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방법
지난 5월 18일 저녁 7시, 고려대·동덕여대·성신여대 학생 40여 명이 고려대학교 학생회관 내 생활도서관에 모였다. 고려대·동덕여대·성신여대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기획단과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학생회 '정월:政月'이 공동주최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2주간 여러 대학에서 연속 진행되는 이 간담회는 용혜인 국회의원실이 주최한 '2023 대학생 소셜투어 2기: 다시, 기억하는 여행'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직접 기획했다. 소셜투어 2기는 사회적 참사를 주제로 안산 기억교실, 시청역 분향소를 직접 찾아가며 기억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활동을 이어왔다.
처음 학교에서 소셜투어 2기 포스터를 봤을 때는 '나는 과제도 많고 공부할 것도 많으니까' 하며 지나쳤다. 하지만 이상하게 자꾸 포스터 내용이 떠올라 결국 소셜투어 2기에 신청했고, 함께 간담회를 준비할 이들을 만나게 됐다. 7명의 기획단원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20대 대학생이었고, 소셜투어 활동을 함께 하며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우리는 모두 세월호 참사 추모관을 관람하며 울먹이는 사람들이었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에 공감하며 또 한 번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들이었다. 불의에 침묵하는 정부처럼 냉정한 게 아니라, 참사를 보며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따뜻한 사람들이 기획단에 모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짧은 기간 동안 행사를 치를 공간을 빌리고, 간담회를 홍보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녔다.
간담회 당일, 열 평 남짓한 공간을 40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가득 채웠다. 기획단원들은 부족한 의자를 구해오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엔 조금 작은 공간이었지만, 따뜻함은 충분했다. 북적거리고 웅성거리는 분위기를 뒤로하고 드디어 7시 10분, 간담회를 시작했다.
간담회 패널로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최보람씨의 고모 최경아씨와 고 이주영씨의 아버지 이정민씨가 바쁜 일정에도 시간을 내주셨다. 자리를 가득 채운 대학생들을 보며 최경아씨는 이태원 참사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와 대구 지하철 참사 등 그동안 있었던 사회적 참사들을 가장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대학생이라며 운을 뗐다.
대한민국이 더 안전해질 수 있도록 만들고, 그 안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뛰어놀 사람들은 바로 우리 대학생들이라고. 그러니 희생당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떠나간 친구를 기억하듯 기억해달라고.
유가족에도, 참사 기리는 대학생에도 '기억 삭제'를 강요하는 나라
간담회는 순탄하게 시작됐지만 간담회 장소를 빌릴 때 우여곡절이 많았다. 더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넓은 학내 공간을 대관하려고 했으나, 대관을 문의한 고려대학교의 여러 행정처에서 '학술적인 행사가 아니다' '외부 단체라 원칙상 불가하다'며 장소 대관을 거부했다.
심지어 간담회를 공동주최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회가 대관을 신청하자 대학 측은 장소를 못 빌려준다는 답변뿐 아니라 이태원 참사의 성격을 왜곡하는 발언이 돌아오기도 했다. 대학 본부의 냉소적인 반응 속에서 유일하게 희망이 돼 준 것이 바로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생활도서관이었다.
생활도서관에서 흔쾌히 대관을 허락해준 덕에 공간은 얻을 수 있었지만, 학교 측이 간담회를 그리 반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씁쓸하게 남았다. 아마 대학 본부는 자기 학교에서 '정치적'인 행사가 열리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인 활동, 사상 표현은 자유롭게 해도 괜찮다고 공부해왔다.
고등학생 시절 머리 싸매며 읽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선, 오히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개인이 자유롭게 사상을 표현하고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는 게 사회 발전에 도움을 준다고도 했었다. 그런데 대학은 참사의 유가족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려는 학생들에게 장소를 빌려주는 것만도 부담스러워 거부하고 있었다.
재학생들이 유가족과 만날 작은 강의실 하나 빌려주지 않는 학교의 행태를 보며 유가족들이 합동분향소를 세우고 지키고자 투쟁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야외에 분향소를 설치해서 시민들과 함께 이태원 참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서울시에 건의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녹사평역 지하 4층을 제시했다.
유가족들에겐 그것이 일종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사를 계속 기억하지 않도록, 지하에 묻어라. 그것은 얼마나 큰 상처였을까. 결국 유가족은 시청 앞 야외 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은 곳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설치했다. 어쩌면 그때 유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간담회를 위해 모인 생활도서관의 모습을 보니 비 오는 날 창백하던 시청 앞 합동분향소가 떠올랐다.
우리는 간담회를 준비하며 조용히 한 땀 한 땀 우리 생각을 들어주는 사람을 모으고, 그들에게 들려줄 우리 이야기를 모았다. 동화 <프레드릭> 속 주인공처럼, 언젠가 찾아올 겨울에 우리의 가치를 다시 평가받기 위해서. 우리의 눈물이 이해받을 날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제발 누구도 더는 눈물 흘릴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연대와 기억의 선순환을 바라며
간담회를 준비하기 전인 4월 29일에 간담회 기획단원들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해밀톤 호텔 앞 추모 장소에 들렀다. 협소하고 작은 골목길 앞에 선 기획단원들 사이에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별이 된 159명의 삶을 담기에 호텔 앞 골목은 너무 춥고 좁았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느낀 감정과 우리끼리 미처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간담회에서 풀어내고자 했다.
