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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과 25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SSM법 개정이 마무리되었다. 이른바 중소상인 보호 쌍둥이법이라 불리던 유통법(유통산업발전법)과 상생법(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개정안이 통과됐음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실제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개정된 법이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고 대기업과 중소상인들의 미래 전망을 논의해보자.

먼저 유통법, 재래시장과 상점가 반경 500m 규제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역마다 경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단 울산지역을 보자. 개정법 통과가 있기 일 주일 전부터 본 네트워크는 지역 재래시장 상권분석에 들어갔다(울산은 법에서 규정한 상점가가 없다). 그 결과 울산지역 43개 재래시장 가운데 84%인 36개 권역은 이미 대형마트와 SSM 등 대형유통매장이 진입을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접영향권(500m)과 간접영향권(1000m)을 막론하고 상황은 대개 비슷했다.

오히려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 지정 받을 수 없는 북구 매곡시장과 화봉시장 등 무등록 시장이 이를 피해 들어오는 대기업의 첫 번째 제물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러한 지역은 대규모 주거단지가 이제 막 형성되는 상권이고 이렇다 할 재래시장도 없는데다가 대기업이 주요 상권을 먼저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울산지역에서 유통법 개정 내용이 적용될 수 있는 지역이 얼마나 되겠는가라는 문제가 남아 있고 가장 취약한 지역이 가장 먼저 몰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무등록 시장은 하루 빨리 자치단체가 나서 등록(또는 인정)시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다음, 상생법 통과 내용을 보자. 작년에 사업조정제도가 처음 적용됐을 때 이 제도는 SSM의 확산 속도를 줄이는 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홈플러스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지역 상인과 상생한다는 명목으로 가맹사업이라는 카드를 꺼냈고 이 기만적 사업 형태는 지역 상인들이 기댈 수 있었던 유일한 제도를 무력화시켰다.

결과적으로 대기업과 중소상인 간 갈등에서 대기업이 빠지고 같은 중소상인들이 대리전을 치르는 비극이 일어났다. 각종의 민형사 고소고발이 이어지며 지역 상권은 얼룩졌고 대기업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문어발 입점이 가능해졌다. 결국 전국 상인단체들은 이러한 가맹사업의 폐해를 막기 위해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했던 허가제 도입을 후퇴 시키고(유통법에서 전통상업보존구역만 제한적으로 적용) 가맹사업 규제 운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와 정부, 상인단체가 올해 4월에 합의한 가맹사업 규제 법안이 온갖 파행으로 7개월이나 지나 통과됐다. 그동안 전국에는 수많은 가맹사업매장이 기습출점을 했고 해당 중소상인들은 쫓겨나가거나 장사를 접고 싸워야 했다. 문제는 이렇게 치열하게 싸워서 얻어낸 내용이 작년 사업조정제도를 처음 적용했던 조건으로 되돌려놨다는 정도의 수준이다. 늘 외양간 고치는 데만 이력이 난 정부의 늦장대응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다면 대기업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는가? 최근 이마트는 SSM 진출에 대한 사회적 비판 수위가 높아지고 지역유통망을 장악하려던 도매사업 진출도 좌절되자 경기도 용인에 미국계 창고형 대형할인점인 '코스트코'를 본 따 '이마트 트레이더스'라는 매장을 등장시켰다. 추세를 볼 때 이제 대형마트는 백화점 수준의 고급화 전략으로 가고 창고형 대형할인점이 춘추전국 시대를 열어갈 전망이다.

당장 울산 북구 진장동에 불어 닥친 코스트코 입점 갈등을 보라. 이러한 창고형 매장은 대형마트와는 전혀 다른 파급력을 가지고 지역 유통질서를 재편해 들어갈 것이다. 당장 유통의 동맥 역할을 했던 대리점은 고사상태에 빠질 것이고 식당에 식재료를 납품하는 자영업자들도 폐업을 각오해야 한다. 여기에 대형마트 간 출혈경쟁이 시작되면 소비자들이 그쪽 경쟁에 몰리면서 골목 슈퍼들도 고래 싸움에 또 다시 등이 터지게 될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SSM 사업은 사실상 지역의 유통질서를 장악하기 위한 대기업의 포석이고 유통질서 재편을 위한 과도기적 사업이라는 것이다. 대기업이 SSM을 지나 최종적으로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일까? 우리는 여기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온라인 배달사업이다. 대기업이 골목마다 슈퍼를 개점하는 것은 대형마트 과잉경쟁에 따른 포화상태를 해소하려는 자구책일수도 있지만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활용해서 골목 SSM을 온라인 쇼핑의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목적도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자녀들이 상품을 선택하고 엔터키만 누르면 해당 상품을 울산지역의 대형마트와 SSM에서 부모님댁으로 배달시켜주는 시스템이다. 이마트는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선언했다.

