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의 달' 2월, 수많은 학교들이 졸업식을 한다. 졸업식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식순이 하나 있다. 그것은 국민의례다. 대개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순으로 진행되는 국민의례. 우리에게 국민의례는 매우 익숙하다. 물론 그만큼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국기에 대한 맹세문'이다. 그런데 졸업을 축하하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졸업식 자리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 맹세라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국민의례는 졸업식만이 아니라, 학교의 모든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다. 굳이 학교 행사가 아니더라도 지자체나 민간단체의 행사, 심지어 프로스포츠 경기에도 국민의례는 반드시 포함된다.
우리는 국민의례를 언제부터 시작한 것일까? 국민의례의 기원을 찾아보면 '국기배례'라는 말을 발견할 수 있다. 국기배례(國旗拜禮)란 '국기에 대하여 예의를 갖추어 경의의 뜻을 나타내는 일'이라는 의미로, '배례(拜禮)'라는 단어는 종교에서 사용하는 '예배(禮拜)'와 의미가 같다. 즉 국기에 대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국기에 예배를 드린다? 우리는 이러한 국기배례를 국민의례라는 이름으로 해오고 있다.
국기를 모시는 국기배례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황국신민정책'의 일환으로 신사참배와 국기배례, 순국선열 묵도를 요구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배례의 방법은 '최경례'로, 일본의 국신에게 90도로 몸을 숙여 절을 하는 형식이었다.
국기배례는 조선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요구됐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를 우상숭배로 간주하여 거부했으나, 거부한 사람들은 대부분 옥고를 치르거나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일제 말기로 접어들면서, "국기배례는 그저 '국가의식'일 뿐"이라는 자기합리화와 함께 일본 국기를 향한 국기배례에 동참하는 기독교인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의 '국기배례'가 이름만 바꿔 지금까지국기배례는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배례의 대상이 일장기에서 태극기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른바 '국기배례 거부사건'이다. 1949년 3월, 학교에서 국기배례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43명의 학생들이 퇴학을 당하자, 당시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국기배례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기배례는 "국기배례제도는 유지하되, 국기배례 명칭은 국기 주목으로 변경, '최경례'는 가슴에 손을 얹어 배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현재는 '국민의례'라는 이름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이 추가되어 현재까지 행해지고 있다.(출처 : 채기은 <한국교회사>)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국기에 대한 경례' 시 낭독된다. 이 맹세문은 1968년 충남 교육위가 자발적으로 만든 것을 시초로, 1972년 문교부가 이를 받아들여 전국 학교로 확산됐다. 당시 문교부 장관은 대한민국 초기 이승만 정권의 핵심 지도이념이라 불리는 '일민주의'와 박정희 정권의 '국민교육헌장'을 만든 안호상 박사였다.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렇게 변하였다.
초기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1974년 이후 :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2007년 이후 :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국기에 대한 맹세문의 내용은 '국가에 대한 충성맹세'나 다름없다. 우리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의례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학습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례와 같은 절차를 의무교육 기관인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실시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는 국기에 대한 맹세 자체가 없다.
국민의례 거부하는 사람들에겐 '종북'의 낙인이...
과거 유럽에는 충성맹세가 있었던 시절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중세의 왕정국가 시대였고, 충성맹세의 대상도 국왕이나 영주였다. 물론 근대에 들어서면서 유럽의 충성맹세는 사라졌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전체주의 국가(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존재했던 충성맹세들도 패전 이후 사라졌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전체주의를 겪지 않은 민주주의 국가인데도, 아직까지 국가와 국기에 대한 충성맹세를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
거기다 그런 충성맹세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종북'으로 낙인 찍기도 한다.(관련기사 :
국민의례 안 하면 빨갱이? 지금이 '나치' 시대인가) 이것은 일본의 기독교 탄압사에 등장했던 '에부미(繪踏)'와 같다.
에부미란 '그림 밟기'라는 뜻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절인 1612년 기독교 금지령과 함께 1629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일본의 기독교 탄압을 일컫는 말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이나 성모 마리아를 부조로 새겨 사람들에게 그것을 밟게 하고, 밟지 못하거나 표정에 변화가 생기면 기독교 신자로 판단하여 가차 없이 처형하는 방식이었다.
에부미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가치관만을 강요하는 '전체주의 사고'로 인해 발생했던 불행한 사건이다. 이는 게르만족의 '우수한' 혈통을 강조하며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수많은 유태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나치즘과 맥락을 같이한다. 국민의례와 충성맹세를 거부한 사람들을 특정한 '낙인'으로 대하는 것 모두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파시즘'인 셈이다.
이러한 파시즘적 사고에 대해 한양대학교 임지현 교수는 그의 저서 <우리 안의 파시즘>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신체에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저개발된 권력으로서의 군부 파시즘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더 이상 재발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또 재발한다 해도 새삼 그 폐해를 지적할 필요는 없다. (줄임) 문제는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굴종하게 만들어 일상생활의 미세한 국면에까지 지배권을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규율, (줄임) 고도화되고 숨겨진 권력 장치로서의 파시즘이다. 나는 그것을 '일상적 파시즘'이라 부르겠다.'의례'란 단어조차 찾아볼 수 없는 초·중등교육법그렇다면 초·중·고등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국민의례에는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 국민의례는 2010년 7월 27일 제정과 동시에 시행된 대통령 훈령 제272호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제5조 2항 '국민의례의 실시 권장사항'을 보면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방자치단체와 그 소속기관에 대하여,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지방교육행정기관과 '초·중등교육법', 그밖의 다른 법률에 따라 설치된 각 급 학교에 대하여 국민의례의 실시에 관한 이 훈령의 규정이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해두고 있다.
하지만 초·중등교육법에는 국민의례의 실시 근거가 없다. 심지어 '의례'라는 단어조차 찾아볼 수 없다. 교육부에 의하면 현재 국민의례는 학교장의 재량에 의해 진행되는 사항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는 일제로부터 시작된 국기배례를, 2차 세계대전 전범 국가들이 자국민과 식민지 국민들에게 강요했던 충성맹세를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무비판적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는 '국가를 사랑하자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에 의하면, 국가는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유를 보장해줘야만 한다. 하지만 국가의 의무교육 기관인 학교는 전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국민의례를 '당연한 것'으로 교육하고 있다. 국민의례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 학생들에게, 국민의례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보일까?
법적 근거도 없고 지금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게다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전체주의적 사고의 잔재인 국민의례를 우리 학생들에게 이렇게 계속 가르쳐야 하는 건지 의문을 품어볼 때다.
덧붙이는 글 | 신영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