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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이 날은 1948년,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 일컬어지는 세계인권선언문이 만들어진 날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은 올해로 6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엔 인권이 취약한 이들이 적지 않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장애인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에 장애인들이 그동안 겪은 차별과 편견을 글로 썼다. 9회에 걸쳐 연재할 '장애인 커밍아웃' 기사는 장애인들이 겪은 차별의 '커밍아웃'이다. 또한 이 글은 사회가 외면한 장애인 차별이, 장애인들에 의해 '아웃팅'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연재엔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몇몇 비장애인도 함께 했다. [편집자말]
심하게 뒤틀려 있는 필자의 발. 발등에 볼록 튀어나온 곳은 뼈가 변형을 일으킨 것이고, 다리에는 수술로 남은 흉터 자국도 보인다.
 심하게 뒤틀려 있는 필자의 발. 발등에 볼록 튀어나온 곳은 뼈가 변형을 일으킨 것이고, 다리에는 수술로 남은 흉터 자국도 보인다.
ⓒ 공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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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장애인입니다. 동시에, 나는 또 '뇌성마비 장애인'이기도 합니다. 왜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하냐고요? 그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장애를 숨기고 앉아 있노라면 저를 장애인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때는 제가 보통사람인 거죠. 그런데 누가 내게 말을 건네거나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전 긴장해서 삐뚤빼뚤하게 말을 하거나, 걷게 됩니다. 이때 저는 장애인이 됩니다. 전 이런 제 모습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半人半馬)'라 일컫습니다.

어릴 적,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저는 세상에서 나를 제일 예뻐라 하는 엄마를 따라 의원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의원 안까지 따라 들어가지 못하는 저는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에서 인기척이 나서 기대하며 봤더니, 엄마가 아닌 흰색 가운의 의사였습니다.

"얘, 넌 어디서 왔니?"
"……"
"쯧쯧! 자 이거 갖고 가거라."

의사는 참 온화한 말투로 제게 말을 건넸고, 얼음장 같은 내 손 위에는 100원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 뒤부터였을 겁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수업시간에 제 멋대로 움직이는 손을 엉덩이 밑에다 집어넣어 안 움직이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뒤틀리는 얼굴과 힘이 들어가는 말투도 연필을 입에 물고 책을 읽으며 교정했습니다. 게다가 운 좋게도 변형됐던 다리를 펴주는 수술과 기타 뇌성마비 관련 수술을 35살 되던 해까지 17번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겉모습은 거의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마음의 안정을 잃으면 바로 중증 뇌성마비로 돌아갑니다. 뇌 속 저 깊은 곳 기저에 '운동신경계 이상'이란 것이 자리잡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장애인이라는 시선에서 탈피해 나름 비장애인들과 동등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니, 좋았습니다. 아니 신났습니다.

엄격해진 '장애판정 기준'... 고통스런 수술 참았던 게 후회스럽다

그러나 그건 한순간의 꿈이더군요. 그동안 무리하게 참아온 근육과 관절들의 통증, 그리고 수술 후유증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누구를 위한 수술이었나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게다가 겉보기에 아무렇지 않은 게 안 좋은 때도 있더군요. 이번에 국가에서는 장애등급 판정을 다시 받게끔했습니다. 장애판정이 2급 밑으로 하락하게 되면 기초생활수급과 장애연금, 활동보조, 장애인 콜택시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등급판정 기준을 엄격하게 해서 예산을 줄이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거죠.

두려웠습니다. 전 분명 신체적으로는 제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불수의(제멋대로 움직여지는 것), 경직·강직형 뇌성마비 1급인 기초생활수급권자입니다. 단지 외과적 수술로 일어설 수 있는 기능만 하나 추가 되었고, 근육의 강직을 참고, 몸이 움직이는 것을 참고, 강직을 피해 말을 할 수 있는 노하우를 쌓은 것뿐입니다.

그토록 애썼던 게 후회가 되더군요. '과연 나는 누구한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하여 그렇게 기를 쓰고 애썼던 거지?' 환상에 지나지 않았던 나의 반인반마의 꿈! 저는 장애인들에게 이제 다시는 반인반마의 꿈을 꾸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공병조님은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광주인권사무소)으로 활동하고 있다. 모니터링단은 그동안 지자체 청사 장애인 접근성 및 편의제공 여부, 공공기관 주관 지역행사 장애인 접근성 및 편의제공 여부 등을 모니터링해 왔다.



태그:#세계인권선언기념일, #12월10일,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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