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 수정 : 6월 2일 오후 10시 58분]

지난 5월 15일 서울대학교 86동 207호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하는 서울대학교 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는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기획단이 주최하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국회의원 용혜인이 주관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지한씨의 부모님인 조미은, 이종철씨와 기본소득당 용혜인 국회의원이 패널로 참석했다. 저녁 7시에 시작한 간담회는 유가족과의 대담에 이어, 학생들이 홍보기간과 간담회 당일에 받은 쪽지 내용을 나누는 질의응답 시간까지 밤 9시가 훌쩍 넘어 끝났다. 이 기사는 17일간의 유가족 간담회 기획 및 준비 과정부터 간담회 당일의 이야기까지를 돌아본다. 
 
 2023년 5월 15일,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간담회 당시의 무대 측 사진. 좌측부터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용혜인, 이종철 님(이지한 씨의 아버지), 조미은 님(이지한 씨의 어머니), 발제자 신준영, 발제자 조성윤.
2023년 5월 15일,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간담회 당시의 무대 측 사진. 좌측부터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용혜인, 이종철 님(이지한 씨의 아버지), 조미은 님(이지한 씨의 어머니), 발제자 신준영, 발제자 조성윤. ⓒ 소셜투어

다시, 기억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서울대학교 기획단은 국회의원 용혜인 의원실에서 주관하는 '대학생 소셜투어 2기: 다시, 기억하는 여행의 참가자들로, 5월 광주민중항쟁, 4.3 제주항쟁, 4.16 세월호 참사, 10.29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참사와 역사적 사건에 대해 공부하고, 현장을 찾아가 희생자와 생존자들의 삶의 흔적을 느껴보며, 더 나아가 사회적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기 위해 모였다.

소셜투어 참가자들은 지난 4월 자체적으로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시간을 가진 뒤, 각자가 속한 대학별로도 간담회를 열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알리는 게 좋겠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태원 참사 200일 주간을 맞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서울대학교에 속한 참가자들이 유가족 간담회를 준비하게 됐다.

유가족이 '외부인'이어서 안 된다고요?

간담회 날짜를 정하고 보니 주어진 준비 기간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6개월이 됐던 지난 4월 29일부터 간담회 당일인 5월 15일까지 총 17일이었다. 발 빠르게 간담회 질문지를 준비하고, 간담회 장소를 대관했으며, 홍보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했다.

가장 어려웠던 건 장소 대관 문제였다. 평소 학생들이 자유롭게 대관할 수 있는 학내 건물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개최'라는 사유를 적고 세미나실 대관을 신청한 결과, 유가족들이 '외부인'이라는 이유로 두 차례의 신청이 모두 반려됐다. "참석하시는 유가족 두 분만 외부인이고 진행자와 관객 모두 학내 구성원인데도 반려되느냐" "외부인이 관객으로 오는 공연은 허락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담당 직원은 "두 분만 외부인이어도 안 된다" "관객과 행사 주최 측은 다르다"는 답변을 내놨다.

외부인도 출입 가능한 다른 장소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건물만 담당하고 있어서 잘 모른다"고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 안의 공간 하나를 겨우 빌려 간담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대학 내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올린 홍보 게시글에도 일부 비난의 댓글이 달렸다. "그걸 대체 왜 여기서 하느냐" "그것이 서울대와 무슨 상관이냐" 등의 질문에 답글을 주고받다 보면 그들의 참사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표출되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한 세대 안에서도 여러 의견과 입장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참사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기에 누구와도 무관하지 않다.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같은 또래의 '세월호 세대'가 8년이 지나 이제는 10.29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와 같은 또래로 불리고 있는 현실은 참사가 끊이지 않고 반복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프고 시리다.

또한 대학이라는 공간도 그 안의 사람들도 국가의 부재로 인해 희생당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 대학이라는 공동체는 단지 지식의 전달만이 이뤄지는 곳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낼 수 있는 공간,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거듭했다. 사회적 참사에 대해 "그걸 왜 여기서 하느냐"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에브리타임에 올렸던 게시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우리의 마음은 절망적이기보단 오히려 이 간담회를 개최해야겠다는 쪽으로 더 기울었다.

대학은 무관하지 않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경험도 많았다. 간담회 개최를 알리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학내 곳곳에 포스터를 부착하고,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각종 카카오톡 채팅방에도 홍보를 진행했다. 5월 10일과 11일에는 양일간 유가족에게 질문이나 응원의 말을 쪽지를 받는 간담회 홍보부스를 운영했는데, 많은 학생들이 찾아주고 용기를 북돋아줬다.

