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곤고한 시절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바보'의 두 번째 죽음을 맞고 있다. '바보'가 죽었는데 온 국민의 가슴은 기댈 곳 없는 서러움과 공허함에 온통 먹먹할 뿐이다. 이 시대는 '바보'를 찾기 힘든 진짜 '바보 같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먼저 우리는 봄기운이 싹트던 2월 16일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을 보냈다. 어려운 때라 그런지 명동성당을 휘감았던 조문 행렬은 전에 보지 못했던 하나의 신드롬이었다. 아름드리나무 같던 그분의 그늘이 사라지니 순식간에 집단적 상실감이 밀려온 것일까. 그만큼 사회가 어렵고, 불안하고, 힘들었던 게다.
'바보'의 어원을 열 달을 못 채우고 여덟 달만에 일찍 태어난 '팔삭(八朔)둥이'의 순우리말 '바사기'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울보', '먹보', '털보'와 같이 '밥'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보'가 붙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생 동안 밥만 축냈을 뿐 별로 이룬 게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모두 바보가 아닌가? 아마도 나같이 책 파는 것 이외에 별 신통한 게 없는 백면서생이나 이 시대에 잉태된 수많은 '백수들'을 일컫는 말이 아닐까.
그런데도 김수환 추기경님은 자신을 일러 "나는 바보다", "내가 제일 바보 같다"라고 말했다. 2년 전(2007) 그는 모교인 동성고 100주년 전시회에 '바보야'라고 쓴 자화상을 출품하기도 하셨다. 그가 말한 '바보'란 대중가요 가운데 '나는 바보처럼 살았군요'의 가사처럼 인생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고 결국 후회하고야 마는 덧없는 넋두리가 아니다.
한평생 진실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깊은 경륜의 끝에서 깨달을 수 있는 공허(空虛)의 진리일 것이다. 소유가 많은 사람들은 무거워 떠날 수 없으나 무소유의 경지에 이르면 바람처럼 가볍게 떠날 수 있듯이 진정한 '바보'가 되기가, 가벼운 '바람'이 되기가 결코 쉽지 않다. 2003년 서울대에서 학생들에게 했던 말은 그 '바람' 같은 '바보'의 삶을 여실히 증언해 준다.
"삶이 뭔가, 삶이 뭔가 생각하다가 너무 골똘히 생각한 나머지 기차를 탔다 이겁니다. 기차를 타고 한참 가는데 누가 지나가면서 '삶은 계란, 삶은 계란'이라고 하는 거죠. (웃음)"
그런 의미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바보 중의 바보, 진짜 바보이다. 그는 민주화 투쟁의 격변기에 의연히 방패가 되어 주었고, 빈민과 노동자들을 자식처럼 돌보며 헌신했다. 그에게는 '자신'이 없는 그런 삶이었다. 그런데 그가 죽자 그런 '인간 김수환'이 느꼈을 고독과 슬픔을 깊이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느님의 종이 되기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인간으로서 욕망과 실존적 고뇌 등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
심지어는 그의 영면 직후에 각종 사회단체와 정치세력들은 보수, 진보로 나뉘어 서로 자신들의 정치논리에 그를 도구화하기 바빴다. 심지어는 성 프란시스와 같은 '성인'의 반열에 올리기 위한 말들이 곧바로 튀어나오며 영원히 그를 미화하고 추앙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그런 영악하고 이기적인 무리들에게 모든 것을 줘 버리고 홀로 차디찬 땅 속에 말없이 묻힌 김수환 추기경은 정말 '바보'가 아닌가? 그는 평생을 스스로 자청한 '감옥' 속에서 살았기에 정말로 '바보'였다.
"내가 잘났으면 뭘 그렇게 크게 잘났겠어요. 다 같은 인간인데.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그러니 내가 제일 바보스럽게 살았는지도 몰라요.""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라며 우리들에게 '바보'처럼 살라는 유언을 남긴 그를 기념해 최근 <바보가 바보들에게>(2009.3.10.)라는 '잠언집'이 출간됐다. 그 안에 이런 말이 있다.
"자신을 불태우지 않고는 빛을 낼 수 없습니다. 빛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불태우고 희생해야 합니다. 사랑이야말로 죽기까지 가는 것, 생명까지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진정한 바보가 되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먼저 가신 추기경의 '잠언(箴言)'을 듣자마자 또 한 사람의 '바보'를 떠나보냈다. 중학교 시절 학적부에 '두뇌가 명철하고 판단력이 뛰어나지만 비타협적'이라고 기록된 노무현…. 타협할 줄 모르는 악동이었던 그는 어릴 때부터 '바보'의 떡잎이 보였다. 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 때마다 '명철한 판단력'으로 우리의 기둥이 되어줬던 김수환 추기경도 평생 하느님만 붙잡고 산 고집불통 영감이 아니었던가?
