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연한 눈빛, 참혹한 고통 속에서 닿을 수 없는 고국의 부모형제를 그리는 애절함, 죽는 날까지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아픔. 평화의 소녀상비는 그렇게 오늘도 아픈 역사를 소리 없는 외침으로 전하고 있다.
살아남은 우리는 함께 기억해야 한다. 함께 아파하고, 처절하게 짓밟힌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최소한의 명예와 인권을 기필코 되찾아 드려야 한다.
일제 강점기 우리는 나라의 주권과 함께 헤아릴 수 없는 아까운 목숨을 빼앗기고, 정절조차 무참하게 짓밟혔다. 금쪽같은 아들들은 징용에 끌려가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되었고, 딸들은 일본 군인들의 종군 위안부로 끌려가 참혹한 삶을 살아야 했다.
1992년 1월 8일 첫 수요집회가 시작된 지 20여 년이 흐른 2011년 12월 14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한 거리투쟁이 시작됐고, 오늘날까지 이어왔다.
평화의 소녀상은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1000회째인 2011년 12월 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세워졌다. 이후 평화의 소녀상은 전국으로 또 해외 각지에도 세워졌다.
전북 군산에선 2015년 일본식 건물 사찰인 동국사 경내에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기념비가 세워졌다. 협찬금을 낸 시민들의 이름이 기념비 뒷면에 새겨져 있다. 그리고 해마다 이곳에서 위안부할머니들의 기림제를 열고 있다. 2015년 군산 동국사 뜰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뒤, 매 해마다 종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기림제를 드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3일 오후 5시, 이날도 동국사 뜰에서는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 불볕 햇살이 오후 시간대를 무색하게 독화살을 쏘아댄다. 식전행사로 판소리와 민요, 대금과 가야금연주, 양금연주 등이 있었다.
비 오듯 흐르는 땀방울로 연주자들의 옷은 흠뻑 젖었다. 헌공다례, 시낭송과 퍼포먼스, 춤, 합창, 모든 출연자들이 옷이 흠뻑 젖도록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이었다. 한쪽에서는 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시원한 차와 다과를 대접하느라 수고하는 다인회 회원들의 땀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행사에는 군산시장을 비롯 국회의원, 도의장, 시의장과 시의원 등 정치인과 시민단체, 일반시민들도 다수가 참여하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아픈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염원했다.
내가 다니는 한국시낭송예술원도 채영숙, 강리원, 이안나, 김형순, 김순민 다섯 명이 참여해서 이제는 몇 남지 않은 위안부할머니로 분장하여('할머니들의 메아리' 프로그램) 뼈아픈 목소리를 냈다.
차례를 기다리는 우리 회원들에게 뙤약볕과 더위를 걱정하는 말을 건네자, 돌아온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 참혹한 시간을 견딘 할머니들도 있는데, 이까짓 더위쯤이야 말없이 견뎌야지요."
채 회장의 미더운 대답이 건너온다. 역시 우리 한국시낭송예술원 회장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