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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큰아이가 영어학원을 두 번 가더니 "엄마한테 배우는 게 낫겠다"라고 했다. 미취학 때도 엄마표 영어를 한 적이 없는데 이제 와서 엄마표를 하겠다고?

아이 학원 시간은 '배움'이라는 1차 목표보다 '내 눈에서 안 보여서 평화가 온다'라는 2차 목표가 더 절실했다. 맞다. 배움은 둘째고 돈 주고 얻는 평화였다. 그렇다고 애가 에미랑 공부하겠다는데 거절할 수 없는 터, 더군다나 영어는 학교 졸업한 후에도 희미하게나마 붙들고 있는 유일한 과목 아닌가.

시험 범위가 수동태와 주격 관계대명사다. 본문이 술술 읽힌다. 오우, 나 아직 안 죽었어! 학교 프린트를 보니 능동태와 수동태 문장 변환을 테스트하는가 보다. 이건 그냥 공식대로 하면 간단하다. 

나만 간단했나. 아이는 자잘한 데서 계속 틀렸다. '3인칭 단수 주어 뒤 동사에 S 붙이는 건 1학년 과정이잖아!'라며 타박하고 싶지만 입을 닫는다. 타박하는 순간, 이 시간은 선명하게 망하기 때문이다. '문장 변환할 때는 시제, 인칭, 수일치 모두 확인하자'라고 50번째 덤덤하게 말한다.

이 수업을 한글 폰트로 만든다면 '휴먼덤덤흉내체' 정도가 될 거 같다. '휴먼덤덤흉내체'로 영어 수업을 두 번 했다. 흉내내느라 다정하진 못했는데 아이가 수학도 나랑 하겠단다. 나는 수무자다. 수학이 무섭다. 아이 말은 날벼락이었다. 

수학 시험범위에 일차방정식 활용이 들어간다. 철수는 시속 얼마로 여기서 출발, 영희는 시속 얼마로 저기서 출발하면 둘이 언제 만날까 그런 문제다. 철수랑 영희랑 카톡으로 확인하세요,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내 마음이 딱 이랬다
내 마음이 딱 이랬다 ⓒ 학교 엄마들 단톡방에 올라왔던 이미지
 
에미가 차마 카톡 운운할 수는 없어서 수학책을 사왔다. 참담한 마음으로 문제를 보는데 문자가 띠링거린다. 두 과목 학원비 68만 원이 환불됐다. 참담은 가고 찬란이 오는 순간이다. 6월 초에 결단을 내려서 전액 환불을 이끈 아이에게 고마워진다.

힘차게 답지를 펼쳐서 냅다 외워버렸다. 올림피아드 문제 풀 일 없으니 이정도 정성으로도 얼추 수습된다. 철수와 영희가 더 복잡한 짓을 하면 남편을 부른다. 공대 나온 남편이 세상 위대한 날이다. 7월 초에 있을 기말고사를 그렇게 준비한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feat. 지오디, 길) 엄마랑 하는 시험공부가 학원보다 낫다고, 사춘기 아이가 증언하니 이 길을 계속 가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올라갑니다


#반갑다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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