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오랜만에 박으로 떠난 여행길을 떠난 우리 세 식구(나와 아내와 딸)의 목적지는 남쪽으로 마냥 내려가야만 당도하는 해남의 김치마을. 김치테마마을이기에 배추밭 체험, 김치담그기, 갯벌체험도 준비돼 있었으나 우리 가족이 쌍심지를 키고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박쥐동굴 탐험이다. '김치마을에 왠 박쥐동굴?' 하겠으나, 이 마을엔 오래전부터 박쥐들이 터를 잡고 사는 유서 깊은 동굴이 있어 이름 꾀나 알려진 마을이었던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동굴이 있다는 마을 뒷산을 우러러 봤다. 좀 우려스러운 점은 반대쪽 하늘에서 예사롭지 않게 밀려오고 있는 먹구름 떼를 번갈아 봐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일행들은 체험 일정을 모두 취소하였다. 우리 딸아이보다 어린 유치원생을 둔 가족이 많아서 그런지 비바람이 덮칠지 모를 산행을 감행하기엔 무리였나 보다.
그러나 동굴 속 박쥐들과 상봉하기 위해서 서울서 먼 길 마다않고 달려온 우리 가족에게는 피하거나 다음으로 미룰 사안이 아니었다. 하긴 출발할 때부터 태풍이 전라남도를 관통할 것이라는 소식을 라디오로 내내 들으면서 왔으니까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이미 '용감한 가족'으로 충만돼 있었다고나 할까.
길잡이를 해줄, 해맑아 보이는 마을 청년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위험하기도 했지만 모두 포기한 마당에 우리 세 명만 인솔해서 올라 갈려니 고민스러웠을 게다. 어렵게 간곡한 사정과 협박(?)을 가해 우리 가족과 길잡이 청년은 특공대식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박쥐들이 산다는 동굴을 향해 가는 산길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거리였다. 오르는 길에 나무가 많이 우거지고 경사도 급했다. 특히나 미끄러운 바위들도 있어 제법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았지만 우리 기족은 열심히 올랐다. 딸아이도 이때만큼은 땡깡쟁이가 아니었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한 지 한참을 지나서야 입을 쩍 벌린 채 검은 속을 드러내고 있는 동굴이 보였다. 참으로 박쥐들께는 실례되는 일이지만 손전등을 비춰 구석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수십 마리 박쥐들을 보고야 말았다. 놀라웠다. 이 서식처를 우리가 처음 발견한 듯이 작게나마 환호성을 질렀다.
올라오길 잘했다는 뿌뜻함이 생길려는 그 순간에, 엄청난 천둥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온 산을 쪼갤 듯이 번개가 칼질을 해댔다. 장대비까지 사납게 쏟아지면서 순식간에 주위가 '전설의 고향'이나 영화 속 '공포끼' 가득한 현장으로 바뀌어버렸다. 산 속에는 우리네 사람뿐. 동굴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는 등뒤로 박쥐들 날갯짓 소리가 음산한 분위기를 더해 등골이 오싹했다. 겁에 질린 딸아이가 '으앙~' 하고 우는 상황이 되고부턴 모두 난처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비 그치길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등 뒤에서 흘겨보는 것 같은 '박쥐동굴'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갔다. 어두운데다가 천둥소리와 번개 그리고 장대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쫒기듯 내려가는 산길은 올라오던 산길이 아니었다. 이젠 산을 탈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비 쫄딱 맞고 흙투성이가 된 처절한 모습으로 내려와 마을에서 바라본 박쥐동굴의 산은 아직 먹구름에 쌓여 우리를 내려다 보는 듯했다. 우리가 저 속에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무지 더웠던 올 여름, 우리 가족의 간담을 서늘케 한 진정한 '피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