기획단원이 아닌데도 발 벗고 나서서 부스를 함께 지켜주고, 아이스크림을 건네주고, 간담회 당일에 장소 세팅을 도와주기도 했다. <대학신문>과 <서울대저널> 등 학내 언론도 적극적으로 취재했다.

기획단원 한 명이 다른 단체 채팅방에 홍보 문구와 포스터를 올리며 "이 방의 성격과 무관한 게시물일 수 있어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그 채팅방에 속한 한 학생이 "우리와 무관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 관심을 가지고 있다. 힘내시라"는 답을 보내준 일도 있었다. 이처럼 간담회 홍보를 진행하면서 심각한 2차 가해나 비난을 듣게 될까 걱정했던 것들은 다행히 대부분 기우였다.

"내가 대한민국의 마지막 참사 유가족이었으면"
 
 간담회 도중 참사 희생자 故이지한 씨의 아버지 이종철 씨 발언 사진.
간담회 도중 참사 희생자 故이지한 씨의 아버지 이종철 씨 발언 사진. ⓒ 소셜투어
 
서울대학교 간담회에서 서울시청 앞 시민분향소가 유가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 질문에 고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는 "아이들의 집이자 조문 오시는 시민들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답했다. 서울시가 시민분향소 운영에 대해 2900만 원의 변상금을 부과하며 철거를 압박하고 있지만, 희생자의 명예가 회복되고 제대로 된 추모 공간이 생길 때까지 분향소를 옮길 수 없는 이유다.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은 '피해자'의 범위를 참사 현장에 있었던 모든 이들과 구조자들까지 넓게 규정하고 그들에 대한 정신적 구제와 생활적 구제의 방안을 마련토록 하고 있다. 이종철씨는 "특별법에는 배·보상에 대한 조항이 들어있지 않다"며 "유가족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때부터 극심했던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성 공격들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간담회 도중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용혜인의 발언 사진.
간담회 도중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용혜인의 발언 사진. ⓒ 소셜투어

패널로 함께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내가 대한민국의 마지막 참사 유가족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며 "더 이상 참사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또 다른 참사 소식을 듣게 되면 못 견딜 것 같다는 말씀"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경멸 어린 시선을 받고 싸우다 보면 다 그만두고 싶고 자식을 따라가고 싶은데, 진상 규명을 못하고 책임자 처벌도 못하고 가면 자식 얼굴 볼 자신이 없어서 계속 할 것"이라는 유가족들의 "비극적인 소망을 우리가 함께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상상해주세요, 여러분의 가족이 그 거리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면"

마지막으로 어떻게 기억하면 좋을지 청년들에게 전하는 당부를 요청하자 조미은씨는 이렇게 호소했다.
 
"상상해주십시오. 여러분의 형제가, 부모님이 그 거리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분이 그곳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지를요. 그런 상상을 바탕으로 해야 기억이 오래갈 수 있어요. 한 번 상상해주세요."

주위에 이 참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정확히 기억하고 지켜볼 수 있도록 오늘 들은 이야기를 나눠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200일, 지칠 수 없고 결코 지쳐서는 안 되는 시기다. 유가족들이 지치지 않기 위한 방법은 끝까지 함께 상상하는 것이다. 유가족의 목소리가 널리 알려지고, 국가가 이에 응답할 때까지 사회의 모든 동료 시민들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변 사람 한 명에게 알리면, 한 명이 열 명이 되고, 열 명이 백 명이 되고,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 눈을 감기 전에 진상 규명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던 유가족의 바람처럼 목소리를 내고 목소리를 듣는 것에 무책임해서는 안 된다.

서울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기획단은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우리의 책임이 간담회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닌, 간담회를 시작으로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간담회는 5월 15일부터 5월 26일까지, 서울대, 성균관대·동국대, 이화여대, 외대·시립대·한예종, 고려대·성신여대·동덕여대, 숙명여대, 인천대·인하대, 성공회대 총 14개 대학에서 8회에 걸쳐 진행됐다. 159명 희생자들의 삶이 모두 다른 모습이었듯 각기 다른 이야기로 채워진 8회의 대학별 유가족 연속간담회 후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간담회 종료 후 배석자들(이지한씨 가족 및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용혜인, 발제자들)과 참석자들 단체 사진.
간담회 종료 후 배석자들(이지한씨 가족 및 기본소득당 국회의원 용혜인, 발제자들)과 참석자들 단체 사진. ⓒ 소셜투어
 
 

#이태원 참사#10.29 이태원 참사#이태원 참사 유가족#용혜인#기본소득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더 나은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전공인 음악학 계통에서 예술 연구를 하고 있는 학부생이며, 예술이 사회와 어떻게 상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향성을 갖고 살아가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해당 기사는 댓글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