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6일은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진행한지 100일 째 되는 날이다. <오마이뉴스>는 '세종보 천막농성' 100일을 맞아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과 함께 '4대강 청문회를 열자'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글은 그 첫번 째로 필자는 임도훈 시민행동상황실장이다.[편집자말] |
나는 지금 세종보 상류 한두리대교 아래에서 이 글을 시작하고 있다. 세종보가 가동된다면 수몰될 금강변의 한 평 남짓한 천막 안이다. 세종보 담수 백지화와 물정책 정상화를 촉구하며 천막을 친 지 100일이 흘렀다. 4대강 16개 보 중 유일하게 열려있는 세종보, 이곳마저 닫히면 4대강은 15년 전, 악몽 같았던 MB시대로 퇴행한다. 윤석열 정부는 한술 더 떴다.
'기후대응댐'.
김완섭 신임 환경부 장관이 최근 14개 신규 댐 후보지를 밝히면서 만든 신조어이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사업에 '녹색 뉴딜'이라는 조어를 붙였던 것과 판박이다. 하지만 4대강사업은 지역 경제를 살리지도, 30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지도 못했다. 윤 정부가 선언한 '제2의 4대강사업', 즉 14개 신규 댐 건설도, 토건족의 배만 불리면서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계와 국민 안전을 위협할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물 정책 정상화를 위한 '4대강 청문회'가 필요한 까닭이다.
[1기 국가물관리위] 3년 반 동안의 심사숙고... 세종보 해체 결정
이명박 정부는 4대강사업을 비밀군사작전처럼 밀어붙이면서 온갖 탈법과 불법을 자행했다. 윤석열 정부도 문재인 정부 때 결정한 금강·보처리방안을 뒤집으면서 많은 위법과 탈법을 저질렀다. 두 정권 모두 강을 댐과 하천준설 등의 토건 사업, 돈벌이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닮았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고 명명하는 등 국민을 호도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 수많은 어용학자와 전문가, 언론을 동원했다. 국정원과 검찰 등의 국가기관은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단체와 학자들을 탄압했다. 소위 당근과 채찍을 휘둘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아무 설명도 없이, 민주적 절차도 생략한 채 물 정책 퇴행을 결정했다. 이명박 정권과 이런 점은 달랐다.
4대강 청문회가 열린다면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올려야 하는 건 문재인 정부 때 마련한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을 취소한 윤석열 정부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정황이다. 우선 문재인 정부 때의 상황부터 복기해 보자.
문 정부는 2017년 11월,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금강의 세종보와 공주보, 영산강의 승촌보와 죽산보를 전면 개방했다. 4대강 사업 이후에 나타난 녹조 창궐, 물고기 떼죽음, 수질 악화, 악취 문제를 해소하는 한편, 수문개방에 따른 변화상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조치였다.
보 개방 이후 강은 빠르게 회복했다. 녹조와 악취가 사라졌다. 강물을 흐르게 하자 시궁창 펄은 씻겨나갔고, 대신 모래가 쌓이기 시작했다. 수질은 좋아졌고, 모래톱 위에 사라졌던 야생생물, 멸종위기종들이 찾아왔다. 1기 국가물관리위원회가 2021년 1월 18일, 세종보 등의 일부 보 해체를 골자로 한 금강과 영산강의 보 처리방안을 확정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은 지난했다. 4대강 조사평가단은 2017년부터 만 2년 동안 보 개방 모니터링 결과를 분석하고, 국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경제타당성 평가를 했다. 이후 대통령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도 1년 6개월 동안 찬반 의견을 가진 전문가 등의 심도 깊은 연구와 분석, 심의 의결 과정을 거쳐 2021년 1월 18일 보 처리방안을 확정했다.
3년 6개월, 이 기간만 소요된 건 아니었다. 4대강사업을 완공한 2012년부터 진행된 수질과 수생태 등의 과학적 데이터를 종합해서 분석한 결과였기에 모니터링 기간을 따진다면 총 9년여 동안 축적된 과학적 연구 성과였다. 하지만 '과학적 검증을 통해 보 처리방안을 결정하겠다'고 공언했던 윤석열 정부가 이를 무위로 돌리는 데 들인 시간은 단 15일이었다.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보처리방안 이행은 미적, 폐기 처분은 속전속결
1기 국가물관리위가 보 처리방안을 확정한 뒤 환경부는 이에 따른 후속조치로 2021년 4월에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 이행을 위한 세부계획 수립 용역'을 한국수자원공사에 발주했다. 이 용역은 이듬해인 2022년 6월에 종료됐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보 처리방안 이행을 위한 후속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미적거렸다.
환경단체들이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비판했지만, 환경부는 내용보완을 이유로 미루다가 10여 개월 뒤인 2021년 4월 6일에 공개했다. 2021년 10월 진행한 해당 용역 중간보고에 따르면, 세종보와 공주보, 죽산보의 경우 24년 6월(공주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시) 보 해체 공사 착공 가능 시기를 정하고 있었지만, 최종 보고서는 착공시기가 삭제된 채 공개됐다.
