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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기자 한 명당 하루 평균 13건 이상의 기사를 작성한다. 오천 개가 넘는 신문사 수를 고려하면, 하루에 최소 65,000개의 기사가 인터넷을 떠도는 셈이다. 이러한 정보 홍수 속에서 우리는 글을 읽기만 할 뿐, 정작 깊이 생각할 여유를 잃기 쉽다. '톺아보다'는 "샅샅이 살피다"는 뜻을 지닌다. 한 가지 사안을 면밀하게 들춰볼 사람들과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싶다. 당신과 나, 우리가 사는 세상을 톺아보자.[기자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던 23년 '주요 결혼정보업체 직업등급표'다. S등급에는 3대로펌 변호사와 개업전문의, 판사 등이 있고, 가장 낮은 등급에 9급 공무원이나 중소기업 임직원 등이 배치됐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던 23년 '주요 결혼정보업체 직업등급표'다. S등급에는 3대로펌 변호사와 개업전문의, 판사 등이 있고, 가장 낮은 등급에 9급 공무원이나 중소기업 임직원 등이 배치됐다.
ⓒ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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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어떤 일을 돈 받고 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프로의식은 자부심과 책임감을 부여해 임무를 수행하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는 '사랑'에서까지 전문성(Professionalism)을 찾는 듯하다. 가히 '전문성 과잉'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지난해 직장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결혼정보업체 직업별 등급표'를 보면 직업과 학벌, 집안, 재산 등을 기준으로 의뢰자의 등급을 나눈 것을 알 수 있다. 그중 직업이 3대 로펌 변호사나 판사, 개업 전문의, 오백억 이상의 자산 보유자면 최고등급을 부여했고, 지방공기업 종사자나 9급 공무원에게는 가장 낮은 등급을 줬다. 비정규직, 프리랜서 생활자들은 아예 등급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이 등급표가 실제로 사용되는지는 알 수 없다. 몇몇 결정사에선 "등급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명까지 했다. 그러나 일부 업체는 암묵적으로 등급을 나눌 수밖에 없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다. 한 일간지 취재에 의하면 관계자가 "다소 과장이 있지만 자사가 정한 기준과 큰 차이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표에 얽힌 여론의 반응을 보면, 현실은 직업에 따라 어느 정도 등급이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위 등급에 속한 이들은 결혼 시장에 자신감을 드러낸 반면, 하위 등급에 속한 그룹은 결혼을 포기하려는 마음을 더 굳게 다지기도 했다. 몇몇은 "내 직업이 OO와 비슷한 대우를 받다니"라며 직업 간 갈등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등급표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업이나 재산과 같은 외부적 요소에 과도하게 집중하면서, 결혼과 사랑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에 점수를 매기기 때문일까? 우리나라 이혼율은 매년 세계 최고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 건수는 9만 2천 건이다. 혼인 신고를 안 한 부부까지 합산하면 실질 이혼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더구나 요즘 대중들 사이에선 누군가의 이혼 소식에 동정보다 "세금 아끼려는 수작"이라는 식의 의심을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언론들 또한 최태원 SK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 따른 위자료 계산에는 주목하면서, 이 과정에서 "사랑의 본질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노소영 아트나비센터 관장과의 이혼 소송 항소심 관련 입장에 대해 얘기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2024.6.17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노소영 아트나비센터 관장과의 이혼 소송 항소심 관련 입장에 대해 얘기를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2024.6.17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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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과 명예를 추구하는 사랑이 '뉴노멀'로서 자리 잡는 듯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현실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부부들의 가장 큰 이혼 원인은 여전히 '성격 차이'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서로 생활 습관이나 소통 방식을 맞추지 못한 게 크다는 이야기다. 결국 배우자의 재산과 명예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 사람 자체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사회가 정의하는 성공적 사랑과 그에 따른 기준이 높아진다면 결혼에 실패하는 인구는 계속 늘어날 터다. 이는 사회적 기대와 개인적 행복 사이의 충돌을 보여주는 예로써, 이제라도 사회가 사랑과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을 올바르게 교정할 필요가 있다.

사랑은 본래 아마추어들의 것이다. 아마추어는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 Amare에서 와 '사랑하는 자'라는 말이 된다. 관련어 Amiable(정감 있는), Amous(연모하는)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이에 <어원사전> 저자 마크 포사이스는 테니스에서 0점을 '러브'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예시로 덧붙였다. "사랑은 무(無)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러브는 Nothing의 유의어가 됐고, 1742년 무렵에는 이미 각종 게임과 스포츠에서 러브를 0점으로 간주했다." 즉, 사랑에는 아마추어처럼 미숙하고도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0의 관계'가 필요하다.

투박한 사랑은 미숙하기에(Amateurish) 성공하는 법이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올바른 사랑은 없다. 지나친 사랑이 없듯, 정상적인 사랑은 없다. 다만 당신과 내가 날마다 자리에서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나만의 사랑법'이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우리는 배우자의 능력이나 재산에 의해 내가 정의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또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연인에 의해 진짜 사랑이 완성된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그러려면 본연의 나 '자신'부터 인정하고 사랑하는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철학자 니체는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사랑을 사랑으로써 느낄 수 없다.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 아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했다. 사랑 문학의 대가 알랭 드 보통도 자신의 저서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이와 관련한 내용을 다뤘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의 영속성'에 관한 시나리오를 현수교에 비유했다. 결론적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누군가가 오랫동안 자신에게 애정을 바칠 만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 영속성은 타인에 대한 신뢰이자, 자신을 향한 애정의 문제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의 영속성'에 관한 시나리오를 현수교에 비유했다. 결론적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누군가가 오랫동안 자신에게 애정을 바칠 만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 영속성은 타인에 대한 신뢰이자, 자신을 향한 애정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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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영속성 시나리오는 현수교에 비유할 수도 있다. 다섯 기둥은 사랑의 확인을 상징하고, 냉담한 기간은 기둥 사이에 몇 미터씩 늘어진 케이블이다. 머리에 하는 키스, 애정 어린 눈길은 다릿기둥이고, 말 없는 식사, 응답 없는 전화는 기둥 사이의 케이블이다. (중략) 두 사람 다 따뜻하고 마음이 열려 있거나 그저 서로가 필요한 경우, 기둥이 촘촘이 박히게 되고, 애정의 신호가 지속되면서 기둥 사이의 케이블이 거의 늘어나지 않는다.

케이블이 얼마나 길게 늘어질 수 있느냐는, 자기가 사랑스럽게 타고났다고 생각하면 확인이 필요하지 않을 테고, 상대의 기둥 없이도 케이블을 수백미터 늘어뜨릴 수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해"가 부족함을 벌충하므로 "당신을 사랑해"란 말이 덜 필요하다. "당신이 왜 날 사랑하지 않겠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의 기본 태도다. "내가 나한테 느끼는 감정을 당신이라고 못 느끼겠어?" (167-168쪽)

내가 상대를 바라볼 때 상대는 나의 눈길에 담긴 생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알랭 드 보통은 "A가 B를 작고 사랑스럽고 피부가 보드라운 천사라고 생각하면, B는 작고 사랑스럽고 피부가 보드라운 천사가 된 기분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Love is Nothing" N포, 저출산, 비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다.이에 필자는 바란다. 모두 한 번쯤 "아무것도 아니다"가 현명한 답이 되는 유일한 순간을 경험하기를.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외부 기준에 매몰되지 않고, 순수한 사랑의 본질을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를. 서로의 결점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 자체를 이해하려는 과정을 갖기를. 관계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랑의 모습이라는 것을.

#사랑#결혼#이혼#알랭드보통#결혼정보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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