'5공 비리 청문회' 때 전두환을 매섭게 몰아치던 초선의 노무현은 무성의한 답변에 항의하며 그 자리에서 국회의원 사직서를 쓰기도 했다. 3당 합당 때는 자신의 정치적 아버지였던 김영삼에게 야합을 중지하라며 결별을 선언했다. 그의 정치 인생의 전부이자 화두였던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부산에서 연거푸 출마와 낙선을 반복한 황소고집이었다. 그는 1995년 부산시장 선거 때 이렇게 외쳤다.
"결코 굽히지 않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살아 있는 영혼이,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이 정치판에서 살아남는 증거를 여러분에게 보여주겠습니다."결국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시던 노무현은 일찌감치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그런 바보가 '대통령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국민들 앞에 당당히 나서 '바보의 도전'이라는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 후 그는 진짜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때 토해낸 말들도 3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요즘 다시 읽어보니 참으로 용감했고 바보스럽기 그지없다.
"80년대 시위하다가 감옥(監獄) 간 우리의 정의롭고 혈기 넘치는 우리 젊은 아이들에게 그 어머니들이 간곡히, 간곡히 타일렀던 그들의 가훈 역시 '야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고만 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 했던 우리 600년의 역사, 이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권력에 맞서서 당당하게! 권력을 한 번 쟁취해 보는 우리의 역사는 이루어져야만이 이제 비로소 우리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얘기할 수 있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출마 연설문 中)"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반드시 청산돼야 합니다." (2002년 대통령 취임 연설문 中)결국 '바보'가 대통령이 된 것을 인정할 수 없는 이들이 많았다. 그네들은 역시 김수환을 보내고도 그를 영영 팔아먹을 궁리만 하는 그런 종류의 영악한 무리들이었다. 탄핵에 시달려야 했고, 쉽게 고개를 돌린 지지자들의 냉소 속에서 그는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폭풍 같던 5년도 노무현은 '바보'처럼 우직하게 극복해 왔다. 그는 2007년 10월 퇴임을 앞두고 MBC와 한 인터뷰에서 그 별명이 가장 좋다고 이렇게 말했다.
"별명 중에서 '바보'가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치 하는 사람들이 바보 정신으로 정치를 하면 나라가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냥 바보 하는 게 그게 그냥 좋아요." '바보'라는 별명을 좋아하던 이 시대의 '진짜 바보'가 지금 막 우리를 떠나갔다. 김수환 추기경의 '잠언'에서 '생명까지 바치는 완전한 비움과 아픔이라야 빛을 낼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는 진짜 그렇게 바보 선배인 '김수환 추기경'의 말을 실천하고 그 뒤를 따랐다. 쫓아나선 그 여정에도 그는 남은 벗과 국민들을 걱정하며 짧은 고백만을 남겼을 뿐이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바보의 도전'이라는 한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다함세웅 신부는 기도 중에 "거룩하신 하느님. … '운명이다'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말은 철학과 신학과 인간적 고뇌가 담긴 말씀입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누구나 하는 철학적, 신학적, 인간적 고뇌를 이토록 처절하고도 절박하게 몰고 간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일본말로 한국을 말하는 '칸코쿠(韓國, かんこく)'를 많은 사람들이 잘못 발음해 '칸고쿠(かんごく)'가 되곤 한다. 그렇게 말하면 전혀 다른 뜻인 '감옥(監獄)'이 돼 버린다. 열린 사회에서 닫힌 사회로 퇴행하고 있는 한국 땅이다. 그저 평범한 농민으로 늙어가고자 고향마을에 돌아간 전직 대통령이, 고향 집을 숨막히는 감옥처럼 느끼며 마지막 생을 살아야 했다. 1년 사이에 칸코쿠(かんこく), '한국'은 그야말로 온 땅이 칸고쿠(かんごく), '감옥(監獄)'처럼 꽉 막힌 공간이 돼 버린 것 같다.
실제 노무현은 검찰 소환을 일주일여 앞뒀던 4월 21일 "저희 집은 감옥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그 다음날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습니다. 자격을 상실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려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저런 말까지 했을 때는 이미 스스로 존재할 이유를 잃어버린 껍데기에 불과했나 보다. 그의 마지막 생의 고향집을 다름 아닌 '감옥(監獄)'으로 만들어 버린 게 누군일까?
먼저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의 무관심과 냉소도 그 감옥의 철창 하나를 더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곤 가슴 한 구석이 또다시 뻥하고 뚫린다. 하지만 정희찬의 시를 읽으면서 두 사람의 '바보' 김수환 스테파노와 노무현이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여전히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곤 '나도 그들처럼 바보다, 바보다, 바보다'하면서 기도송마냥 입으로 계속 읊조려 본다. "당신도 바보인가?" 2009년 우리를 떠나간 두 '바보'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바보다- 정희찬 거룩하고 숭고한 뜻을 지니면 바보처럼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히히, 헤헤 웃을 수 있다. 높은 곳에 있지만 낮은 곳에 낮은 곳에 있지만 높은 곳에 사랑이 깊고도 넓으면 강물처럼 출렁이다가도 바람처럼 가볍게 살랑살랑 떠날 수 있다. 먼저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참 너 바보구나 싶다. 덧붙이는 글 | 그들처럼... '바보'처럼 살고 싶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