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
- 지난 기사
'아테네올림픽경기장에 '태권!'구호가 울려퍼진 사연'(링크)에서 이어집니다.
우리는 러시아에서부터 포르투갈 호카곶까지 약 4만 km를 함께 여행한 한국 자동차를 그리스 아테네에서 부산항까지 가는 배에 선적하고 이집트 카이로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동안 아들과 여행하며 사용한 짐을 아테네 호텔에서 모두 정리하고 필요한 짐만 담았는데도, 필수용품과 각종 기념품을 담은 짐은 이민 가방 2개 분량이나 됐다.
아테네 공항에서 이집트 국적기에 짐을 싣고 탑승했다. 모로코를 여행하며 아프리카를 경험하긴 했지만, 이집트는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다. 지리적으로 스페인과 가까워 유럽인들이 자동차로 여행을 많이 하는 모로코는 사실 유럽에 가까웠지만, 현재 이집트는 우리나라의 과거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과 자주 비교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카이로 시내는 모래바람이 불어서인지 온통 뿌옇게 보였다. 걱정과 달리 공항에 내려 무사히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아 출구로 나갈 때였다. 출구 한편에 서 있던 세관 여자 직원이 내게 무심한 말투로 물었다.
"짐에 드론이 있나요?"
"네. 하나 있습니다."
"드론 있어요?"
"네."
그 직원은 나한테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아들과 짐을 끌고 직원을 따라갔다. 한쪽 모퉁이에 가니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 짐을 꺼내 검사받고 있었다. 나는 내 짐 속의 드론 가방을 꺼내 세관 직원에게 건네줬다.
그 여성은 가방을 한쪽으로 가져가더니 내게 기다리라고 말했다. 한 30분쯤 지났는데도 그 직원이 내 가방을 그냥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앉아있기에, "혹시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자 그 직원이 말했다.
"조금 더 기다리면 경찰이 와서 드론을 검사하고 당신을 조사할 겁니다."
나는 짐에 드론 하나 있는 게 무슨 큰 죄인가 싶었지만,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그래서 시간이 얼마쯤 걸리냐고요?"
"한 1시간쯤 걸릴 거예요."
다시 자리로 가서 아들과 기다렸다. 1시간이 훌쩍 지나고 제복을 입은 경찰이 오더니 내 드론 가방을 열어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경찰은 내 249g짜리 소형 드론을 돋보기로 샅샅이 훑어보더니 드론을 다시 가방에 넣고 봉인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아들과 함께 가겠다고 했더니 나만 혼자 따라오라고 했다.
9살짜리 아들을 혼자 낯선 공항에 두고 갈 수 없어 안 된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세관의 여자 직원이 자기가 함께 있겠다며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혼자 경찰을 따라나섰다. 그 경찰은 공항을 이리저리 걷다 나를 막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공항 건물 안에 있는 '공항경찰대' 쯤으로 보이는 사무실이었고, 긴 통로 양쪽으론 방이 10개 정도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복도엔 짧은 머리에 검은 양복을 입은 20~30대 젊은 남성들이 소파에 앉아 연신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나를 인솔한 경찰은 나를 담배 피우는 청년들 사이에 앉히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힘찬 경례 소리가 나더니 안에서 알아듣지 못할 대화 소리가 들렸다. 몇 분 후 종이를 들고나온 경찰을 따라 나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정보경찰 조사실에 올 줄이야
한참을 걷다 보니 이번엔 복도 조명이 모두 꺼진 어두운 공간에 도착해 있었다. 한 방문 앞에서 대기하던 경찰이 문에 노크한 후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경례하고 나를 들어오게 했다. 방안엔 책상 위로 간접 조명만 켜진 상태였고, 의자에 앉은 한 남자의 뒤에는 커다란 이집트 국기가 걸려있었다.
눈치를 살펴보니 아까 처음에 들른 곳은 공항의 경찰정도 되는 것 같았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국정원이나 정보 경찰의 간부인 것 같았다. 의자에 앉은 남자는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국적은?"
"대한민국입니다."
"이집트 방문 목적은?"
"여행하러 아들과 둘이 조금 전 도착했습니다."
"한국에서 직업은?"
나는 여행하는 동안 퇴직 처리가 되긴 했지만, 국가공무원 생활을 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어 대답했다.
"저는 대한민국 국가공무원입니다."
"공무원? 무슨 공무원입니까?"
"대한민국 국가기관에서 근무했고 환경부 공무원입니다."
내 대답을 듣더니 남자의 인상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나는 '작은 틈새'를 눈치챘다. 그들이 묻지 않았지만, 바로 이어서 여행 얘기를 덧붙여 말했다.
"저는 아들과 한국에서 타던 자동차를 러시아로 가져가 유럽을 여행하고, 그리스 아테네에서 차를 배에 실어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카이로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그런데 자동차 여행할 때 차에 있던 드론이 제 짐에 있었는데 이집트에는 가져오면 안 되는지 몰랐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눈짓으로 알았다고 하는 것 같았고, 종이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했다.
"아테네에서 카이로까지는 이집트 국적기를 이용했는데, 짐을 실을 때 드론에 관한 얘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종이에 무언갈 빼곡하게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 종이를 나를 인솔한 경찰에게 주었고, 나는 다시 경찰을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소형 드론 하나 때문에 강제 출국까지?
간단히 끝날 줄 알았는데 인솔 경찰을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2번이나 더 조사받자,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아프리카의 한 공항에서 9살짜리 아들이 혼자 2시간이나 기다리고 있다'라는 상황 때문에 내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영어를 모른다던 경찰이 내게 영어로 말했다.
