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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 사진.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
ⓒ 한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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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해가 지나 할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왔다. 돌아가신 지도 3년이 넘어가는데, 아직까지 실감하지 못한다. 아직까지도 전화를 하면 반갑게 받아주실 것 같은데….

할머니보다는 할아버지에 대한 애뜻함이 많은 건 어린시절 부모님의 외면에서 받은 상처를 치료해 주셨던 분이 바로 할아버지셨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불쌍한 손녀를 위해 울면서 기도를 해주셨던 내 할아버지.

조금이라도 아픈 모습을 보이면 부랴부랴 약을 사 오시고, 밤새 손을 어루만져 주시던 내 할아버지. 다 큰 손녀 손과 발을 아직 애라며 뽀뽀해주셨던 할아버지. 오늘은 유난히 더 할아버지의 살 냄새가 그립다.

그땐 알지 못했다... '내리사랑'이 이렇게도 크게 남는지

어린시절. 친구들과 집 앞 등대에서 놀다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추운 날씨라 사람들도 많이 다니지 않았고,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은 그저 웅성거리기만 할 뿐 아무도 선뜻 나서서 구해주지 않았다. 어렸음에도 추위보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공포스럽기 그지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흐느끼는 소리에 어렵사리 눈을 떴다. 나도 모르게 정신을 잃었었나보다. 병원이었다. 알콜 냄새가 콧끝을 찌르고 따끔한 바늘이 링거임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울음을 터트렸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서글프게 우시는 건 처음이었기에 심장이 터질 듯이 아팠다.

"아버지. 우리 불쌍한 미라... 제발 깨어나게 도와주세요."

내 손은 이미 눈물로 축축해졌고,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으신 채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시며 기도를 하고 계셨다. 생의 갈림길에서 허우적거리는 손녀를 떠올리며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할아버지는 친구들의 다급한 부름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으시고 뛰어오셨던 것이다.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을 때 본인의 안전은 생각지도 않으시고 위험을 부릅쓰고 바다에 몸을 던지셨던 것이다.

어린 내겐 이 일은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또한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할배. 안 무서웠나?"
"할배 그러다가 큰일 나면 어떻게 할라했노?"
"야야, 무서울 께 뭐 있노? 나는 늙은 고목나무고 니는 그 고목나무에 핀 꽃이다. 고목나무에 꽃이 안피면 그 나무는 쓸모 없는 거다. 미라 니는 내 생의 마지막 희망인기다."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평생 잊지 못합니다

깊게파인 주름
투박하지만 따뜻했던 손
듬성듬성 윤기없는 흰머리.

할아버지 발톱 한 번만 더 깎아드릴 수 있다면...

"할아버지! 저도 그러겠지요."

저도 똑같이 당신을 닮아 조건없는 사랑으로 내 자녀에게 내 손녀에게 그렇게 얘기하겠지요.

"너는 내 늙은 고목나무에 핀 희망의 꽃이다."

라고요.


태그:#가족,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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