서울 강동지역 상인들이 변종 SSM인 마켓999앞에서 생존권 보호를 호소하고 있다
▲ 변종 SSM 롯데의 '마켓 999' 서울 강동지역 상인들이 변종 SSM인 마켓999앞에서 생존권 보호를 호소하고 있다
ⓒ 이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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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최근 SSM에서 한 단계 더 나간 슈퍼마켓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24시간 운영하는 복합점포 '편의형 슈퍼마켓'이다. 최근 롯데가 '마켓999'라는 이름으로 서울지역에 16개를 개점했고 규모는 대개 30~50평으로 신선식품과 가공식품, 생활용품을 990원, 1990원, 2990원 등 브랜딩 가격으로 판매한다. 품목 수는 3100여 종. 딱 잘라 이야기하면 편의점을 빙자한 슈퍼마켓이다. 더 위력적인 사실은 경기도 용인과 광주 등지에 전용 농장을 조성해서 가격 변동이 심한 채소를 1년 내내 같은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GS는 이런 형태의 소매점을 이미 350여 곳 운영하고 있고 앞으로 기존 편의점도 리모델링하겠다는 계획들이 나와 있다. 보광훼미리마트도 이런 매장을 100곳 정도 새로 오픈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이러한 공격적 마케팅에 대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개인 소매점은 전무하다. 법상 편의점으로 등록해도 되니 사업조정제도로 저지하기도 어렵다. 대기업은 곧 복합매장 사업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투자 대비 수익률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정부와 중소상인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창고형 대형할인점-대형마트-SSM-24시간 편의형 슈퍼'로 이어지는 융단폭격은 결국 지역 유통시장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재편하려 들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중소상인들은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까?

먼저 소비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손님이 들어야 상품이 나가고 상품이 나가야 신명이 나서 서비스 개선과 매장 리모델링에도 신경쓰게 될 것이다. 여기에 대한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도소매 통합물류센터'를 지역에 내려 보내고 상인들이 이를 위탁 운영하면서 자신들의 경쟁력을 키우면 된다. 여기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항은 '도소매가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다. 소매점(슈퍼마켓)의 구매력과 도매점(대리점)의 유통 노하우가 제대로 버무려져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유통업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두 번째는 자치단체의 역할이다. 법과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대기업이 사업방향을 틀면 무용지물이 된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그렇다. 현재 울산시의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례처럼 '입점예고제도'와 '출점지역조정제도'를 도입하고 대기업과 중소상인이 과도한 경쟁을 피해 서로 공존할 수 있도록 조정해 주는 것이다. 이 제도가 사업조정제도와 다른 점은 '규제'가 아니라 '공존'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①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규모점포 등의 입점예고(지역·시기·규모 등을 자치단체에 공표)
② 상권영향조사(상권영향지수는 대․중소기업 합의로 정리 + 중기중앙회 매뉴얼 활용)
③ 상권영향지수가 낮을 경우 입점 / 높을 경우 출점지역 조정권고
(중소상인 단체에서 비경쟁지역 추천+자치단체에서 레드·옐로우·그린지역 설정)
* 레드지역 : 과잉경쟁지역
* 옐로우지역 : 준경쟁지역
* 그린지역 : 비경쟁지역

세 번째는 현재 지역 상인단체들이 주로 업종별·업태별로 조직(슈퍼마켓협동조합 등)되어 있는데 이는 대기업의 공격적 마케팅에 대응하는 조직으로 활동하기에는 의사결정 구조상 속도를 따라잡기도 어렵고 주체를 조직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업종별·업태별 상인조직은 자신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개별 상인은 그 지역 공간을 중심으로 조직해 들어가야 한다. 즉 '공간과 생활을 공유하는 모든 상인들의 총합'인 '상가번영회'가 현실적인 이슈에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현재 지역 도소매 대표사업자들이 업종과 관계없이 전국유통상인연합회를 발족하고 모든 상인들을 조직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중소상인 생존권과 골목경제를 지켜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사회적 합의가 조금씩 만들어져 나가는 이때. 우리는 지역 유통업계의 미래 전망과 비전, 골목상권을 수호하겠다는 사명을 구체적으로 세워 나가고 학습하고 조직해 나가야한다. 이러한 시대에 SSM법 국회 통과로 이제 한숨 돌릴 수 있겠다고? 천만의 말씀. 지금부터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울산시민연대 웹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SSM규제, #유통법, #상생법, #대형마트, #코스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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