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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6일(목) 청담동 프리마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글로벌코리아 국정포럼'이 열렸습니다. 이명박 정부 1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글로벌코리아2009 국제회의'와는 다릅니다.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 교우회 19대 회장단 출범식의 부대행사로 마련된 포럼입니다.

 

고대교우회보에서 학생기자로 활동하다 보니 교우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자주 참석하게 됩니다. 간혹 부대행사로 교우회 성격과 어울리는 학술회의나 자선행사를 개최하기도 하는데 이번 행사는 조금 생소합니다. "황손 이석 폐하 경복궁 환궁 시연! 황실의식 재현으로 문화국가 드높이자!"가 포럼의 주제입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손자이자 황실복원운동을 전개 중인 이석 황실문화재단 총재도 패널로 참석했습니다. 김충용 종로구청장과 임혁백 정책대학원장은 기조발표를 통해 이번 포럼의 시의적절함을 역설하며 성공을 기원했습니다.

 

 

"황실문화 복원은 대한민국의 뿌리를 찾는 일"

 

포럼은 20년 넘게 황실을 연구해온 안천 서울교대 대학원장의 주제발표와 하정효 고대 정책대학원 최고위과정 교우회장의 질문에 이석 총재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안천 원장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황실이 파괴됐고 해방 후에도 정치적 목적에 의해 왜곡된 역사가 유지되면서 황실이 잊혀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수문장 교대식을 거론하며 "주인도 없는 빈집에 수위만 잔뜩 세워놓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유구한 역사의 산실인 황실을 이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은 역사의 단절을 뜻하며 대한민국을 뿌리 없는 나무로 만드는 것이다"라며 "황실문화의 재현을 통해 문화국가시대를 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안천 원장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하정효 회장이 이석 총재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석 폐하, 자식이 있으십니까?"

"딸만 둘 있습니다."

"아들은 없습니까?"

"아들은 없지만 의친왕께서도 저를 환갑이 넘어 낳으셨으니 저도 계속 노력해 보겠습니다."(웃음)

"집은 있으십니까?"

"제 집은 아니지만 전주시에서 거처를 마련해줘 머물고 있습니다."

"수입은 얼마나 되십니까?"

"가끔 강연을 하고 20~30만 원 받는 걸로 근근이 먹고 살고 있습니다."

 

 

다소 노골적인 질문이었지만 이석 총재는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하정효 회장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명색이 황손이란 사람이 이렇게 어렵게 지내고 있다'는 점을 말하려 한 듯 보였습니다. 이석 총재는 전두환 정권에 의해 궁에서 쫓겨났던 경험과, 타지를 떠돌던 중 숭례문이 불타는 장면을 보고 펑펑 울었던 일을 이야기 하며 "국민들이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역사를 바로 세우자"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즉석에서 '아!숭례문'이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역사 바로 세워야" vs "시대착오적 발상"

 

이날 포럼에 대한 참석자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패널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크게 공감하며 박수로 화답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황실의식 재현'이라는 주제 자체를 의아해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같은 테이블에 있던 한 변호사는 "왕이 무능해서 나라가 망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재건이냐"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주최측에서도 이러한 반응을 염려한 듯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주제를 설명하는 자료에는 '황실재건(皇室再建)'이라는 말 대신 '황실의식(皇室儀式) 재현(再現)'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애써 의미를 축소했습니다.

 

발표 중간에도 하 회장은 "황실재건은 헌법을 고쳐야 하는 문제이니만큼 이번 포럼은 무형문화재로서의 황실의식 재현만을 목표로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오후 6시부터 2시간 가량 진행된 포럼은 논의한 내용을 국회 문광위에 관광문화 컨텐츠의 형식으로 제안하기로 하고 끝맺었습니다.

 

 

파격적인… 그래서 조심스러운…

 

행사를 주최한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 교우회는 순수 친목단체입니다. 사회 각계에서 정책결정에 관여하는 고위급 인사로 구성돼 있고, 다양한 정책이슈를 다루는 교과과정을 수료한 만큼 이러한 포럼을 개최하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하정효 회장은 세계총령무술진흥회 이사장과 한국전통민요협회 고문 등을 맡으며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에 힘써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당연히 황실문화와 전통문화를 연결시키는 데 관심이 컸을 것입니다. 역사와 문화를 키워드로 한 정책 제안 취지 역시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헌법체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황실과 관련한 문제를 공론화 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기구한 삶을 살아온 황손까지 초청해 놓고 황실문화를 관광자원화 하자고 주장하는 것 또한 어딘가 불편합니다.

 

40여 년 전 가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이석 총재는 최근 '아!숭례문'이 담긴 새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포럼 이틀 전에는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황실 복원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황실문화를 살려 달라고 건의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도 신청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오랜 시도 끝에 황실문제 공론화에 성공할 수 있을지, 공론화 된다면 어떤 여론이 형성될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작성자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글로벌코리아#황실#이석#하정효#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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