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너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
지난 2월 15일 서울시 노원구청에서 열린 한 입시설명회.유명 강사들이 4시간 동안 '명문대 가는 법'을 강연한 직후, 한 청년이 무대 위로 올랐다. 청중들의 최종 목적지인 명문대, 그것도 서울대를 졸업한 그는, 앞선 강의들과 정반대의 얘기를 꺼냈다. "좋은 대학을 가도 또다시 경쟁에 내몰리는 건 똑같았다."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 그 청년. 바로 청소년 진로&라이프스타일 매거진 'MODU'(이하 <모두>)의 대표 권태훈씨다. 두 달 뒤 <모두> 사무실 앞 카페에서 그를 다시 만나, 청소년진로잡지 <모두>를 창간한 계기에서부터 현재의 꿈에 이르기까지의 권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권씨는 '진로고민'을 대학에 들어와서 시작했다. 그 계기는 외교부에서의 공익근무였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외교관들도 나름의 고충이 많더라고요. 이른바 '좋은 직업'의 허상에 눈을 뜬 거죠." 그는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일단 경영학 전공을 살려 컨설팅 동아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실제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선배들은 대부분 일을 그만두려 했다.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여도, 본질적으로 '남의 일'을 하는 것에서 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외교관들과 컨설턴트들의 모습을 보면서 모든 직업을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을 찾을 수 있었어요. '그 직업을 왜 갖고 싶은가? 이룬 다음에는 뭘 할 건가?'…나온 답이 창업이었어요." 그렇게 그는 직접 '나의 일'을 하기로 결심한다
권씨의 꿈은 한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최고의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외국 사람들이 코리아는 몰라도 현대·삼성은 안다는 사실은, 그에게 기업이 곧 국가경쟁력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런데 왜 그 첫 시작이 '청소년진로잡지'였을까? 그는 이왕이면 사회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돈을 벌려면, 학교 이름을 내세워서 책을 쓰거나 교육사업을 하는 게 더 쉽죠. 하지만 그러기 싫었어요. 내 회사 덕분에 사회가 발전하고, 우리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생기길 바랐죠."
평소에 느끼던 아쉬움도 한몫했다. 그는 자신이 뭘 하고싶은지도 모른 채 스펙경쟁·취업경쟁에 뛰어드는 대학생들을 보며 문제의식을 가졌다.
"그게 고등학생 때부터의 문제라고 본 거죠. 진로고민을 안 해본 채로 그냥 성적 맞춰 대학에 오니까."
그렇게 권씨는 고등학생들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창문을 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2011년 9명의 동업자와 함께 <모두>를 창간한다. 친구들과 선배들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현실 때문에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니까, 더 응원을 받은 것 같아요."
<모두>는 이후 서울시교육청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고용노동부 최우수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전국 3700개 중고등학교에 매년 20만부를 발행하는 국내 최고의 청소년 진로잡지로 우뚝 섰다. 그렇다면 <모두>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단순히 '직업' 이상의 그 어떤 것을 담으려고 노력하죠. 물론 학과나 직업에 대한 정보를 주는 코너도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권 대표의 말처럼, 실제로 <모두>는 학과정보·대학탐방 등 입시정보 외에도 '글로벌 롤모델', '직업인 인터뷰' 등의 코너를 통해 국내외 직업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너희도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합니다. 더불어 직업인들의 현실적인 고민까지 담으려고 해요. 그래서 청소년들이 자극도 받고, 더 넓은 세상에 눈을 뜰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밖에도 <모두>는 학생 표지모델을 뽑아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기회를 주고 있다.
"가장 포인트를 두고 있는 부분이에요. 일단 학생들이 재밌게 읽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의미에서 큰 힘을 주고 있죠."
그는 많은 학생들의 신청을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문득 진로매거진 대표가 생각하는 진로교육의 문제점이 궁금해졌다. 권씨는 대표적인 문제로 지역격차를 꼽았다.
"학생들의 자신감에서부터 차이가 있어요. 지방의 선생님들은 진로수업을 하기 힘들어해요. 다양한 직업인들이 오지 않으니까요."
때문에 <모두>는 공모전·축제 등 각종 청소년 행사들을 다양한 지역에 걸쳐 소개해, 지역격차를 줄이고자 한다.
한편 그는 지나친 대학의 서열화 역시 지적했다. 고등학생들이 학과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 없이 학교 이름만 보고 진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제공되는 학과정보도 매우 부족하다.
"근본적으로 학교별 정보량의 차이가 큽니다. 확실히 특목고·자사고는 정말 달라요. 당연히 그런 정보를 가진 학생들은 좋은 대학교에 갈 가능성이 높아지죠. 애초에 기회의 차이가 큰 겁니다."
권씨가 생각하는 '좋은 대학교'가 무엇인지 물었다. "대학이 결국에는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대학은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에요. 다만 명문대는 수단으로서 유리할 뿐이죠."
그는 학생들에게 대학을 자신의 꿈을 향한 관문처럼 여기라고 조언한다. 명문대에 들어간다는 건 남들보다 좀 더 유리해진다는 것이고, 들어가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건 실패가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이다.
권 대표는 <모두>가 전국의 모든 중고등학교에 배부되는 걸 꿈꾼다.
"더 많은 학생들이 '내가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꿈도 계속 가꿔나가고 있다.
"기업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느꼈죠. '이 힘든 걸 이겨내면서까지 해야 하나?' 매일 고민해요.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꿈이 진화한다고 생각해요. 안 해보면 모르잖아요. 불만족하기에 오히려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권씨에겐, 3년 전보다 더 구체화된 꿈이 있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최고의 기업'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마리아나 허핑턴이 쓴 <제 3의 성공> 서문에 이런 말이 있어요. '당신의 묘비에 어떤 말이 새겨질지 고민해라.' 묘비에는 일반적인 '성공'이 적히지 않아요. 그 사람이 1조원의 재산을 가졌다 한들, 죽었을 땐 아무 소용이 없죠. 묘비엔 그가 이웃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적혀요. 진로도 마찬가지예요. 자신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만의 성공을 재정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도 그걸 계속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청소년 진로 &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MODU' 홈페이지
www.modumagazine.co.kr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아하! 한겨레> 330호 '학생기자가 취재했어요'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