최종보고서가 공개되기 이틀 전인 4월 4일 한화진 전 환경부 장관은 '4대강 보를 활용한 중장기 가뭄대책'을 발표했다. 금강과 영산강 보의 해체와 전면 개방을 위한 용역 결과를 공개하기 직전에 최종보고서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게다가 이는 박근혜 정부 때 진행된 4대강 감사 결과, 즉 4대강 보는 가뭄에 효과가 없다는 감사 내용을 전면 부정하는 선언이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보 처리방안을 수수방관하며 한동안 방치했던 환경부는 속전속결로 취소 절차를 밟았다. 환경부는 2023년 7월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 당일, 보 처리 방안에 대한 재심의를 요청했고, 2기 국가물관리위원회는 단 15일 만에 취소를 의결했다. 환경부는 재심의 요청이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감사결과 보고서의 내용은 보 처리방안을 취소하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 시한을 이유로…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강행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고(주의) 충분한 기초자료에 근거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 결과가 금강 영산강 보 처리방안에 적절하게 반영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시기 바랍니다(통보)
따라서 환경부는 2017년 보 개방 이후 2022년 4월까지 매년 발표했던 '보 개방 모니터링 결과보고서'를 근거로 감사원의 지적 사항을 해명하고 이의를 신청했어야 했다. 적어도 2기 물관리위에 재심의를 요청하기 전에 1기 물관리위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 결과라도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환경부는 15일의 이의 신청기간이 지나기도 전에, 자신들이 직접 마련한 보 처리방안을 졸속으로 백지화했다.
[2기 국가물관리위] 문재인 정부 3년 반 걸린 물관리기본계획, 3주 만에 졸속 변경
4대강 청문회가 열린다면 2기 국가물관리위원회의 비민주적 의사결정도 따져 물어야 한다. 우선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은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우리나라 물정책의 핵심 방향이 정리된 물분야 최상위 계획이다. 1기 국가물관리위원회는 약 3년 반의 논의를 거쳐 이 계획을 확정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23년 8월 4일, 보 처리방안 취소 이후 단 3주 만에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안을 마련했다.
그 내용도 조악했다. 기본계획 전체 내용에서 '자연성 회복'이라는 문구를 '지속 가능성 제고'라는 문구로 변경했다. 부록에 포함된 '우리 강 자연성 회복 구상'이라는 표현도 삭제했다. 누가 봐도 기본계획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재자연화 사업의 흔적을 족집게로 집어내듯 지우려는 정략적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이에 환경단체는 물 분야 최상위 계획을 변경하면서 최소한의 용역 등을 거치지 않은 것에 강력 항의했다. 그해 8월 25일 공청회는 환경단체의 항의로 무산됐는데, 국가물관리위와 환경부는 9월 5일, 5인의 활동가를 연행하면서 공청회를 강행했다. 게다가 이날 공청회 때 방청석에서 나온 의견은 모두 졸속 변경안에 대한 반대였는데, 이런 의견 역시 묵살됐다.
사실상의 '반대 공청회'가 열리고 불과 보름 뒤인 9월 21일, 환경부는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안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그간 국가물관리위원회와 환경부는 '물관리기본법'에 따라 공청회 개최(9월 5일) 등 국가물관리기본계획을 변경하기 위한 법정 절차를 충실히 이행하여 일반 국민과 관계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짜놓은 각본처럼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하면서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훼손했다.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을 마련할 때 구성된 거버넌스 기구인 보 운영민관협의체, 유역 물관리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국민의견 수렴 절차도 없었다. 대신 22년 6월, 4대강 조사평가단을 해체했고, 환경부와 지역주민, 지자체, 농어촌공사 등의 행정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각 유역의 보 운영 민관협의체도 전부 해산했다.
이후 별도의 보 운영협의체가 구성됐지만, 지자체 추천의 민간위원으로 구성하면서 기존의 환경단체 위원들은 모두 배제됐다. 금강의 경우, 그렇게 구성된 보 운영협의체마저 2022년 9월, 백제문화제 담수를 위해 형식적인 협의회를 연 것이 지금까지 처음이자 마지막 회의였다.
[벼랑 끝에 내몰린 물정책] 이제는 국회의 시간... 4대강 청문회 열어야
환경부는 당초 세종보 보수공사를 마무리한 뒤 5월 초부터 재가동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이에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은 4월 29일부터 세종보가 가동된다면 수몰될 상류 300m 지점의 하천 부지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고, 이제(8월 6일) 100일이 지났다. 지금껏 수문이 닫히지 않는 건 수장될 각오로 이곳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보는 4대강 16개 보 중 1개 보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6년 동안 유일하게 개방된 상태인 세종보마저 막힌다면 'MB 4대강'으로 완벽하게 회귀하는 것이다. 또 윤석열 환경부는 최근 14개 신규 댐 후보지를 발표했고, 하천 준설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금껏 개방돼 있는 세종보는 윤석열 정부의 '제2의 4대강사업'을 막을 최전선이자, 마지막 보루이다.
이제야말로 국회의 시간이다. 14년 전인 2010년, 당시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의장석을 점거하고 단 2분 만에 4대강사업 예산을 날치기 통과시킬 때 야당은 무력하게 무너졌다. 그 뒤 이명박 정부는 22조 2천억 원의 혈세로 4대강 곳곳에서 흥청망청 돈 잔치를 벌였고 강은 죽어갔다.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 국민은 한나라당의 후신인 국민의힘을 압도할 의석을 거대 야당에 몰아줬다.
따라서 지금껏 청산하지 못했던 4대강사업을 심판할 절호의 기회이다. 지금의 야당은 4대강사업뿐만 아니라 댐 건설과 하천 준설로 전국의 많은 강을 훼손하기 위해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윤석열 정부의 물정책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4대강 청문회를 열어서 보 처리방안 취소와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 절차에 있어서의 위법성, 정책 결정 변경에 있어서의 직무유기· 직권남용의 정황을 조사해 심판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제2의 4대강 사업'을 막아야 한다.
이제 벼랑 끝에 서 있는 우리나라의 물 정책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4대강 청문회를 열자.
덧붙이는 글 | 임도훈 기자는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의 상황실장(대전충남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