"Finish(끝났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경찰을 따라갔다. 평소 나는 낯선 곳에서 길을 잃지 않고 방향감각이 좋은 편인데 그 경찰은 나를 우리가 출발했던 '아들이 기다리는 곳'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데려갔다.
한참 따라가니 출국심사장이 보였고, 그 경찰은 내게 '여기에 줄 서서 여권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라고 했다. 얼떨결에 내 여권엔 출국 도장이 찍히게 됐고, 그 인솔자를 계속 따라가는데 이젠 심장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떨리며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거 강제 출국당하는 건가?'
인솔 경찰을 따라가는데 정말 출국 게이트가 보였고, 나는 불안해서 두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아, 아들이 밖에 혼자 있는데….'
나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들이 밖에 있는데 이게 뭐 하는 거지? 이집트 여행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항의해야 하나?'
나는 아들 걱정에 너무 두려웠지만, 애써 침착한 척하며 번역기를 통해 경찰에게 말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요?"
번역기를 보더니 그 경찰은 나를 향해 비웃듯 '피식' 하고 웃었다. 그리곤 방향을 반대로 틀어 다시 나를 아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줬다.
짐작해 보니 그 경찰은 나를 출국 게이트 앞까지 데려가 겁을 주고 장난치려고 했던 것 같았다.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입 밖으로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지은 채 경찰을 따라가 아들을 만났고, 서둘러 호텔로 향했다.
4500년 전에 만든 기자의 대피라미드
저녁에 일찍 도착해 아들과 맛있는 걸 먹고 싶었는데, 호텔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밤 9시가 넘어 있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아들과 침대에 누워 많은 생각을 했다.
'내일 바로 비행기 알아보고 출국할까? 기분 더러워서 여행하기 싫네. 참….'
피라미드를 보고 싶어 왔지만, 하루 만에 이집트에 대한 모든 정나미가 다 떨어진 상태였다. 밤새워 고민하다 아침에 창밖으로 카이로 시내를 내려다봤다. 한참을 고민하다 여기까지 온 거 그래도 피라미드는 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아들과 피라미드로 향했다. 카이로는 이집트의 수도인데 생각보다도 인프라가 열악했다.
시내 한복판인데도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가 몇 개 없었고, 차선이 온전한 도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차들은 레이싱을 하듯 경적을 울려대며 난폭운전을 해댔고, 인도는 다 망가지거나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아들과 카이로에서 10km 떨어진 기자 피라미드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희뿌연 모래 먼지 사이에 피라미드가 보이기 시작했고, 더 가까이 가자, 사막 위에 우뚝 솟은 비현실적인 피라미드의 모습에, 공항에서 당한 기분 나쁜 경험이 모두 모래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아~ 네가 피라미드구나. 그래도 잘 왔다.'
카이로 공항에서 겪은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아들과 피라미드 주변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었다. 멕시코 유카탄에 있는 마야인들의 피라미드도 본 적이 있지만, 기자 피라미드는 내가 태어나서 본 인간이 만든 가장 큰 조형물이었고, 그게 무려 45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감동을 넘어 감사한 마음마저 들게 했다.
'이런 곳에 아들과 함께 올 수 있다니 너무 잘했다, 영식아.'
아들 손을 꼭 잡고 피라미드 앞으로 갔다.
"태풍아, 피라미드 정말 크다. 이게 4천 년 전에 사람이 만든 거래."
"아빠, 멀리서 볼 땐 작은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돌이 엄청나게 크네? 신기해."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박물관에는 금으로 정교하게 장식한 보물들이 많고, 수천 년 전의 미라가 쌓여 있었다. 4천 년 전에 문자와 그림을 색칠하고 장식한 물건들도 넘쳐났다. 하지만 거리로 나오면 인도는 찾기 힘들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관광객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나라였다. 그걸 보며 아들에게 특별한 말을 해주진 않았다.
아들이 선택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인 모나코,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과 스위스뿐만 아니라 경제가 어려운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발칸 국가, 그리고 아프리카 모로코와 이집트까지 여행하며 아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내가 말해주고 싶은 걸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여기 호텔은 5만 원이지?"
"아빠, 여긴 인터넷 느릴 거 같은데?"
150일 동안 아들과 3대륙 40개국을 여행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공항 밖으로 출입문을 빠져나오며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 대한민국이 최고야~ 프랑스? 스위스? 다 필요 없어, 대한민국이 최고야~"
"그래~ 알면 됐어~ 얼른 떡볶이 먹으러 가자!"
우리 부자가 장기간 세계여행을 한다고 하니 주변에선 원래 돈이 많아서 돈 자랑하는 흔한 여행객으로 아는 사람이 많았다. 아니 대부분은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전라도 시골에서 오래된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고, 학원 보낼 돈 아끼고 주머니 탈탈 털어서라도 젊을 때 아들과 함께 오랜 시간 보내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은 2년 뒤인 2026년에 6학년이 된다. 이제 아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랑 재밌게 놀다 2년 뒤에는 다시 아메리카로 떠나 알래스카에서 우수아이아까지 종단 여행을 할 예정이다. 그때쯤이면 어느 정도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여행을 한 아들은 소감은 딱 두 가지로 간단했다. 첫째, 러시아부터 유럽의 잘 사는 나라와 아프리카까지 여행해 보니, 결국 대한민국이 제일 살기 좋은 나라란 걸 느꼈다. 둘째, 다른 이들과 소통하다보니 영어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알게 됐다.
"태풍아, 이제 영어 공부 왜 해야 하는지 알겠지?"
"응, 아빠 나 영어 잘하고 싶어."
이렇게 약 7개월 간 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를 한국 차로 돌아본 세계여행이 끝이 났다. 지금까지 저희 부자의 여행기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덧붙이는 글 | 이것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이 글의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히며, 개인 블로그(blog.naver.com/james8250)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