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기자말] |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자란 나는 가족 여행을 가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중에 가족이 생기면 여행을 많이 가 봐야지' 하고 생각했었고, 결혼해 아들이 생겼다. 하지만 공무원이던 나는 매일 직장 상황에 맞추느라 가족에게는 소홀히 했다.
그러다 몇 해 전부터 아이의 엄마와 헤어져 아들과 단 둘이 살게 됐다. 아들을 위해 생각했던 시기보다는 조금 더 일찍 아들과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아직 어린 아들과 함께 오랫동안 낯선 나라를 여행해야 하는 우리에게도 자동차 여행이 좋을 것 같았다.
"태풍아, 아빠랑 여행 가자!"
"응, 그래! 아빠."
"어디 가는 줄은 알고 대답하는 거야?"
"아니. 몰라."
"그런데 바로 가자고 해?"
"난 그냥 아빠랑 가면 아무 데나 다 좋아."
"우리 자동차 타고 세계 여행할 거야."
"우와~ 정말? 어떻게?"
"지금 우리가 타는 차를 배에 싣고 러시아까지 가서 여기 땅끝 포르투갈까지 우리 둘이 자동차 타고 여행할 거야."
"와~ 이게 다 러시아야? 러시아는 왜 이렇게 커?"
"그래,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가 러시아 거든. 그래서 여기를 지나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 우리 한 여섯 달 정도 아주 오랫동안 여행할 거야."
"지금 9월인데 학교는?"
"학교는 못 가지. 내년에 3학년 되면 돌아올 거야."
"앗싸~~"
"그렇게 좋아?"
"응, 아빠 빨리 가고 싶어."
9살 아들과 러시아로
우선 아들의 학교 문제를 해결하고 강원도 동해항에서 러시아로 가는 여객선을 예매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국제 제재를 받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러시아로 가는 직항 교통편은 이 여객선이 유일했다.
우리가 타던 국산 SUV를 동해항 세관에 맡기고 아들과 나는 블라디보스토크행 배에 올랐다. 꼬박 하루가 걸려 다음 날 오후 늦게 도착했지만, 내려서 짐을 찾고 입국 절차와 세관을 통과하고 나니 날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주말은 아들과 시내 관광을 하며 푹 쉬고 월요일 아침에 아들과 함께 차량 통관절차를 대행해 주는 사무실로 찾아갔다. 무뚝뚝한 세관 직원들이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아 며칠을 숙소에서 대기하다 4일 만에 차량을 인수했다.
"태풍아, 이제 우리 진짜 출발이다."
"응, 아빠 나 우리 차 이름 지을래."
"그래? 뭐로 할까?"
"하얀색이니까 흰둥이!"
"흰둥이? 그래, 좋다."
우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서쪽인 북한 방향으로 차를 몰아 북한과 중국, 러시아 3개국의 국경에서 10km 정도 떨어진 크라스키노로 향했다. 과거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던 곳이다. 과거 안중근 의사가 대한독립을 결의하며 항일 투사 11명과 모여 단지하고 혈서를 쓰며 결의한 것을 기념한 '단지동맹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아들과의 여행을 뜻깊은 곳에서 출발하고 싶어 한참이나 비포장도로를 달려 단지동맹기념비 앞에서 헌화하고 묵념을 드렸다. 아직 어린 아들이 먼 훗날 다른 건 잊을지 몰라도 교과서에 나온 훌륭한 분의 유적이 이렇게 먼 러시아 도시에서도 몇 시간이나 비포장도로를 달려 고생해야 찾아볼 수 있다는 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몸이 왜 이러지?
우리는 다시 시베리아를 향해 내달렸다. 이제부터는 하루 500km 이상 달려야 하는 구간이 매일 이어진다. 좁은 땅덩어리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마도 '하루 운전 거리가 너무 긴 거 아냐?' 하고 궁금해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도시 간의 간격이 넓어 500km 이하에는 아주 작은 마을만 있고, 주유소도 만나기 힘들다는 걸 나도 러시아에 와보고야 알았다. 그러다 시베리아 횡단을 출발한 지 꼭 일주일 만에 탈이 났다.
오는 중간에 잠시 어지러운 증상이 있긴 했지만, 잠깐 차를 세워 휴식을 취하면 없어졌었는데, 이날은 새벽에 눈을 떴는데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너무 어지러워 몸을 일으킬 수도 없어 억지로 눈을 감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빠, 나 배고파."
"응, 태풍이 일어났어?"
자고 일어났는데도 이번엔 구토까지 나오려 했다. 서둘러 즉석밥으로 아들 밥을 간신히 차려 주고 다시 누웠다. 안 그래도 요 며칠 어지러운 증상이 몇 번 있어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어제 숙소 직원에게 '근처에 병원이 있는지' 물어봤었다.
