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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중앙대교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집회 장소이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1924년 1주기 추도식이 거행된 곳에서 다시 추모문화제를 개최한다는 의미를 더한다.
▲ 천도교중앙대교당 천도교중앙대교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집회 장소이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1924년 1주기 추도식이 거행된 곳에서 다시 추모문화제를 개최한다는 의미를 더한다.
ⓒ 신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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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중앙대교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집회 장소이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1924년 1주기 추도식이 거행된 곳에서 다시 추모문화제를 개최한다는 의미를 더한다.
▲ 천도교중앙대교당 천도교중앙대교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집회 장소이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1924년 1주기 추도식이 거행된 곳에서 다시 추모문화제를 개최한다는 의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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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내분은 뿌리가 깊었다. 해월의 수제자 3인, 즉 의암 손병희, 송암 손천민, 구암 김연국을 삼암(三菴)이라 불렀다. 손천민은 동학혁명 과정에서 관군에 붙잡혀 처형되고, 김연국은 손병희가 3세 교주(대도주)가 된 데 대해 내내 불만을 가졌다. 입도 과정이나 연배로 보아 의암보다 자신이 대도주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천도교 창건에도 흔쾌히 참여하는 것을 꺼려했었다. 그리고 이용구 일파에 대한 출교 처분 이후에도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얼마 후 김연국은 이용구 등의 계략으로 천도교를 이탈하기에 이르렀다. 

선생이 변심 이탈을 그토록 염려하여 도주직까지 이양해 준 김연국이 천도교 대도주직을 지닌 채 평소 비난해 마지 않던 시천교에 전신하여 그 대례사(大禮師)로 취임하고 만 것이다. 천도교로서는 너무나 큰 타격이었으며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것이다. (중략)

그는 이용구의 재화에 현혹되어 대례사로서의 충분한 대우를 약속받고 변절하고 말았으나  감언이설로 꾀임에 나선 이용구는 시천교장을 물러난 후 김연국을 선생님으로 대접하고 많은 천도교도들을 포섭하려고 노력하였다. (주석 1)

춘암은 화합을 도모하여 포덕 63년 4월 12일 <경고(敬告) 제5호>를 발령하고, 동년 6월 2일 대도주직을 임하였다. 1922년 1월 18일 교인들의 뜻에 따라 복귀하여 교주 취임식을 가졌다.

여암(如菴) 최린의 문집에 소개된 내용이다. 

경고(敬告) 제五호

종헌 종규에 따라 미완전한 조항은 종헌종규 부측 제1조에 의하여 추후 정성코저 하였음은 일반이 공인하는 바 금번 성사주의 좌기와 여한 천명을 봉승하와 차를 증삭(增削)하겠삽기 차의를 선자공포함. 

좌기
 一. 교주는 종신직으로 할사.
 一. 교주는 교의 전체를 통리하며 또는 대표할사. 
 一. 교주는 일반 직원을 임면할사.
 一. 교주는 교의 규제를 반포할사.
 一. 교주는 부구(총부와교구)의 공보급 의안을 인준, 우는 부인준할사.

중앙총부
 一. 종법원, 종무원, 종법사, 종무사, 포덕사의 허명은 폐지하고 각과는 과장, 급 과원으로 할사.

교구 및 전교실
 一. 교구는 구장, 급 구원으로 전교실은 종무원(宗務院=員전교사)으로 조직할사.
     
연월
一. 연원제는 장로, 도사, 도훈, 교훈, 봉훈으로 할사.
 단 종의원(員)은 규제가 무하니 규제반포 후에 조직할사.  
 우 종헌 정정은 각과 주임이 할사.

포덕 63년 4월 12일 
천도교주 박인호(장)

이 때에 오지영 일파는 교주제까지도 반대하고 지방연합제를 주장하다가 분리되었다. 5월 19일에 성사 환원하시었다. 

6월 2일 춘암 교주께서 중앙직원과 서울에 있는 교인을 소집하시고 교주직을 사임하시었다. (주석 2)


주석
1> <의암 손병희선생전기>, 230~231쪽.
2> <여암(如菴)문집> 하, 10~11쪽, 여암선생문집편찬위원회, 1971.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동학·천도교 4대교주 춘암 박인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박인호평전, #박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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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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