 시작하는 초보회원부터 수준급 선수까지 모두 다룰 다양한 실력(?)을 구비했고 상대의 마음까지 헤아려 주는 따뜻한 배려까지 갖추고 있습니다.(초보회원들은 탁구공을 라켓으로 받아 넘기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 공을 줍는 일도 웃으면서 함)

 

그래서 그에게 살짝 물었습니다.

 

“초보회원들과 하다 보면 공 줍는 일이 많은데 항상 웃으시더군요.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즐거움이지요.”

 

이 달 중순 전주시에서 주관하는 생활체육에서도 그가 쉬는 날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탁구장을 찾아갔습니다. 스물다섯 분들 틈에 그가 회원들에게 시범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담당 코치에게 찾아 온 이유(한 경사님께서 야근한 다음날 휴무를 이용해 탁구장 회원들을 돕고 있다는 )을 말씀 드린 후 한참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참 진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근 다음 날 집에서 쉬는 것보다 회원들과 함께 하는 재미에 빠져 산다는 그. 까무잡잡한 피부에 사춘기 소년 같은 수줍음이 있는 그의 웃음은 백 만불(?)값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가 경찰서에 근무하는 직원이라는 말을 코치에게 들었을 땐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경찰’ 하면 무뚝뚝함과 중후함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요?

“지금은 시민 곁으로 다가가서 편안한 마음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찰이 되기 위해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요즘 메스컴에서 보면 첨단 신종범죄들이 발생하면서 범인들도 과격해지고 있는데 경사님이 무서워 보이지 않아서 덤벼든다거나 도망가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 범인들 대부분 수그러들지요. 그리고 업무가 시작되면 긴장을 하게 되고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

 

“시골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지만 어렸을 땐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무서워서 밤에 다니는 것도 힘들어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지금은 산 사람이 무섭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업무 중 가장 기억이 남는 일은 삼십 대 초반의 남편이 도박에 빠져 가정이 파탄 될 위기에 있다는 아내의 신고를 받았을 때라고 합니다. 대화로 설득하는 과정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무릎을 꿇고 사과한 후 눈물을 흘리면서 가정으로 돌아간 그 남편의 뒷모습에 잘 살게 될 거라는 확신을 했다고 합니다.

 

"가장 절박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함께 해주고 범죄와 사고가 났을 때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사회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지켜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경찰의 존재이유가 아니겠습니까?”

 

늘 겸손한 마음으로 오수 시민의 손과 발, 그리고 따뜻한 가슴이 되어 주겠다는 다짐으로 전주에서 출근을 하고 있다는 그, 시골 주민들과 더불어 생활하다 보니 오수시민을 닮게 된 걸까요? 

 

임실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부모님의 일을 도와드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일손을 마치고 전주로 올 때면 기름값이라도 하라며 돈을 쥐어준답니다. 처음엔 안 받으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서운해 하시는 것 같아서 지금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즐거워하며 받아 온답니다.

 

1991년 입사. 현재 오수지구대 근무. 경찰은 그에게 천직이라고 말하는 한현대 경사. 그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도움이 되고 싶고 그 일로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게 생활이라며 탁구장에서 회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기쁨이었습니다.

 

나눔은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 쑥스럽고 익숙하지 않아서 어려운 일이지요.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으시면 지금 바로 용기 내어 기쁨을 충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경찰#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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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방문 후 놀랬다. 한창 나이 사십대에 썼던 글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니..새롭다. 지금은 육십 줄에 접어들었다. 쓸 수 있을까? 도전장을 올려본다.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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