병원은 차로 1시간 정도 가야 있지만, 구급차를 부르면 금방 온다고 했고, 숙소 길 건너에 의원이 하나 있다는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전 9시가 되면 아들과 함께 의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태풍아, 아빠 너무 어지러워서 이따 9시에 병원 가야겠어."
"왜? 아빠 많이 아파?"
"응, 계속 어지러워서 걷지도 못하겠어."
이제 키가 겨우 120cm가 넘은 또래보다도 작은 아들에게 기대 길 건너 의원으로 향했다. 전문 진료과목은 산부인과였고 한 시간 정도 대기하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의사에게 간신히 번역기를 통해 설명하니 의사는 내 신체기능을 검사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뇌졸중 증상을 검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곳은 멀쩡한 것 같아 '단지 어지럼증만 있다'라고 다시 말했다.
그랬더니 의사는 그럼 내일 다시 와서 혈액검사를 하자고 했다. 왠지 여기서는 정확한 증상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일단 '알았다'라고 대답하고 나왔다. 그리고 혹시 몰라 일단 아들과 근처에 있는 작은 식료품점에 가서 비상식량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태풍아, 아빠가 지금 너무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리거든? 오늘은 태풍이 혼자 놀아야 해. 심심해도 참을 수 있지?"
"아빠, 많이 아파?"
"그래, 아빠가 아파서 토한 거 본 적 없지? 그런데 아까 병원 앞에서 토했잖아."
"그래? 아빠 그러면 쉬어. 오늘은 나 혼자 놀게."
아들에게 간신히 점심을 차려 주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아들 핸드폰 검색 내용에 오열
이곳은 누군가 한국에서 도와주러 온다고 해도 족히 일주일은 걸리는 곳이다. 우리나라와 직항 항공편도 없고, 1주일에 한 번뿐인 배를 타고 온다고 해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기까지는 1000km가 넘게 떨어져 있다.
우선 아들이 걱정돼 도움을 요청할 사람을 찾던 중, 동해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우리랑 같은 배에 차량을 싣고 온 백진수라는 형님이 생각났다. 형수님이 러시아 사람이고 처가가 우수리스크 근처인데 당분간 그곳에 계신다고 하셨던 게 생각나 바로 전화했다.
"형님, 저 영식이에요. 잘 계시죠?"
"아~ 영식 씨. 잘 있지? 유튜브도 잘 보고 있어."
"형님, 그런데 제가 지금 벨로고르스크인데요. 이석증에 걸린 거 같아요. 너무 어지러워서 몸을 못 움직여요. 근데 혹시 제가 쓰러지거나 하면 아들 때문에 걱정되어서 전화했어요."
"그래? 어떡해?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 아들한테도 내 전화번호 알려주고. 아내하고 교대로 운전하면 금방 가니까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하라고."
"네, 형님. 정말 고마워요. 또 연락드릴게요."
비상시 대책을 세워놓고는 치료법을 고민했다. 과거 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 월동을 같이한 동생 중에 아주 똑똑한 의사가 있었다. 지금은 미국에서 의사로 있는 주섭이에게 SNS로 급하게 연락했다. 동생은 내가 말한 증상을 보더니 자기가 직접 진료한 게 아니라 확실하진 않지만, 이석증이 맞는 거 같다며 '애플리 메뉴버'라는 물리 치료법을 알려줬다.
아들 저녁을 서둘러 챙겨주고 혼자 동영상을 보며 한참 치료 동작을 따라 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눈을 떠보니 어제보단 훨씬 나아졌다. 일어나서 걸으면 조금 어지럽긴 해도, 구토가 나오거나 할 정도로 어지럽진 않았다.
'다행이다!'
안심하고 침대에 잠들어 있는 아들을 보니 너무 미안했다. 심심해서 종일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가 잠이 들었는지 손에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있었다. 배터리 충전을 해주려 고사리 같은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다가 켜진 화면을 보니 한 포털 사이트 창이 열려 있었다.
'어? 게임이나 동영상이 아니고 왜 포털 창이 열려 있지? 아직 검색하는 건 잘 모를 텐데.'
검색창을 보니 아들이 사용한 검색 이력이 남아 있었다.
'이석증 나는 법'
'이석증 다 나는 법'
'어지러울 때 나는 법'
포털 사이트 검색창엔 틀린 맞춤법으로 아빠 이석증 낫는 법을 검색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울다 잠들어 있는 아들을 꼭 부둥켜안았다. 너무너무 미안하고 안쓰럽고… 그리고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 다음 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여행 기간 내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작성하였으나, 사건 등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 <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