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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20대 남성이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편의점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범행 당시 편의점 내부 폐쇄회로(CC)TV 화면 캡쳐.
 한 20대 남성이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편의점 여성 아르바이트생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범행 당시 편의점 내부 폐쇄회로(CC)TV 화면 캡쳐.
ⓒ 연합뉴스 =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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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길이가 짧다(숏컷)는 이유로 "여성페미니스트는 맞아야 한다"면서 경남 진주의 한 편의점 여성 종업원에 폭행을 가하고, 이를 말리던 남성 손님도 폭행했던 20대 남성에 대해 검찰이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진주 편의점 사건'의 가해 남성인 ㄱ씨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이 27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이주연‧곽리찬‧석동우) 심리로 215호 법정에서 열렸다.

ㄱ씨는 2023년 11월 4일 새벽 진주시 하대동 한 편의점에서 여성 종업원 ㄴ씨(20대)에게 "머리카락 길이가 짧은 걸 보니 페미니스트다" "나는 (신)남성연대인데 페미니스트는 좀 맞아야 한다"라며 폭행하고 ㄴ씨의 휴대전화기를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또한 ㄱ씨는 이를 말리던 50대 손님에게 주먹을 휘둘러 골절상을 입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상해)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4월 9일 1심인 창원지법 진주지원 형사3단독 김도형 부장판사로부터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편의점 배상금 250만 원, 치료‧위자료 1000만 원 지급 명령을 받았는데, 이에 불복해 항소했었다.

항소심 재판의 쟁점은 ㄱ씨에 대한 심신미약을 인정할 것이냐 여부였다. 1심 재판부는 "초범에 심신미약의 상태였다"라고 해 인정됐다. 그러나 피해자와 여성단체는 심신미약을 인정하면 안 되고 '여성혐오' 범죄로 다뤄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날 공판에서 피고인은 '양극성정동장애'를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고인은 심문 때 "2022년 8월 25일부터 9월 13일까지 가족들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켰다" "영적 기운을 받아 혼자 길을 가다 바닥에 큰절을 하거나 이모를 엄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전에 아동학대와 친구들의 괴롭힘, 직장 괴롭힘에 시달려 왔다"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남성연대와 신남성연대의 차이를 모르고, 신남성연대에 가입한 사실이 없으며, 회원 가입 방법도 모른다"면서 여성혐오 범죄를 부인했다. 피고인은 수감 중 어머니한테 보낸 편지를 공개하면서 "무슨 말로 용서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지내지 못한다. 회복이 돼 사회에 나가면 성실하게 살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 심문 때 그는 "육군 병장 제대를 하고 회사에 다니며 정상 생활을 해왔다"거나 "경찰‧검찰 조사 때 여성혐오자로 보이는 진술을 왜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여성혐오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사는 구형하면서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 했던 진술을 부인하며 책임을 축소하고 있다"라며 "심신 미약이 아니다. 피해자는 귀를 다친 데다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며, 일상적인 생활이 어렵고, 피고인에 대해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라고 했다.

피고인 측 변호사는 최후변론서를 서면으로 제출하면서 "조사 과정이 담긴 영상녹화자료를 봤다. 피고인 조사를 할 때 진정제를 먹였고, 피고인은 꾸벅꾸벅 졸면서 조사를 받는 과정이 나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한테 유리한 진술을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27일 오전 경남여성회.여성의당 경남도당 비상대책위를 비롯한 43개 단체는 창원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주 편의점 폭행사건 가해자는 심신미약자가 아니라 여성혐오자다”라고 했다.
 27일 오전 경남여성회.여성의당 경남도당 비상대책위를 비롯한 43개 단체는 창원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주 편의점 폭행사건 가해자는 심신미약자가 아니라 여성혐오자다”라고 했다.
ⓒ 여성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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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측 이경하 변호사는 법정에서 의견진술을 통해 "피해자는 피고인의 폭행으로 인해 왼쪽 귀에 감각신경성 청력 손실이라는 상해를 입었고,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려면 상시적으로 보청기를 착용해야 하며, 아마 높은 확률로 피해자의 남은 생애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보청기 착용을 해야 할 정도로 중한 상해를 입었다"라며 "피해자(들)은 비단 신체적 외상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범행으로 인해 수면장애, 공황증상 등을 겪으며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변호사는 "이 사건을 지원하면서 계속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던 부분은 피고인의 범행동기"라며 "피고인은 범행 당시에도, 범행 직후 조사를 받을 때에도 반복해서 페미니스트 여성은 맞아야 된다, 정신교육을 시켜줘야 된다, 페미니스트 여성은 공격해도 정당하다는 여성혐오적 가치관과 이에 기반한 범행동기를 일관되게 밝혔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아가 자신이 맞아도 싼 여성을 때리고 있을 때 당연히 다른 남성도 이러한 여성폭력에 동참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피해자가 자신의 폭력에 가담하지 않고 피해자를 보호하자 어째서 같은 남자면서 내편을 들지 않냐고 격분해 피해자도 잔혹하게 폭행했다"라고 덧붙였다.

