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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녹색 물을 튀기며 20여 대의 수차가 힘차게 돌아갔다. 마이크로버블기가 물속에서 공기방울을 뿜어대자, 수면은 흡사 녹색 양탄자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처럼 보였다. 양쪽에 난 6개의 구멍으로 연신 녹조물을 토해내는 녹조제거선은 녹색 페인트통에서 허우적대는 듯했다.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분수에서는 녹색물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취수장 앞에서 돌아가는 녹조
 취수장 앞에서 돌아가는 녹조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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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 천막농성장에서 잠시 나와서 녹조 조사를 위해 지난 26일 찾아간 대청호 문의취수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환경부와 수자원공사는 마이크로버블기, 수차, 수초, 녹조제거선, 녹조수거기 등 녹조 제거를 위한 수단을 총동원한 듯했으나, 그야말로 '코끼리 비스킷'에 불과했다. 녹조 물이 가득한 거대한 호수에서 녹색을 탈색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녹조곤죽된 450만 충청인의 상수원

450만 충청인의 상수원인 이곳. 수자원공사는 문의 취수장을 핵심지역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취수탑 바로 앞쪽에 설치한 마이크로버블기는 예전에 공주보에 설치된 것과 흡사한 것으로 이미 효과가 없다는 게 검증된 것과 비슷한 기종으로 보였다.

 녹조가 대 발생한 문의취수탑의 모습
 녹조가 대 발생한 문의취수탑의 모습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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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고 판단했는지, 2중, 3중으로 녹조가 취수탑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가물막이를 설치해놓고, 그 안에 수차 20여 기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수차가 일으키는 물결은 녹조를 밀어내어 다른 쪽으로 뭉치게 할 뿐 총량을 줄이지 못한다는 게 그간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게다가 녹조 속에서 검출되는 간에 치명적인 맹독 '마이크로시스틴'은 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에어로졸 형태로 확산되는데, 수차는 오히려 독성물질을 공기 중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할뿐이다. 설상가상으로 60m 높이의 물기둥을 만드는 대청호 분수는 녹조 분무기였다. 제2의 가습기살균제를 보는 듯했다.

 대청호 분수대의 모습 60m나 올라가는 분수다
 대청호 분수대의 모습 60m나 올라가는 분수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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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조의 원인은 크게 3가지다. 햇빛과 온도(수온 등), 그리고 인 등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오염물질이다. 햇빛은 사람의 힘으로 조절 가능하지 않다. 4대강 사업 이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인 등의 오염물질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남는 건 온도이다. 적어도 물이 흐른다면 끊임없는 공기마찰을 통해 수온이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댐과 보 등으로 정체된 물은 수온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녹조제거선
 녹조제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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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현장에서 대청호의 수온을 쟀다. 31.4도였다. 상온 29도보다 2도 이상 높았다. 녹조가 창궐할 수 있는 조건 하나가 충족된 셈이다.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은 국립부경대 연구진에 보내기 위해 이날 물을 채취했는데, 육안으로만 봐도 남세균(녹조에 들어있는 박테리아, 마이크로시스틴)은 100만 cells/mL인 녹조대발생 수준이었다. 이런 물을 60m 높이로 분사를 하고 있다니 놀라울 지경이었다.

녹조라떼의 강에서 환호성 지르며 물놀이... 끔찍

이날 점심을 먹고 오후에 찾아간 충남 논산 강경 선착장은 그야말로 녹조곤죽이었다. 이곳은 금강 하굿둑의 영향을 받는 곳이다. 차에서 내리자 악취가 진동했다. 강변으로 내려가니 녹조물이 가장자리에 죽은 베스가 녹조를 뒤집어쓴 채 죽어있었다.

잠시 뒤 선착장에서 물놀이 기구를 매단 모터보트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 강변으로 녹조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질주하는 물놀이 기구 위에서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끔찍했다.

 강경에서 물놀이를 하는 모습
 강경에서 물놀이를 하는 모습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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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수온도 쟀다. 상온은 30도. 수온은 이보다 4도 이상 높은 34.6도에 달했다. 이 정도면 목욕탕에서 나오는 온수 수준이다. 이곳의 남세균 수도 최종 분석 결과가 나오면 알 수 있겠지만, 대발생 이상의 결과가 나올 게 불보듯했다. 이런 강에서 물놀이라니.

 강경물놀이장에 핀 녹조의 모습
 강경물놀이장에 핀 녹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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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환경청(EPA)는 마이크로시스틴의 먹는 물 기준 1일 허용치를 1ppb(성인)로 정하고 있다. 미환경청(EPA)에서는 8ppb 이상이면 물놀이 등 물과 접촉할 수 있는 활동을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규정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도 기준(마이크로시스틴-LR)은 24μg/L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 있으면서 우리 환경부는 대체 뭐하는 기관인지 의심스러웠다.

이날 마지막 조사지점은 세종보 천막농성장 앞이었다. 세종보가 가동됐을 때에는 녹조가 창궐했던 곳인데, 수문이 개방된 뒤 6년 동안 녹조가 한 번도 관찰되지 않았다. 위의 물이 정체된 두 지점과는 달리 금강은 거세게 흘렀다. 수온을 쟀다. 예상대로였다. 상온은 31도, 수온은 이보다 2도 정도 낮은 29.1도였다.

이렇게 간단한 수온 체크만으로도 댐과 보가 수질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선 뒤 환경부는 보의 수문을 꽁꽁 닫아둔 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상류의 오염 처리에만 열중을 해왔고, 녹조제거선을 띄운다고 호들갑을 떨어왔다. 가장 손쉽고 비용이 덜 드는 녹조 제거 방식에는 눈을 감아왔던 것이다.

환경부는 뭐하나? '녹조 강' 물놀이 시설 전수조사해야

게다가 환경부는 세종보, 공주보, 백제보 금강의 보 지점의 경우 조류경보제조차 운영하지 않고 있다. 3개보에 대해서 조류경보 지점과 동일하게 주 1회 이상 조류 모니터링을 하나 경보발령은 없다. 금강유역에서는 상수원 지역을 제외한 갑천수상레포츠체험장만 시범운영하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실제로 환경부 조류경보제 보도자료에는 금강의 3개 보는 언급조차하지 않고 있다. 녹조가 매우 심각한 상황에서 수상레져시설이 운영되는 웅포, 강경, 부여는 그야말로 방치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환경부는 전국 강의 물놀이 시설의 수질부터 전수조사를 해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환경부 조류경보제 발령 지점
 환경부 조류경보제 발령 지점
ⓒ 환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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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현장 조사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인물은 썩었다'이다. 지난 정부에서의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을 모두 폐기처분한 뒤 16개 보에 물을 채워두겠다고 고집하는 윤석열 정부의 물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을 현장에서 또 다시 확인한 셈이다. 이런 상황인데, 정부는 최근에 14개 댐 후보지를 발표했다. 이는 지구 온난화로 고온 등 극한 기후가 예견된 상황에서 녹조 제조공장을 14개 건설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우리가 세종보 천막농성장을 지키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종보 하나만이라도 막아서 윤석열 정부의 퇴행적인 물정책 기조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충정이다. 우리는 세종보가 재가동된다면 수장될 하천부지에서 윤석열 정부의 퇴행을 122일 째 막아내고 있다.

이날 조사를 마치고 농성장으로 되돌아오는 길, 대청호의 녹조 분사기와 강경선착장에 울려퍼졌던 물놀이객들의 환호성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심난했다.

#조류경보제#녹조대발생#금강#세종보#천막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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