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 이혼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20~30여 년을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고 함께 살아가는 데 갈등이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테니 말이다.
물론 '이혼'이라는 단어의 무게감 때문에 입 밖으로 직접 꺼내지는 않았더라도, 한 번쯤은 결혼을 후회하거나 이혼을 고민해 본 적은 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결혼 28년 차인 나도 이전에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남편과의 성격 차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결혼으로 생긴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일들, 그 선택으로 인해 포기해야 했던 일들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깔려있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지금이라도 이 결혼을 끝내버린다면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의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상상만 했던 이혼, 그 이면을 보여주는 드라마
요즘 이혼 전문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SBS 드라마 <굿 파트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던 이혼 파트에서 일하게 된 새내기 변호사 한유리(남지현 분)와 이혼 사건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베테랑 변호사 차은경(장나라 분)이 같은 사건에 대해서 서로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해결해 가는 방식을 지켜보는 게 매우 흥미롭다.
또 극 중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이혼 소송 사례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이혼을 하는지, 이혼 소송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도 알게 되고, 이혼으로 인해 발생하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간혹 드라마에 과하게 몰입하다 보면 불륜을 저지른 인물의 배우자에 감정이입이 되어 이혼을 응원하게 되기도 하지만, 사랑해서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부부가 서로 적이 되어 헐뜯고 싸우게 되는 걸 보며 '이혼은 어지간해서는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당연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비중이 큰 장면이 아님에도 유독 마음에 크게 와닿고 생각이 많아지는 장면이 있다. 이번에는 주인공 차은경이 딸의 양육권을 놓고 남편과 다투는 과정에서 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딸이 다니는 학원에 간식을 돌리는 장면이었다.
바쁜 엄마 대신에 아빠의 보살핌을 훨씬 많이 받고 자란 딸은 엄마에게 냉랭하게 대했지만, 엄마가 돌린 비싼 간식 때문에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받으면서 능력있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느끼고 엄마를 보는 눈빛이 다정하게 바뀌는 장면이 나온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집에서 밥을 꼬박꼬박 챙겨주는 엄마'와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아이에게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주는 엄마'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좋은 엄마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양육 지원 받지 못해 결국 일을 포기해야 했다
나는 과거 아이를 낳은 후 남이나 친척 혹은 가족에게 아이들을 맡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을 하며 아이들만 키워왔다.
항상 집을 지키며 아이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최선을 다해서 엄마 역할을 했다. 좋아했던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때는 그게 내 가정을 위해서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부터 직장에 다니는 친구 엄마들과 집에 있는 엄마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무릎이 튀어나온, 늘어난 바지를 입고 있는 엄마만 보던 아이들은 깔끔하게 차려입고 출근하는 엄마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누구 엄마는 어디 회사에 다닌다더라, 누구 엄마는 회사에서 차장이라더라, 누구 엄마는 친구 생일에 신형 핸드폰을 사줬다더라' 하는 말을 나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내가 해주는 된장찌개보다 친구가 엄마 회사 건물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었다는 스테이크를 더 부러워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더이상 내 보살핌이 필요 없게 된 지금은, 간혹 "엄마도 계속 일을 하지 그랬어?"라고 말한다. 추가로, 자기 주변에서 결혼을 준비하던 한 선배에게는 그의 부모님이 강남 어디에 아파트를 사줬다는 얘기를 전하기도 한다.
당신은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 엄마 역할을 소홀히 했다고 비난하는 남편에게, 드라마 속 차은경은 항변한다. 자신의 일은 자길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나아가 가족을 위한 것이었고, 아이가 더 윤택한 삶을 살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 장면을 내보내면서 드라마는 일견 당당하지 못한 듯한 차은경의 표정을 보여줘, 시청자들에게 그게 마치 변명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 강조하는 사회... 하지만
엄마의 성공으로 얻은 부를 딸이 누리고 있는 게 사실인데도, 과연 아이를 위한 일이었다는 말이 변명일 뿐일까? 그 딸이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해보면 엄마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지는 않을까? 엄마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이에게 훌륭한 가르침이 되지는 않았을까?
내 경우엔 선택하지 않은 일이고, 이미 지나간 일이기도 하기에 의미없는 가정일 수 있겠다. 하지만, 만약 그때 내가 아이 대신에 일을 선택했더라면 우리 아이들이 지금처럼 잘 자라지 못했을까 생각해봤다.
어쩌면 내가 열심히 돈을 벌어서 아이들에게 최고 수준의 지원을 해줬더라면, 그건 그것대로 아이들에게 폼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많은 엄마들이 직장과 아이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젊은 여성들이 결혼을 망설이고 출산을 포기하는 것도 어쩌면 이에 대한 해답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집에서 밥을 해주는 엄마도,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는 엄마도, 모두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 훌륭한 엄마들이다.
다만, 그 어느 쪽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고 느끼지 않고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사회적인 인식과 제도가 뒷받침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스토리에 실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