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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가족단위의 조문이 많았다.
특히 가족단위의 조문이 많았다. ⓒ 정찬일

경기도 과천시에서 이런 말하면 90% 이상 호응을 얻을 수 있다.

"과천정부중앙청사 이전 반대!"

이전에 따른 지역 경제의 손익계산 결과가 마이너스여서만은 아니다. 정부종합청사는 과천을 상징하는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균형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이 아이콘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지역의 반발이 안 일어날 수 없다.

게다가 재건축에 대한 각종 규제정책으로 참여정부를 향한 집주인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MB 정권이 들어선 후 땅값은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2009년 5월 23일 새벽, 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그가 생을 마감했다. 그것도 아주 비극적으로.

25일 저녁, 과천 중앙공원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관제가 아닌 민간 분향소다. 나름대로 시민단체의 활동이 비교적 활발한 지역임을 감안할 때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은 것도 이런 지역 정서를 반영한 것일까?

대한민국 전체를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놓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분향소를 찾았다.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합니다" 문구의 현수막, 작은 듯 싶은 천막 안에 웃는 영정사진을 중심으로 하얀 국화꽃이 놓여있었고 향냄새가 진동했다. 그 옆으로 추모의 글을 쓰는 책상과 고인의 동영상을 볼 수 있는 곳이 마련돼 있었다. 분향소 모습은 다른 지역과 차이가 없었다.

다른 지역 분향소와는 달리 '약간 썰렁하지 않겠나'라는 예상은 금방 빗나갔다.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 대부분은 저녁 식사 후 산책이나 운동을 하러 나왔다가  분향소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운동복 차림인 사람들이 하나 둘씩 줄을 서기 시작했고, 그 줄은 저녁 내내 끊기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도, 학원에 가던 학생들도, 바삐 퇴근길을 재촉하던 사람들도, 알콩달콩 데이트를 하던 이들도 모두 멈췄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이 모여 긴 줄을 이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차림새와 구성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공원에 차려진 분향소를 발견하곤 집으로 가 까만색 조문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분향소를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이들도 많았다. 역시 동네 분향소답게 가족단위 조문객이 주를 이뤘다. 소리 없는 울음들이 영정 앞에서 쏟아진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들 눈은 생경하다는 투다. 추모의 글을 적는 책상도 비좁았다.

이리 저리 밀리던 분향소 설치, 시민이 나섰다

그러나 이 민간 분향소가 차려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민장으로 결정된 만큼 일부 시민들이 시청에 분향소 설치를 요구했지만, 관계 공무원은 "저희들 입장도 생각해 달라"고 했다. 한나라당 출신이 시장에 있는 곳이었기에, 예상했던 답이었다. 그래도 옆 동네 안양은 시청에서 분향소를 차려 일말의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성격 급한 변경섭(44)씨와 박종수(40)씨가 시청으로 달려갔다. 공무원들의 답변은 여전히 궁색했다.

그들이 "그럼 내가 개인적으로 분향소를 만들겠다"고 제안했는데, 이번에는 공원 점용허가가 발목을 잡았다. "윗선의 결정"이라는 말과 함께 분향소 설치 문제가 이 부서 저 부서로 넘겨지기 바빴다. 박종수씨는 공무원과 싸우고 뛰쳐나갔다. 그러나 "끈질기면 이긴다"고, 결국 점용허가신청서를 작성하고 바로 승인을 받았다.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급한 대로 텐트와 국화, 사진을 구해 초라하게 차려놓고 혹시 뻘줌하지 않을까 했는데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조문할 줄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거 내가 큰일을 저질렀구나' 싶더라구요."

"혹시 노사모 아니냐?"라는 조심스런 질문에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에게 '분향소를 차리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라는 지극히 형식적인 질문은 하지 못했다. 이렇게 일이 커지자 변경섭씨는 결국 직장에 일주일짜리 휴가서를 내야 했다.

그들은 '사비가 40여만 원 들었다'고 솔직하게 공개 고백을 한 뒤 모금함을 만들었다. 모금함은 금방 채워졌고 조문에 필요한 물품들도 속속 도착했다. 이들은 금요일 새벽 0시까지 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인데, 이 기간동안 자원봉사를 해줄 사람들도 정해졌다.

"난 보수지만 노 대통령이 '희망' 준 건 인정"

 추모의 줄은 밤 늦도록 끊기지 않았다.
추모의 줄은 밤 늦도록 끊기지 않았다. ⓒ 정찬일

밤 10시 넘어서 교복을 입은 한 무리 소녀들이 분향을 하러 왔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리라. 마침 촛불이 몇 개 바닥에 놓였다.

"학생들, 혹시 작년에 시청에서 촛불 든 적이 있어?"
"나는 안 나갔는데요. 얘하고 쟤하고 나갔어요."
"야!"

소녀들은 까르르 웃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분향소 길 건너 벤치에 앉아 있는 민주당 관계자도 눈에 띄었다.

"고맙고 죄송할 따름이죠."

과천에 사는 민주당 전 중앙위원 이홍천(52)씨의 대답은 힘이 없었다. 그는 "저희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시민들 뒤에서 지원해주는 게 맞는 것 같다"며 "(그게) 서거하신 분의 뜻에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새벽 0시가 넘어가자 인적은 드문드문 이어졌다. 상주 역할을 하던 이들도 몸을 풀었다. 한 명의 범상치 않은 신사가 정장을 하고 정중히 조문을 하였다. 2004년 500여 명의 과천 시민들을 대동하고 광화문 앞에서 '정부종합청사 이전 반대 투쟁'을 진두지휘했던 조길웅(64)씨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섰던 '뉴라이트' 회원이기도 하다.

"저는 분명하게 보수이며 오른쪽에 선 사람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이 마음에 안 들었죠. 그러나 그 분은 자신의 정치 철학과 신념을 지키려는 분이었습니다. 최소한 이것 하나는 인정해야 합니다. 또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희망도 주었잖아요."

그는 말미에 "진보 진영에서 아까운 어른 한 명을 잃었다"는 말을 마치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와는 다른 측면에서 참여정부와 반대 진영에 섰던 진보신당 과천시당원협의회도 애도의 현수막을 걸었다. 현재 진보신당 당원협의회 김형탁(47) 대표 역시 참여정부 시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흥국생명에서 해고된 노동자다.

"천국에 가면, 노무현 대통령님을 뵐 거예요"

한편, 처음 분향소를 차릴 때 들었던 돈은 이미 충당했는데도 모금함은 계속 놓여 있었다. 그 이유를 묻자 이들은,

"모금함을 치웠는데 계속 성금이 들어 왔어요. 결국 받기로 했습니다. 모금한 돈으로 나무를 심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추모나무요."

어느 한 시민의 아이디어란다. 이 추모열기로 봐서는 과천에 제법 큰 나무가 심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저 과천시 부림동에 사는 한00이에요. 노.무.현. 대통령님은 착하니까 천국에 가셨을 거예요. 제가 천국에 갈지 모르지만 제가 천국에 가면 노무현 대통령님을 뵐 거예요. ♡ 사랑해요. 한00"

분향소 건너편에는 종이들이 빼곡히 걸린 채 바람에 날린다. 그 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천국에 가길 비는 과천 시민들의 마지막 인사들이 빼곡히 담겨있었다.


#과천#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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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는 질서보다 우선한다"는 홍세화님의 글을 좋아하는 회사원입니다. "모근 국민이 기자"라는 오마이뉴스의 모토에 공감하면서도 글을 쓴다는 것, 더구나 남에게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음을 알기에 기자로 등록하기가 망설여집니다. 되도록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신변잡기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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