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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시 진월면에 있는 정병욱 선생 가옥은 2007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다. 광양시는 주변 부지를 매입해 정병욱 선생 가옥을 관광자원화했다. 가옥 뒤편으로 윤동주의 대표작 서시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광양시 진월면에 있는 정병욱 선생 가옥은 2007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다. 광양시는 주변 부지를 매입해 정병욱 선생 가옥을 관광자원화했다. 가옥 뒤편으로 윤동주의 대표작 서시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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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가 낳은 대학자 정병욱 선생을 아십니까? 정병욱 선생은 1922년 설천 문항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정병욱 선생의 부친 정남섭 지사는 3·1독립운동에 참가한 애국지사 입니다. 그의 가족은 정병욱 선생이 7세 때인 1927년, 부친 정남섭 지사가 하동으로 교원 발령이 나자 하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 뒤 1934년 부친이 양조사업을 하기 위해 광양 진월면 망덕포구로 집을 옮기자 또 한 번 터를 옮겼습니다.

정병욱 선생은 민족시인 윤동주의 벗이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건네준 시집 원고를 간직하다 1948년 지인들과 함께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펴냈습니다. 정병욱 선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주옥같은 윤동주의 시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윤동주 시 원고를 숨겨 두었던 광양 망덕포구의 정병욱 선생의 가옥은 2007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으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그가 태어난 설천 문항마을에는 정병욱 선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자는 4월 21일과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 있는 정병욱 선생의 본가와 생가가 있었던 설천 문항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또한 5월 17일 송홍주 남해문학회장과 함께 망덕포구를 한 차례 더 답사했습니다. 송홍주 회장은 기자보다 앞서 4월 14일에도 이곳을 찾은 적도 있습니다.

윤동주 시 원고 숨겨진 가옥
 
설천면 문항마을 정병욱 선생 생가는 도로 확장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정병욱 박사를 하동 출신으로 소개하고 있다. 정병욱 박사가 남해 출신임을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설천면 문항마을 정병욱 선생 생가는 도로 확장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정병욱 박사를 하동 출신으로 소개하고 있다. 정병욱 박사가 남해 출신임을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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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은 윤동주 시인이 자필로 쓴 시집이 숨겨져 있었던 곳이다. 윤동주(1917~1945)는 1941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했으나, 일제의 탄압을 걱정한 스승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윤동주는 유필 시집 세 권을 만들어 그중 한 권을 벗 정병욱에게 주었다. 시집은 정병욱 가옥에 어렵게 보존되다가, 광복 후 1948년 출판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에는 명주 보자기에 싼 유고를 항아리에 담아 마룻바닥 아래 간직한 당시 상황이 재현돼 있다.

 
정병욱 선생 모친은 아들의 당부를 지키느라 윤동주 원고를 마루 밑에 숨겨 두었다.
 정병욱 선생 모친은 아들의 당부를 지키느라 윤동주 원고를 마루 밑에 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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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시는 2010년 윤동주와 정병욱의 인연을 기념하기 위해 윤동주와 망덕포구 시비를 가옥 부근에 세웠다. 가옥으로부터 500m 떨어진 곳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31편 전편을 시비로 아로새긴 `윤동주 시 정원`이 있다. 망덕포구와 배알도 섬 정원을 잇는 해상보도교 명칭도 윤동주의 대표작 `별 헤는 밤`을 모티브로 `별헤는다리`로 명명하는 등 윤동주의 시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 광양시는 광양과 중국, 일본 등 윤동주의 발자취를 잇는 윤동주 테마 관광상품을 운영하고 여행사와 개별관광객 등에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등 광양과 윤동주의 관계성을 지속적으로 브랜딩하고 있다.

 
망덕포구 주변에 정병욱 선생의 애정으로 세상에 나온 윤동주 시들이 길게 놓여 있다.
 망덕포구 주변에 정병욱 선생의 애정으로 세상에 나온 윤동주 시들이 길게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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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문화관광해설사광양시협회는 2022년 4월 정병욱 박사 탄생 100주년을 기려 '윤동주 시를 품어 세상을 밝힌 정병욱 가옥 망덕포구에서 영원히 빛나라'는 의미로 행사를 열었다. 주말에는 지역 문화인들이 이 곳을 찾는 이들을 환영한다. 기자가 찾은 4월 2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색소폰동우회 소울(SOUL)의 공연이 있었다. 광양시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이 가옥을 찾는 발길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고 한다. 
 
2022년 정병욱 박사 탄생 100년을 기리는 행사가 있었다.
 2022년 정병욱 박사 탄생 100년을 기리는 행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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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옥은 2007년 국가등록문화유산 제341호로 등록됐다.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유산은 문화재청장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에서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해 등록한 문화재이다. 

정병욱 선생 가족은 1927년 설천 문항에서 하동으로 이사했으며, 1934년 부친 정남섭 선생이 양조사업을 위해 광양 망덕포구로 터를 잡으면서 이곳으로 옮겼다. 정병욱 선생은 학업을 위해 부산 동래, 서울 등으로 집을 떠나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는 방학 동안 동생들과 함께 본가인 하동 덕천과 섬진강 하류를 사이한 광양 망덕에서 지냈다고 한다.
 
정병욱 가옥의 옛 모습. 이 집에 윤동주 시인의 유필 시가 숨겨져 있었다.
 정병욱 가옥의 옛 모습. 이 집에 윤동주 시인의 유필 시가 숨겨져 있었다.
ⓒ 남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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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정병욱 선생이 태어난 설천 문항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생가터는 몇차례 도로가 확장되면서 1980년대쯤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송홍주 남해문학회장에 따르면 일부 언론에서는 정병욱 박사를 하동 출신으로 소개하고 있다. 정병욱 선생은 윤동주 유고 시집을 보관한 벗으로도 널리 알려졌지만, 우리 국문학사에서 이룬 업적도 많다. 윤동주의 둘도 없는 벗이자 대(大)학자인 정병욱 선생이 남해 출신임을 알리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해시대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정병욱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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