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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확신과 부정의함에 대한 비판, 당연하지만 맞는 걸 맞다고 하고, 아닌 걸 아니라고 하는 철학... 잘못된 행동을 알리고 그에 맞서 부딪히는 우리의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세상에 변화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2023.10.7)"

정근효군(18, 서귀포)이 지난해 개인 SNS에 남긴 글이다. 정군은 '제주일보백호기전도청소년 축구대회'(이하 백호기)의 응원 문화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공론화 한 바 있다. 이후, 정군은 동료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받았다고 한다. 학생 인권을 위하여 문제를 제기했으나, 같은 학생에게 또 다른 폭력을 당했다는 것이다. 결국 정군은 지난 4월 22일 학교에 "폭력에 침묵하는 학교를 자퇴한다"는 대자보를 걸었다.

정군의 행보와 그의 SNS 글을 보며,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정의'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지난달 5일 그를 온라인 화상(ZOOM)으로 인터뷰하였다.
     
"정의는 모든 사람이 기본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
   
 정근효 학생이 온라인 화상(ZOOM)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정근효 학생이 온라인 화상(ZOOM)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 김규린, 원이솔, 임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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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란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 노동자, 농민, 장애인 등 여전히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회에서 '그래도 나아졌다'고 하지만 이상적으로 나아진 게 아니라 '그래도' 나아진 것이죠. 모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이야기하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고,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요?"

백호기 응원문화의 인권 침해 요소 공론화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의 움직임에 까까워지기 위한 정군의 첫 선택이기도 하다.

백호기는 50년 넘게 이어진 제주도 고교 축구대회다. 이 대회가 유명해진 이유는 현란한 카드섹션을 이용한 응원문화 때문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글자를 만들고, 학교를 상징하는 동물을 몸으로 나타낸다. 정군은 백호기 응원문화가 두 가지 측면에서 학생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학생회가 응원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응원 똑바로 안 하냐, 목소리 크게 해라, 뒤돌아보지 마라'라고 호통쳤습니다. 학생회장이 위에서 립싱크하는 애들 잡아내라고 하면 밑에서 학생회가 립싱크하는 애들을 잡아내서 얼차려를 주는 행위가 반복됐어요. 전체주의식 응원 문화였고 그 과정에서 학생회가 인권 침해적인 발언을 많이 했다고 느꼈습니다."

응원 미참여자들을 향한 인권 침해 요소도 있었다. 응원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1시간이 걸리는 경기장까지 가야만 했다. 응원 연습이 진행될 때, 미참여 학생들은 체육관 바닥에 앉아서 연습 과정을 그저 바라만봐야 했다고 한다. 

제주의 명물이라고 불리던 백호기 응원문화는 전통을 이어간다고 칭찬받아 왔지만, 연습 과정 또한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부정의한 걸 봤을 때 이를 해결하려고 계속 항의하는 성격이에요. 학생 인권은 우리의 권리이고, 당연히 우리가 알아야 하는 권리이고,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권리이고, 우리가 또 지켜야 하는 권리입니다. 이번 사건(백호기)을 알게 됐을 때도 침묵할 수 없고, 이건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서이초 사건, 학생인권조례 폐지 의견..."시소 같아요"

지난해 7월 서울서이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 이후, 학생의 인권이 너무 높아졌다며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군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사건이 '시소'처럼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의 권리가 너무 증진돼서 교사가 사망한 것으로 사건을 정리하려는 것 같습니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학생의 인권이 올라갔다고 해서, 교사의 인권이 내려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학생인권조례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법으로써 제도를 구체화하자는 측면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학생들의 기본권 때문에 교사가 사망하게 됐다는 것은 모순적"이라며 해당 사건을 "학생 인권 조례 탓을 하는 것은 책임 회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권과 학생 인권을 동등하게 다 끌어올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의 권리도 증진하고 그 속에서 교사의 권리도 증진시켜야죠. 흔히 학부모, 교사, 학생 이렇게 세 집단을 교육의 3공동체라고 말합니다. 이 3공동체의 권리를 더 증진해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본질적인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정의를 향한 발걸음 속 어려움, 공부로 극복할 것

인권, 기본권, 정의... 정군은 언제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걸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민참여에 관심이 생겼다는 그는 중학교 3학년 이후부터는 책과 신문을 읽으며 관심을 키웠다고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통합사회 수업 때 '사회에서 내 의견을 펼치는 것은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권리고, 당연시되어야 한다'라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책에서 보고 학교에서 배운 내용처럼 학생으로서, 국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하려고 노력했지만, 현실은 교과서와 달랐다.

지난해 4월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에 대한 도민의 여론을 듣는 '2차 도민 경청회'가 개최되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제2공항에 대해 반대 의사 표현을 했다. 그 때 학교 측 관계자는 "공부나 해라"라고 꾸중을 했다고 한다. 

"이때 사회가 모순적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사회에 대해 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어졌고, 물음표들이 계속 생겼습니다."

그 물음표들에 답을 얻기 위해 정군은 여러 활동을 해왔다 '제주도 교육청 학생인권참여위원회'에서 활동했고, 현재는 직접 만든 단체 '제주 청소년 기후 평화 행동'에서 대표를 맡고있다. 단체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정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을 하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위원장인데도 제주도 교육청 관 내의 기구다 보니까 목소리를 당당히 내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단체 내에서도 정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주장이 갈립니다. '플로깅(조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해야 세상이 바뀐다'라는 청소년들도 있고 '데모해야 세상이 바뀐다'라고 주장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정의를 위해 나아가려면 혼자 열 발짝을 나가는 게 아니라 같이 10명이 한 발짝을 나가는 그런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더라고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떠올린 방법은 '공부'라고 했다. 다양한 철학책과 사회 관련 책들을 열심히 읽는 것이 그가 찾은 해결책이다. 

정군은 백호기 응원문화 공론화 이후 2차 가해를 받았다. 하지만, 응원의 메시지 또한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사회적 분위기로 자기의 의견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제가 더 당당하게 정의를 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자신과 같은 이들에게 "너와 함께하는 사람이 사실은 엄청 많다"라는 말을 전했다. 

#인권#정의#학생인권#백호기#정근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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