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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오면 "종로의 인경(人磬)을 새처럼 머리로 들이받아" 두개골이 깨져 죽더라도, 이 몸의 가죽으로 북을 쳐서라도 반기리라던 그 광복절이 또 다가온다. 정작 이 시를 쓴 심훈 시인은 해방을 보지 못하고 요절했지만, 그날이 오면 3000만 겨레가 하나 되어 고루 잘사는 행복한 나라를 꿈꾸었을 것이다. 내년이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광복 70주년이 되던 2015년, 당시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담화를 통해 "전후 태어난 세대가 전체 인구의 8할을 넘고 있다. 과거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의 아들이나 손자,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도 사죄의 숙명을 안겨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해 박근혜 정부는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는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체결한다. 지난해에는 독일 카셀대학에 설치되었던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철거되었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조선인 강제노동을 사실상 부정하는 일본의 편을 들어 강제징용의 상징인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처럼 일본의 전쟁·침략 역사 지우기가 착착 진행되고 이에 발맞춰 우리 정부가 역사세탁을 합의해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 몽투투평화여행은 100년 전 뜨거운 마음으로 해방을 꿈꿨던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만나고, 동아시아 홀로코스트가 무엇이었는지 뼈저리게 느끼며, 실제 위안소를 돌아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상하이·난징 평화여행을 기획했다. 여행으로 잇는 아시아평화네트워크를 꿈꾸는 몽투투평화여행의 첫 번째 아시아 기행, <차이나는 여행 – 1919 상하이 1937 난징>이 그것이다.
 
상하이의 역사 지킴이 HERO역사연구회 회원들
▲ 상하이의 역사 지킴이 HERO역사연구회 회원들
ⓒ 임흥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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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는 1920년대 일본의 탄압을 피해 한반도를 떠나야 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배를 타고 와서 첫발을 디딘 장소이자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 100년의 역사를 열었던 임시정부가 출범한 곳이다. 그러나 한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유산인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는 여러 차례 보존 위기를 겪었다. 상하이사범대 교정에 건립된 '한중 평화의 소녀상'도 제막 직전부터 일본 정부의 집요한 철거 요구에 시달려왔고, 중국 외교부도 소녀상의 철거 또는 실내 이전을 압박했다. 우리가 상해임시정부 청사를 경시한다면 중국 정부도 경시할 수밖에 없다. 일부 뉴라이트 진영의 학자들, 극우단체, 보수언론 등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이승만 정부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이러한 역사관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는 헌법 정신을 무시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폄하하고 항일독립운동을 부정하며 일제식민지배와 친일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중 평화의 소녀상 상하이사범대 교정에 건립된 한중평화의 소녀상은 일본정부의 집요한 철거요구에 시달려왔다.
▲ 한중 평화의 소녀상 상하이사범대 교정에 건립된 한중평화의 소녀상은 일본정부의 집요한 철거요구에 시달려왔다.
ⓒ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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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훙커우(虹口)구의 한적한 골목길에는 붉은 벽돌 건물의 '따이살롱'이 역사의 증거로 남아 있다. 1932년 일본 해군 장교들을 위한 클럽으로 시작되었지만 곧 위안소로 변모해 1945년 일본의 패망까지 운영된 '따이살롱'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감금과 폭행을 당하며 지옥 같은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일본군 최초의 위안소 옛터에는 적벽돌 하나하나에 여성들의 고통과 절망과 신음과 눈물이 배어 있다. 난징에 위치한 리지샹 위안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설립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위안소다. 8개의 건물로 구성된 리지샹 위안소는 박영심 할머니를 비롯한 많은 피해자들의 증언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 위안부들의 참혹한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난징대학살기념관의 조각상 중국작가 우웨이산의 작품 '가파인망'
▲ 난징대학살기념관의 조각상 중국작가 우웨이산의 작품 '가파인망'
ⓒ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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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인망(家破人亡), 가정은 파괴되고 사람은 죽어간다. 선간후살(先姦後殺), 여성들은 능욕을 당한 뒤 살해되었다. 1937년 일본이 난징을 점령한 후 12월 13일부터 이듬해 2월까지 6주간 12초마다 한 명씩 살해돼 30여 만 명이 희생되었다. <난징의 강간>을 쓴 아이리스 장에 의하면 "살해당한 사람을 나란히 눕혀 손을 잡게 하면 난징에서 항저우까지 322km, 기차에 모든 사망자 시체를 태우면 2500량, 흘린 피의 총량은 1200톤으로 계산된다"고 한다. 난징대학살기념관은 1000구가 넘는 학살 피해자 유골이 발굴된 '만인갱' 자리에 세워졌다. 추모관에 들어서면 마치 무덤처럼 지하로 들어가게 된다. 추모관 안에는 12초마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공간이 있다.
 
몽투투평화여행이 만나는 사람 중국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전문가 쑤즈량 교수, 상하이 임시정부 시기를 살아낸 최위자 할머니, 김구와 윤봉길을 다룬 '한류 3부작'을 쓴 샤넨성 작가.
▲ 몽투투평화여행이 만나는 사람 중국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전문가 쑤즈량 교수, 상하이 임시정부 시기를 살아낸 최위자 할머니, 김구와 윤봉길을 다룬 '한류 3부작'을 쓴 샤넨성 작가.
ⓒ 몽투투평화여행의 꼴라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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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것이 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있다. 나의 고통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앓기 어려운 이유다. 상하이에서 난징에 이르는 여정은 그 간극이 주는 불편함을 마주하는 일이다. 이 여정 속에서 임시정부 시기를 살아낸 최위자 할머니, 중국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전문가 쑤즈량 교수, 김구와 윤봉길을 다룬 '한류 3부작'을 쓴 샤넨성 작가를 만난다. 그들이 온몸으로 관통한 역사와 시대의 심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내년이면 어언 광복 80년. 또다시 전국이 해방을 기념하는 축제로 들썩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축하가 아니라 기억이 아닐까?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불꽃잔치보다 필요한 것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광복 이후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독립운동가들과 위안부 할머니들, 강제동원되어 노역을 했던 이들을 위로하고 술 한 잔 바치는 일일지도 모른다. 10월 30일에 출발하는 상하이·난징 평화여행은 오랜 세월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이끌어온 평화활동가 구수정 대표가 인솔하고, <나는 독립운동의 길을 걷다>의 저자이자 HERO역사연구회 임정학교를 150회 이상 운영해온 이명필 대표가 이야기꾼으로 전 일정을 함께한다.

우리 여행의 목적지는 특정 장소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이다. 여행이 세상의 분쟁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울고 웃고 먹고 함께 마음을 나누며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사회에 상기시키는 것도 평화로 가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고 몽투투평화여행은 생각한다. 이 여행이 각자의 어떤 시작이 되길 소망한다.

#위안소#광복절#중국#독립운동#평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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