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이 날은 1948년,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 일컬어지는 세계인권선언문이 만들어진 날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은 올해로 6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엔 인권이 취약한 이들이 적지 않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장애인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에 장애인들이 그동안 겪은 차별과 편견을 글로 썼다. 9회에 걸쳐 연재할 '장애인 커밍아웃' 기사는 장애인들이 겪은 차별의 '커밍아웃'이다. 또한 이 글은 사회가 외면한 장애인 차별이, 장애인들에 의해 '아웃팅'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연재엔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몇몇 비장애인도 함께 했다. [편집자말]

Y형이 복지관으로 방문요청을 해왔을 때 사람들은 나더러 "조심하라"고 했다. 나도 그에 대해서는 소문을 들어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괴팍한 성격에 화를 잘 내는 사람. 심지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화를 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말벗을 해줄 자원봉사자를 요청한 것이다. 나는 문제가 있으면 찾아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복지시설 종사자의 '의무감'으로 길을 나섰다.

처음 그를 찾아갔을 때 Y형은 거실에 놓인 병원용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그는 10년 전쯤,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종일 누워서 생활하는 그에게 욕창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도와 일을 해줄 사람이 아니라 친구가 되어줄 사람을 필요로 했고 나는 가끔 찾아가서 대화하는 것 외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몇 가지 일을 부탁받고 작은 도움을 주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럴 때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휠체어에 앉아 아버지 장례식을 준비하던 Y형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나 좀 데려다 줘."

어느 해 봄, 차분한 목소리로 Y형이 말했다. 그의 아버지가 계신 곳은 해남의 노인생활시설. 휠체어를 차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광주에서 해남으로 출발했다. 떠나기 전 휠체어를 최대한 고정시켰지만 이동하는 동안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시간 동안 차를 타고 이동하느라 시달려서 힘들었을 텐데도 그는 곧장 아버지가 계시던 시설로 향했다. 그는 시설에 도착하자마자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장남으로서 마지막 도리를 다 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를 잘 치르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작정한 듯 보였다. 장례식장에 형제와 친척들이 모여들었지만 그가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후 관계가 멀어진 것 같았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부산하게 움직이며 장례식장을 계약하고, 장례물품을 구입했다.

노인생활시설과 병원을 오가며 이동을 도운 것 외에 내가 한 일은 없었다. 그저 그가 어떻게 슬픔을 이겨내는지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일을 못하고 가만히 있는 내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는 내게 우선 광주로 돌아갔다가 발인하는 날 다시 와서 도와달라고 했고 저녁 늦게 나는 광주로 돌아왔다.

이틀 뒤, 아침 일찍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장례에 관련된 모든 준비는 끝난 상태였다. 이틀 만에 만난 그는 무척 수척해져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되었다. 화장장에서 2시간 남짓 기다리는 동안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단지 가족들을 걱정하고, 형제와 조카들의 먹을 것, 마실 것을 챙길 뿐이었다. 화장이 끝나고, 휠체어에 앉은 그의 무릎 위에 유골함이 올려졌다. 유골함을 받아든 순간 잠시 정적이 흘렀고 그의 눈가에선 눈물이 비치는 듯했다. 그렇게 장례식은 끝이 났다.

며칠 뒤 그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장례가 끝난 후 보름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나를 본 그는 연신 감사인사를 건넸다.

"권 팀장, 고맙네. 덕분에 일 잘 치렀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켜봐주고, 기억해 줄 사람이 필요해. 그래서 자네가 고마워."

아버지 장례를 준비하는 동안 곁에서 함께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날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해줄 그가 더 고마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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