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묻지도 않고 신문 준다?

서울시 서대문구 구의원이 된 후 동네의 한 통장님과 지역 사안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신문 얘기가 나왔다. 10년 이상 통장을 한 분인데, 우리 구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거의 모르고 계셔서 지역신문을 보지 않느냐고 여쭤봤더니 통장들에게는 <서울신문>만 들어온다고 했다.

그런데 본인은 <서울신문>을 거의 본 적이 없고 바로 쓰레기 처리 될 때가 많다고 한다. 반장들 일부는 <문화일보>도 받는데, 보지도 않는 신문을 왜 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소위 '계도지'의 문제를 떠나서 심각한 예산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청에서는 왜 통·반장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신문을 준단 말인가?

구의회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담당 과장에게 통·반장들에게 왜 중앙일간지인 <서울신문>과 <문화일보>를 배포하는지 물어보았다. 통반장들에게 신문을 주는 것은 구정 홍보가 목적인데, <서울신문>과 <문화일보>는 지방자치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밖에도 이름이 익숙하지 않은 7종의 지방지와 4종의 지역지를 통·반장에게 배포하거나 내방민원인 구독용으로 비치한다. 주민용 신문구독에 할애하는 예산이 2008년 기준으로 3억 8천 5백만 원이 넘는다.

담당 공무원에게 신문을 받는 통·반장들이 구청에서 주는 신문을 실제로 보는지와 현재 받아보는 신문에 대한 만족도, 어떤 신문을 보고 싶은지 등을 조사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렇게 하겠다는 답변을 받고 일이 진척되기를 기다렸으나 6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올해 12월 구의회 업무보고에서 주민용 신문구독에 대한 평가 사업의 진행 상황을 묻자, 신설된 홍보과 과장은 그 일은 각 신문사에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일을 진행시키기가 어렵다고 답변하였다.

홍보과의 처지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의회에서 정당하게 요구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니 어이가 없었다. 더구나 2007년도부터 사업예산제도가 도입되어 모든 각 사업이 타당하고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평가를 통해 예산을 수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통·반장들, 신문 만족도 높지 않아

집행부가 못한다면 의원인 나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선 내 지역구(홍제 1, 2동)의 주민용 신문 구독자 명단과 주소, 연락처를 자료로 요구하였다. 5월에 동이 통폐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주소대로의 명단이 왔고, 한 사람이 두 종의 신문을 받는 경우도 다수 발견되었다.

예산심의를 앞두고 주말을 이용하여 신문을 받는 통·반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반응을 살펴보았다. 텔레비전 뉴스와 별 다를 바가 없어 신문을 받는 것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주니까 가끔 본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올해 위촉된 한 통장은 서대문구 소식은 열심히 본다고 답변했다. 만약에 신문 구독료를 일부 자부담하라고 하면 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람부터 50%까지는 자부담을 할 의향이 있다는 답변까지 다양했다.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주민용 신문에 대해 평소 내가 가져온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사할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전화해서 물어볼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것에 비해 통·반장들은 신문을 무료로 받는 것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주민용 신문 부수를 대폭 줄이거나 필요한 사람은 일부 자부담을 하도록 해도 큰 문제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인근 구와 비교해보니 재정자립도가 높은 마포구나 인구가 많은 은평구에 비해 주민용 신문예산이 훨씬 많은 편이었다.

사업에 대한 평가가 이러한데도 2009년도 사업예산안에는 주민용 신문구독 예산이 약 6천여만원이나 증액 편성되어 있었다. 나는 행정복지위원회 예비심사에서 그동안 연구·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주민용 신문의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계수 조정을 앞두고 50% 삭감을 제안하였다.

결국 증액한 예산 대로 통과돼

예산심의를 앞두고 <서울신문> 관계자는 의회로 매일 출근하여 의원들에게 인사를 하더니 예산 심의 중에는 졸졸 따라다니며 예산안을 원안대로 해달라고 부탁해왔다. 예결특위가 시작된 날 밤늦게 전화까지 걸어와 또 봐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그렇게 부탁하지 않을 수 없는 담당자의 처지도 안타까웠지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공짜 신문을 주는 곳도 많은데, 구청에서 일괄적으로 1100부씩이나 봐주는 신문을 1만 5천 원씩 다주고 봐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주민용 신문구독 예산 증액에 대한 어떤 명분이라도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지만 잘 봐달라는 말 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예결특위가 열린 지난 18일 각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결정한 사항(상임위에서는 작년 액수로 동결하자고 결정)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의지를 재차 확인해왔던 예결특위 위원장은 그 사안에 대해 더는 언급을 하지 않은 채 표결에 부쳤다. 그 결과 구청이 낸 증액안이 통과됐다.

효과가 의문이 되는 사업에 세금을 더 쏟아붓는 이런 결정, 참으로 유감이다.

덧붙이는 글 | 서정순 기자는 서대문구 구의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주민용 신문구독, #2009 예산안 심의, #서대문구의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구의원으로 여성, 보육, 교육, 지역언론, 주민자치역량 강화 등의 실천활동을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9대7 = 16대0'이라는 걸 배웠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