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逝去)했다. 나라 전체가 흐느껴 울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음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그는 지난 5월 6일 비공개 연구카페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책골을 넣은 선수는 쉬는 것이 도리일 것이고, 또 열심히 뛴다고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는 겸손과 책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죽음은 또한 자신이 제기한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질책이었고, 민주주의 투쟁의 지난 20여년 역사를 깡그리 지우려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마지막 저항이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으로 남겼다. 자신의 시대를 넘어 사람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유언했다. 그의 죽음은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미완의 민주주의, 역사를 되돌리는 이명박 정부

 

1987년 이래 민주주의는 하나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그 민주주의는 미완(未完)이었다. 삶의 고통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이 민주주의를 집어 삼켰다.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아래서도 국민의 삶은 여전히 고단했고, 서민의 미래 또한 암울했다. 국민 모두의 보편적 복지는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적극적으로 파악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가 이등국민을 만들어내는 동안 민주주의는 결코 완성될 수 없었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삶의 충분한 조건을 보장하는 나라, 실질적인 민주공화국의 수립과 별개의 문제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사회구성원의 공통성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를 자신과 무관한 문제로 제쳐둘 수 없기 때문이다.

 

1997년 이후 이른바 민주개혁 정부가 민주주의의 미완성을 극복할 방식을 찾지 못했지만, 이 시대의 진보세력 또한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흐름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길을 찾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도 새로운 물길을 만들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이명박 정부는 그 미완의 민주주의마저 부정하고 있다. 국민의 고단한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할 계획들을 쏟아놓고 있다. 오늘과 내일의 상식이어야 할 민주주의는 이제 '예전의 추억', '잃어버린 10년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이제, 국민의 국민다운 삶을 보장할 진정한 민주주의의 꿈은 더욱 더 멀어져 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 출발부터 역주행, 퇴행을 일삼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누가 보더라도 더 강한 사회연대성이 요구되는 곳에서도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할 뿐이었다. 심지어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었다. 덕수궁 시민분향소는 오래도록 경찰버스 차벽으로 가로막혔고, 시청광장은 꽁꽁 닫혔다.

 

그러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와 함께 해 온 국민은 삶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작년 한해 수많은 촛불을 밝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촛불의 외침은 새로운 시대의 출현을 예고하는 조짐이었다. 미완의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진정한 민주공화국 수립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맹아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 싹마저 무참히 짓이겼다. 그리고 잔혹한 보복정치를 시작했다.

 

서거를 딛고 새로운 시대로

 

다섯 명의 철거민이 피울음으로 죽어간 용산의 참극, 박종태 열사의 처절한 외침과 죽음, 전직 대통령조차 죽음으로 항변해야 하는 시대. 희망을 말하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시대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야만이 온 사회를 휘감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단순히 한 인간의 죽음으로 애도할 수 없다. 짓밟히고 있는 민주주의를 되살리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쟁취해야 한다. 그리하여 노무현 시대를 딛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 길 만이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고인이 제기한 과제를 해결하고, 고인이 넘어서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는 것만이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다.

 

고인은 지난 4월 13일 비공개 연구카페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는 진보의 정권이었는가? 제3의 길, 유럽의 진보주의 기준으로 평가해 보자. 그래도 한계는 분명하다. … 무엇이 발목을 잡았을까?" 우리는 그가 제기한 질문에 분명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만이 그의 의문을 풀고 또 그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이다. 그것만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길이다.

 

그 새로운 시대란 어떤 시대인가. 정치적 민주주의가 소생하고,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수립됨으로써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완성되는 시대다. 그리하여 국민주권이 온전히 실현되는 시대다.

 

"돈의 편이 아니라 사람의 편으로"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국민을 두 쪽으로 쪼개고, 국민의 삶의 기초조차 무너뜨려왔다. 그리고 이제 정치적 민주주의마저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가 외쳐야 할 민주주의는 이제 단순한 반독재 민주주의 수준의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국민주권은 투표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의 삶을 보장하는 실질적 민주공화국의 수립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민주주의 투쟁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정치적 민주주의도 다시 소생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야 한다.

 

고인은 올해 초 비공개 연구카페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역사가 돈의 편이 아니라 사람의 편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다만, 그 막강한 돈의 지배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다 짜내고 이를 지혜롭게 조직해야 할 것입니다."

 

1987년 이후 미완의 민주주의는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대다 지금은 좌초 위기로까지 내몰렸다.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물결을 헤치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사람의 편'으로 밀기 위해서는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해서도 돈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해법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1987년 이후 미완의 민주주의도 완성의 길로 이끌 수 있다.

 

1980년대 민주주의 운동의 결실로서의 노무현,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은 민주주의 운동의 새 장(場)을 여는 일이다. 자본의 시대, 당면의 과제는 '돈의 지배력'이 사람을 배제하지 못하도록 하고, 사람과 사람의 연대에 의해 사회적 경제가 수립되도록 하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문제는 한 시대가 '돈의 지배력'을 얼마만큼 제어하며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삶의 충분한 조건을 보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실질적인 민주공화국이 완성되는 그 날에만 비로소, 죽은 자는 산 자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금민(사회대안포럼 운영위원장, 사회당 17대 대선 후보)


태그:#노무현서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