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인이가 얼마나 표정이 좋아졌게요? 힘들어 하던 표정이랑 이렇게 확 웃을 때가 극적으로 달라요. 성적으로 상장 받았을 때도 여기서 자랑하고, 사람들이 또 진심으로 많이 축하해 줬지." ('두더집' 이은애 대표)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바뀌어서 도리어 '대표님 우리 뭐 안 해요?'하고 묻기 시작하더라고요. 이제 이 아이들이 요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됐고, 이 공간이 내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더유스' 김재열 대표)
지난 10월 말, 은둔∙고립 청년들의 변화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관찰하는 이은애 두더집 청년 쉼터 대표와 김재열 더유스 대안학교 대표는 보람과 기쁨을 내비쳤다.
이처럼 일선 현장에서는 동굴에서 나오지 않는 청년들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는 데 분투하고 있었다. 이러한 청년들은 국가 통계보다 더 많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5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은둔·고립 청년 현황과 지원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19~34세 청년 가운데 2021년 고립 청년의 비율은 53만 8000명(약 5%)으로 나타났다. 학교 밖, 소외 청소년 등 은둔·고립 위험이 있는 청소년들을 발굴, 지원하는 더유스 김 대표는 위 통계에 대해 "은둔·고립 청년들은 직접 발굴하지 않는 이상 웬만한 조사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일반화를 통한 예상 수치일 가능성이 높다"며, "니트족(일할 의지가 없는 무직 청년), 고립 청년을 제외하고 집에서 아예 나오지 않는 은둔 청년들은 약 2만 명 정도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은둔·고립 청년, 자립 준비 청년 등을 돕는 두더집 이 대표 역시 국가 통계가 포착하지 못한 은둔·고립 청년들을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작년에 은평 경찰서랑 소방서, 구청 동사무소, 복지관, 고시원 총무, 1인 가구 원룸 집주인들과 '청년발굴단'이라는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며, "이분들에게 이런(은둔∙고립 청년) 친구들이 위험해 보이면 우리에게 알려달라'고 요청드리는 식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말 심각한 상황에 놓인 청년들에게는 두더집 초대와 같은 지원에 앞서 발굴 자체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또다른 문제는 한정된 예산과 사업의 지속성이었다. 두더집에서 진행하는 일 체험 사업의 경우 신청한 청년들 중 일부만 참여할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저희가 예산 한계가 있으니 (신청자들을) 모두 뽑지는 못한다"며, "약 2.5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에서 예산을 받아서 하다 보니 서울 청년만 지원이 가능하고, 경기와 인천 청년들이 문의를 많이 했지만 (지원이)안 됐다"고도 덧붙였다. 즉, 서울시에서 받은 예산으로 진행한 사업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 청년들의 경우 같은 은둔·고립을 겪고 있음에도 선정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더유스에서 운영하는 프로젝트 '퀘렌시아'는 당초 은둔형 외톨이에게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주는 프로젝트였다. 김 대표는 "작년에 경기도 공모 사업을 했을 때 (은둔형 외톨이) 100명 정도를 발굴했는데, 올해에는 예산 문제로 인해 경기도 사업 자체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처음 할 때는 3년 장기 프로젝트라고 약속했다고 기억하는데, 1년 뒤 지원이 종료됐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경기도 사업이 중단되자 공간 대여가 불가능해졌고, 퀘렌시아는 공간 대여에서 단기적인 활동 형식으로 운영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고립된 청년들이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었던 공간을 잃게 된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또 정부가 주최하는 공모 사업은 장기 프로젝트여도 1년 내외의 단기 사업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외국 같은 경우 장기 프로젝트의 규모가 10년 단위로 이루어지는데, 한국은 기본적으로 3년 내지 1년으로 진행되며 그마저도 조기 무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2009년부터 히키코모리 문제 대응을 위해 중앙부처와 중앙정부-광역지자체-기초지자체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정책 연계 시스템을 갖췄다.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와 광역지자체에는 '히키코모리지역지원센터'가 있다. 또한, 국가에서 '히키코모리 서포트 사업'을 개시해 당사자에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리고, 실태 파악과 지원 인력 파견 등을 진행한다. 장기화, 고령화된 히키코모리 문제를 국가에서 직접 구축하고 체계화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은둔·고립 청년 문제가 비교적 최근 대두되기 시작한 상황에서 이들을 정확히 발굴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심화되는 것은 시간 문제임이 자명하다.
이솔지 동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은둔·고립 청년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 차원의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은둔·고립 청년 발굴을 위한 방안으로 개인 맞춤형 전문 상담·지원을 제공하는 '스크리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은둔·고립에 대한 개념 재정의가 불분명한 점을 가장 먼저 지적했다. 그는 "현재 어디까지를 은둔·고립 청년으로 규정할 것인지 논의가 부족하다"며 "그러다 보니 지자체별로도 지원 사업이 달라지고, 실제 은둔·고립 상태에 놓인 청년도 스스로가 그런 상태에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어 발굴이 늦어지는 등의 문제가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사후 대책 외에 잠재적 은둔·고립 청년 및 학생들을 미리 발굴해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대상자 스크리닝과 이를 위한 전문 인력 확충을 강조했다.
또, 현재 정부와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지원 사업들에 대해 "기존에 이미 시행되고 있던 프로그램과 인력부터 활용해야 한다"며 "사회적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우후죽순 식으로 사업과 정책을 내놓기만 해서는 은둔·고립 청년들에게 혼란과 실망감만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