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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사춘기가 반가운 엄마가 있을까? 있다면 도인이거나 미쳤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는 그분(사춘기)이 아주 가끔 들락거리셨다. 그분이 오시면 아이가 좀 달라졌다. '할 일은 끝내고 게임해야지?'라는 내 말에 아이는 흰자를 가득 내보인 채 '참견하지 말라'고 했다. 전에 없던 그 눈빛이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좀 지나길 기다리면 원래대로 돌아왔기에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이가 중학생이 됐다. 들락날락하던 그분이 이제는 상주하신다. 어쩌다 보이던 아이의 그 흰자위는 더 자주 보이고, 점차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날도 생겼다. 답답한 마음에 단톡방을 찾는다. 

동네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엄마 천 여명이 모인 단톡방이 있다. 애들 간식 할인 정보부터 병원 추천, 학원 추천 등등 우리 동네에서 필요하고 유용한 정보가 자주 올라온다. 그중 이 방이 내게 가장 필요하고 고마운 날은 아이 일로 마음이 번잡할 때다. '이게 나만 겪는 일이 아니구나'라고 공감을 받곤 한다. 

'내 일에 참견하지 말라'는 아이 말을 듣고 마음이 답답해진 어떤 엄마는 바람 쐬러 동해로 뛴다고도 했다. 저 멀리 동해까지는 가지 못하는 나는, 덕분에 집 앞 공원을 뛰면서 여기가 동해라고 나를 세뇌하기도 했다.
 
단톡방을 보면 나만 답답한 게 아니구나 싶어 위로 받는다
 단톡방을 보면 나만 답답한 게 아니구나 싶어 위로 받는다
ⓒ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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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중1 엄마가 단톡방에 SOS를 친 적이 있다. 애가 엄마랑 싸우고 나가더니 자정이 되도록 안 들어온다며,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다른 중3 엄마가 동네 커뮤니티 센터 계단 쪽에 바람이 안 드니 가보라고 조언했고, 그 당사자는 아이를 정말 거기서 찾았단다. 한참 그러다 좋아지는 날도 있으니, 좀 기다려보자는 랜선 토닥임이 이어졌다. 

또 다른 날은, 아이가 초등학생도 아닌데 학교 준비물 챙기는 걸로 이렇게 싸워야 하냐는 하소연과 더불어 '저희 아이는 학교에 책가방을 놔두고 빈 몸으로 등교한다'는 톡이 올라온 날도 있다. 가방은 가지고 다니는 아이에게 나는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방은 갖고 다니는 딸에게 (속으로) 감사 인사를 한다
 가방은 갖고 다니는 딸에게 (속으로) 감사 인사를 한다
ⓒ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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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톡방이 잠깐의 위로는 되지만 근본 해결은 되지 못하니, 공부하듯 청소년 발달 책을 뒤졌다. 가장 이해가 쉬운 책은 김붕년 교수님의 <10대 놀라운 뇌, 불안한 뇌, 아픈 뇌>였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는 시기

사춘기는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이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는 시기란다. 리모델링은 기존 구조물을 어느 정도 부서뜨려야 진행되는지라 전두엽도 그동안은 퇴화한다. '가끔은 중학생이 7살보다 못하다'라는 단톡방 한탄은 이토록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반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성별 관계없이 왕성해져서 편도체를 자극한다. 편도체는 본능이 최우선인 기관이고 과한 테스토스테론은 공격성을 부추긴다. '중학생은 쌈닭'이라는 단톡방 한탄 또한 그토록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전두엽이 활성화되고 편도체가 안정화가 되어야 한다는데, 사춘기 시절에는 정확하게 이 반대가 된다. 뭘 특별히 하지 않아도 생물학적 구조 자체가 속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가뜩이나 낯선 속 시끄러움도 벅찬데 입시 압박까지 있는 한국 사회를 살아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냐고, 그러니 부모는 청소년기를 안쓰러운 마음으로 봐줘야 한다는 게 책의 결론이었다. 이 시기를 잘 지내야 리모델링을 마치고 멋진 모습이 될 거라고 한다. 정말이지 믿고 싶은 말이었다.
 
사춘기 뇌 발달을 알면 아이를 이해할 수 있다, 있나?
▲ 아이도 고생이다 사춘기 뇌 발달을 알면 아이를 이해할 수 있다, 있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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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10분이면 들통날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를 무시하는 건가 싶어서 더 화가 났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저 핸드폰을 더 해야겠다는 편도체의 단순 본능을 전두엽이 진정시키지 못해서였다. 

부모가 화를 내면, 사춘기 뇌는 생존 본능만 더 자극되어서 나쁜 기억(나를 공격하는 부모)만 남는단다. 짧고 건조하게 '나 메시지'(상대를 탓하는 대신 내 감정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로 부모의 감정을 전하고 끝내는 게 가장 좋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엄마도 속상해. 다음부터는 안 그랬으면 좋겠다."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사춘기가 끝나지 않는 한 앞으로 또 그럴 거다. 그러니 결국은 내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야 한다,라고 쓰고 싶은데 그 마음이 쉽게 가져지진 않는다. 나는 이리 동동거리는데 아이는 '어, 알았어.' 건조한 한마디만 남기고 방으로 휙 들어간다. 쫓아가서 '그게 알았다는 사람 태도냐!'라고 쏘아붙이고 싶은데... 마침 책에서 또 한 방 먹는다. 

"태도에 집중하지 말고 콘텐츠만 보세요." 

'그러지 말라'는 말에 '알았다'라고 했으면, 내용으로는 이상 없으니 넘어가라는 뜻이다. 다른 엄마는, 다른 부모는 그게 잘 되나? 이걸로 다시 혈압이 오르는 나는 자격이 없는 걸까? 자괴감에 빠지려고 하면 책이 또 다독인다. 

"부모 잘못은 아닙니다. 그저 발달 과정의 일부일 뿐입니다." 

아이 사춘기 덕에 어른인 나도 감정 조절법을 다시 배운다. 내가 아이에게 종종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도, 감정은 덜어내고 사실관계만 건조하게 말하는 대화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았다. 새로운 나를 힘차게 배우고 더 힘차게 자빠진다. 

나와 아이가 그저 싸움 속에 머무르는 관계가 되지 않도록, 아이를 더 이해하고 싶어서, 오늘도 꾸역꾸역 책을 읽으며 되뇐다. 반가워 사춘기!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올라갑니다.


태그:#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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