또 이 변호사는 "피고인의 공격성이 무작위적으로 표출된 게 아니라, '맞아도 싼 여성'과 '맞아도 싼 여성을 감히 도와주려 했던 남성'에게만 선택적으로 표출됐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라며 "피고인의 여성혐오적 편견과 이에 기반한 범행동기는 단지 피고인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으로 설명되거나 정신질환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범행양상이라고 일축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의 범행동기는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여성을 향한 뿌리깊은 편견과 차별적 시선, 혐오와 무관하지 않고 이로 인한 강력범죄 등의 사회적 폐단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라며 "피고인은 특정 여성은 남성인 자신이 때려서 교정을 시켜줘야 되고, 다른 남성도 당연히 이러한 교정에 동조해야 된다는 지극히 여성혐오적이고 성차별적인 사고방식에 기반해 이 사건 범행에 이르렀고, 만약 피고인이 조금이라도 여성을 남성과 같은 인격체로 생각하고 존중했다면 도저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범행동기로서 그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라고 부연했다.

이경하 변호사는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성차별적 편견과 여성혐오, 여기에서 비롯된 강력범죄가 만연한 현 세태를 고려할 때 피고인의 범행은 더욱 사회적 해악이 크며 그 파급력이 적지 않기 때문에 엄중히 다뤄 경종을 울릴 필요성도 적지 않다"라며 "피고인의 죄질에 상응하는 형벌을 선고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라고 했다.

여성단체 "심신미약자가 아니라 여성혐오자"

 여성단체들이 27일 오전 창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진주 편의점 여성혐오 범죄 가해 남성 재판을 방청한 뒤 함께 했다.
 여성단체들이 27일 오전 창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진주 편의점 여성혐오 범죄 가해 남성 재판을 방청한 뒤 함께 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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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에 앞서 경남여성회·여성의당 경남도당 비상대책위를 비롯한 43개 단체는 창원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진주 편의점 폭행사건 가해자는 심신미약자가 아니라 여성혐오자다"라고 했다.

이들은 "여성혐오는 심신미약의 사유가 될 수 없다. 가해자의 반사회적 범행은 그의 병력이 아니라 그의 선택으로 인한 것"이라며 "그의 범행은 양극성 정동장애인으로서도 전혀 충동적이지 않으며 숏컷 머리를 여성우월주의자로 생각하는 점, 나를 무시하는 여성은 맞아도 싸다고 생각하는 점, 맞아도 싼 여성을 폭행하고 있을 때 다른 남성도 폭행에 동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 등 모두 여성혐오 동기에 기인했다"라고 설명했다.

여성단체들은 "해당 사건의 피해자들은 범행에 취약한 대상이다. 이 사건의 피고는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격의 남성으로 160cm도 안 되는 알바생과 호리한 체격의 구호자를 폭행했다"라며 "사건의 발생과 대응 전반에 있어서 신체적 차이에 의한 유불리성, 취약성이 작용한 결과로 피해자들은 회복이 불가능한 장애를 비롯한 중한 상해, 생계곤란 등 일상생활에 커다란 손상을 입었다"라고 했다.

여성단체들은 "불특정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경우, 중한 상해, 비난할만한 범행 동기,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 등 여성혐오범죄를 비난할만한 동기로 적시하고 양형가중인자를 모두 적용하라" "공정한 법정을 만들어 대한민국 사법정의를 바로 세우라" "피고를 엄벌해 여성혐오범죄의 뿌리를 뽑아라"라고 촉구했다.

선고공판은 10월 15일 오후 2시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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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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