청중 앞에 선 최경아씨는 참사 당일부터 직후에 어떻게 지내셨냐는 물음에 "나도 아연실색할 줄 알았다"며 차분하게 서두를 뗐다. 최경아씨는 "이태원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참사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진실버스를 타고 전국을 순회했다"며 "뉴스를 통해 전해지지 않는 부분들을 유가족들의 목소리로 직접 알리기 위해 기획한 것"이라고 전했다.
담담하게 참사 직후를 이야기해나가던 최경아씨는 희생된 최보람씨가 어떤 분이었는지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테이블 아래로 떨리는 손을 조용히 숨겼다. 잠시 마음을 추스른 후, 최경아씨는 "보람이는 외로운 사람이었을 것 같다"고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최경아씨의 움직임은 부드럽고 조심스러웠으나 최보람씨를 묘사하는 목소리에서는 숨길 수 없는 여러 감정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부터 고모인 내가 보람이를 돌봐줬다"고, "그래서 외로웠을 텐데 티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최보람씨를 보듬듯 천천히 말을 꺼내던 최경아씨는 최보람씨의 자취방을 정리하다 조카가 자신에게 쓴 편지를 발견했다고 말할 때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아꼈다.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권리 보장,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법(아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제안 이유에선 10.29 이태원 참사를 '다중의 인파가 밀집할 것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재난관리책임기관들이 예방, 참사 대응 및 수습 등 전방위적 관리 및 대처를 하지 못해 발생한 사회적 재난'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참사 이후 정부는 유가족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고 장례비용 지원을 느닷없이 발표하는 등 진정성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핵심적인 고위 책임자들은 기소하지 않고 국정조사 중에는 '경찰 수사 중'을 이유로 자료를 비공개하는 등의 행위로 꼬리 자르기식 수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최경아씨는 "행정 각료라는 자리는 책임의 엄중함을 느껴야 하는 자리인데 참사 대응을 할 때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았다"고 심정을 밝혔다. 이정민씨는 "장례를 치르고 정신이 없던 와중 뉴스로 국가 애도기간을 접했다"며 "가슴 깊이 공감하고 조심스레 다가가는 게 애도인데, 정부의 애도는 배려가 부족했다"라고 지적했다.
간담회를 진행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유가족들의 연대였다. 최경아씨는 국회에서 열렸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 합창단의 공연을 보며 "잘못된 것들이 바뀌겠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맞이한 것은 여전히 차가운 현실과 정부의 외면이었다. 최경아씨는 "정부가 못하는 것은 국회가 해야 한다"며 "그래서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제를 진행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와 국정조사에서 유가족들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태원 특별법의 핵심은 이태원 참사 피해자 정의 범위 확대(희생자·유가족 외 생존자·구조자·상인 등까지, 특별법안 2조의 3), 희생자들을 기릴 수 있는 공식적인 추모 공간,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설립 촉구 등이다. 간담회 당시 유가족들은 특히 '피해자 정의 범위 확대'와 '추모 공간 마련'을 강조했다.
이정민씨는 "추모 공간은 유가족들에게 연대의 자리를 만들어 준다"며 "분향소에서 유가족들이 많은 위안과 위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녹사평역에서 시청으로 분향소를 옮길 때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녹사평역 분향소에 있을 때는 춥고 힘든 하루를 보냈"으며, "유족들이 행진하는 것을 막는다고 경찰이 세종문화회관부터 시청까지 그 일대를 전부 에워싸고 있었다"며 당시를 기억했다. 그래도 행진의 기억이 마냥 힘든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시청 앞 진입을 막는 경찰과 대신 맞부딪혀 준 시민들 덕분에 유족들이 분향소를 설치할 수 있었다고, 그래서 힘들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며 이정민씨는 유가족을 지탱하는 것은 시민들의 연대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발의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이정민씨는 "특별법 제정으로 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특별법은 꼭 필요한 절차"라고 대답했다.
특히 특별법은 일반법으로는 효력이 미치지 않는 피해자에 대한 권리 구제를 할 수 있게 규정한다. 지난 4월 20일에 발의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참사의 진상규명을 비롯해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다른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추모공간을 마련하고 정부에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등 참사에 대한 모든 사후 대처를 오롯이 직접 이끌어나가고 있다. 간담회를 준비하며 만난 유가족들은 공통적으로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이 유가족에게로 이전됐다고 말했다. 이정민씨는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죄송하다'고 한다"며 "사과해야 할 것은 정부"라고 정리했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도시 한복판에서 쓸쓸하게 별이 된 분들을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기억되고' 싶어 했다. 유가족의 의문을 풀기 위해 경찰 조사와 국정조사가 이뤄졌지만 지켜보는 국민에게도, 유가족에게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간담회를 진행하며, 유족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리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기사를 읽으며 참사의 실체는 유가족들에게 '159명 사망'이라는 객관적인 지표로 나타낼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체감했다.
유가족의 "뉴스로는 가닿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간담회에서 나눈 대화를 통해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최경아씨와 이정민씨는 간담회 동안 '기억과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정민씨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건 청년이고, 그렇기에 이태원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청년들에게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파악할 때까지 곁에서 응원과 지지를 해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많은 시민의 기억이 중요한 이유는 기억하는 일에 수반되는 사명감뿐만 아니라, 사회적 참사는 희생자가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점, 즉 근본적인 '사회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아직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던 피해자들을 위해, 잃어버린 시간의 실상을 알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이태원 특별법 제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설립되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완수될 때까지 우리는 관심의 불씨를 꺼트려서는 안 된다. 이정민씨의 말씀대로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퍼즐이 맞춰질 때까지 함께 연대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