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뉴스들. 눈을 뗄 수 없는 재난과 참사. 우리는 반복되는 비극을 바라보며 '내가 도울수 있는 게 없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도덕적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무력감, 자책감.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버겁다. 피로를 달래기 위해 '보는 일'을 중단하면 외면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검열하려 한다. 이 모순에 대한 답을 누군가 내려줄 수는 없을까?
그런 이들에게 보내는 '사유에 대한 초대장', 책 <고통 구경하는 사회>가 있다. 이 책의 저자 김인정은 단순한 시선이 아닌 '응시하는 힘'을 믿는 곳으로 우리를 불러 모은다. 해답을 제시 하는 대신, 영원히 움직이는 텍스트를 통해 계속해서 질문한다.
뉴스보다는 뉴스가 끝난 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은 저널리스트, 작가 김인정. 그는 광주MBC 사회부 기자 등을 거치며 지난 10여년 간 사건·사고, 범죄, 재해 등을 보도했다. 슬픔을 다루는 데 서툰 우리 사회에서 뉴스의 뒷이야기를 쓰고자 끝없이 고민하는 그와 대화를 나눴다(저자는 6월 현재 미국에 있어 서면 인터뷰와 줌(화상)인터뷰를 병행하여 진행했다).
- 북토크, 강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자와 소통하고 계십니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 출간 이후, 체감하시는 변화가 있나요?
"출간한 지 반년이 됐고 최근에 10쇄를 찍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신 만큼 책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어서 기쁜데요. 특히나 책에 대한 각자의 다양한 생각을 나누어 주셔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출간 이후 독자분들과 직접 대화할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당연한 말이겠지만 무척 감사한 일이지요. 독자분들이 대개 사회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 좋은 질문을 많이 주시거든요.
북토크나 강연 등의 행사를 통해서 독자들의 다양한 질문을 받고 답변하다 보니 아무래도 더욱 책의 주제에 대해서 제 입장을 선명하게 다듬어볼 기회가 많았어요. 최근에는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등 고통의 재현에 관해 철학자나 저널리스트, 예술가 등 여러 관점에서 쓰인 책들을 비교하고 대조해서 읽는 강연을 진행했습니다.
수지 린필드의 <무정한 빛: 사진과 정치폭력>, 알렉사 쿠닉과 안드리아 램프로스의 <Graphic: Trauma and Meaning in our Online Lives> 등이었는데요. 고통과 응시, 그리고 행동에 대해 각자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책들이라 흥미로웠습니다.
강의하며 <고통 구경하는 사회>라는 책이 타인의 고통에 관한 다른 책과 비교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 책인지를 더욱 잘 알 수 있었어요. 제가 저널리스트로서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일의 효용을 여전히 옹호하는 입장이라는 걸 더 깊이 알게 됐죠."
- 고통의 응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할까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내가 돕지 못했다'라는 도덕적 자책감은 흔히 개인적인 영역에 머무릅니다.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도덕적 무결함, 자기비판에 그치게 되죠. 저는 '응시'의 필요성을 조건부로 옹호하는 입장인데요, 이 '응시' 안에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타인의 고통-미디어-시청자 사이에 '사유'가 필요합니다. 죄책감을 느끼는 나에 대한 생각에서 멈추지 말고, 얼어붙지 말자는 겁니다. '왜 보는가?'라는 질문을 계속한다면, 죄책감이라는 감정 자체를 지나 조금은 더 윤리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고, 언젠가는 변화를 위해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요?"
- 타인의 고통을 끊임없이 마주하는 시대, 무뎌지지 않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통을 많이 본다고 반드시 무뎌질까요? 저는 인간이 고통을 많이 접하게 된 나머지 무뎌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건사고나 참사가 닥쳤을 때 매번 사람들은 놀라고 슬퍼하고 분노하거든요. 외려 죄책감의 총량이 늘어난 게 문제라고 보죠. 그러니 한정된 관심과 시간을 잘 분배해서 고통을 해결해야겠죠. '늘 일어나는 강간 사건이구나, 늘 일어나는 살인 사건이구나, 늘 일어나는 참사구나'라는 식으로 사건을 뭉뚱그리지 않고 개별 상황의 맥락을 잘 읽어내려는 관심이 필요하고요.
동료 시민으로서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연대를 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들을 고립시키거나 외롭게 남겨두지 않고요. 미디어에 재현된 고통은 커다란 사회적인 부조리에서 시작된 것들이 많으니, 개별 사건과 더욱 커다란 구조적 오류 둘 다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접근해야겠죠.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가 뉴스를 본 뒤에 해왔고, 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안전한 지대에서 바라본 타인의 고통에 대해 '같은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라는 주장은 기만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주셨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우리는 계속 타인의 고통을 마주할 때마다 같은 고민에 놓일 것 같은데요, 타인의 고통에 진심으로 다가간다는 의미는 어떤 건가요?
"공감능력이란 한계가 있으니 '나'를 매개로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깎아내리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무척 유용한 도구지요. 다만, 나를 포개어서 생각하는 습관은 감정이입을 쉽게 만들지만, 때론 나와 관계가 없거나 연결고리가 없는 일이라면 공감하기 어렵게 하는 벽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나일 수도 있었다'라는 슬로건은 때로 폭발적이지만 배타적인 슬로건이 될 수 있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도 한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충분히 듣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뭉뚱그리거나 맥락을 깎아내리거나, 선입견을 발휘해 판단하지 않은 채로 그의 입장에서 충분히 들어보는 경청이 그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 책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 정답이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타인의 고통을 보는 행위의 결말을 완성할 수 있는 건, 그 고통을 응시하는 모든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와 언론, 정치권, 그리고 시민사회 모두요.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왜 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번 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보며 습관적으로 느끼는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내고, 언젠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순간 행동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그 질문의 과정을 함께 경험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나의 분명한 답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사유에 대한 초대장으로써 이 책을 썼습니다."
이어 김인정은 "개인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는 행동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된다면 사회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최근 발견한 연구 결과를 꼭 함께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연구진이 35개국 출신 인권 분야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진행해 2018년 발표한 질적 연구다. 이 연구 결과는 타인의 고통이 담긴 자료를 보는 일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결과에 따르면, 폭력이나 타인의 고통을 멈추겠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응시할 때 뉴스와 콘텐츠를 보는 충격과 잠재적 트라우마가 줄어든다. 고통스러운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 일은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더 큰 사회 운동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정체화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집단적 분노에서 오는 연결감은 이러한 콘텐츠를 볼 때 개인이 느끼는 고통을 완화한다.
저널리스트는 사건 앞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 '본 것'을 재현한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이 문제를 끝내자"고 말한다. 재현하는 행위가 우리를 '사유'라는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고, 그로 인해 우리가 끝까지 타인의 고통을 응시해 낸다면,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유하는 힘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