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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계 고등학교의 시 수업은 수능 국어 영역 문제 풀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런 수업 형태가 시를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일반계 고등학교의 시 수업은 수능 국어 영역 문제 풀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런 수업 형태가 시를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 이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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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사서 읽는 사람을 직접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어딘가에 그런 사람이 있을 테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 중 시집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나듯 한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고등학교 국어 시간도 사람들이 시를 멀리하게 만드는 데 큰 몫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자, 모두들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시 수업 풍경을 떠올려 보시라. 아마도 대동소이하리라, 다음과 같이.

맨 먼저 교사가 시를 낭송하거나 학생들에게 큰 소리로 낭송하게 한다. 시를 배울 때 학생들의 능동적인 역할은 대개 여기까지이다. 그다음부터는 오롯이 교사의 시간이다. 시가 교사에 의해 낱낱이 분석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교사에게 제공된 참고서에 의해서 분석된다고 해야 옳다. 교사는 참고서에 담긴 언어들을 학생들에게 전해 주는 메신저에 불과하다.

학생들은 교사가 전하는 참고서의 언어를 받아 적기에 급급하다. 학생들도 참고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받아 적기는 사실 별 쓸모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에서의 이런 시 수업 풍경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2023년 8월에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지금의 고등학교 시 수업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왜냐고? 시를 감상하고 즐기는 능력을 길러 주기는커녕 시라면 신물이 나오도록 하는 수업 방식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그런 수업 방식이 수능 국어 영역의 시 관련 문제를 푸는 데는 매우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설령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학생들이 시와 담을 쌓는 일이 벌어질지라도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참고서의 언어를 옮기는 형태의 수업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을 터이다.

한 편의 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 시를 배우는 학생들은 참고서에 쓰인 표준화된 해석만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시를 감상하고 즐길 수 없다. 학생들에게 시는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는,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텍스트일 따름이다.

오지선다형의 수능 국어 영역 시 관련 문제를 푸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고등학교의 시 교육을 제대로 된 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마땅할 텐데 그 누구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수능 국어 영역 시 관련 문제 풀이에 초점이 맞춰진 고등학교 시 교육을 바로잡으려면, 고등학교 시 수업에서 문제 풀이에 초점을 맞춘 수업을 금지하는 게 일책이다. 그런데 그러려면 수능 국어 영역의 시 관련 문제 출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대학 입시에 모두 다 걸기 하는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의 특성상, 수능 국어 영역의 시 관련 문제 출제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고등학교의 시 수업 풍경이 바뀔 리 없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수능의 모습을 바꾸어야 하니, 그 누구도 선뜻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 당국이 나서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 체계를 바꿀 생각을 해야 비로소 추진할 수 있는 일일 터인데 교육 당국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가르치는 학자들이 우리나라 고등학교 시 교육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고등학교 시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대학 입시에 종속되어 있는 우리나라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시 교육의 풍경을 바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시 수업 풍경은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후반과 내가 교직에서 물러난 2023년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교사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밑줄 쫙'을 외치는 풍경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 수업 풍경이 바뀌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1970년대 후반과 비교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잘 나가고 있다. 그래서 교사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시 수업의 풍경을 굳이 바꿀 필요를 느끼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교사가 참고서의 언어를 빌려 시를 천편일률적으로 해석하고, 학생들은 하릴없이 그 해석을 받아 적는 형태의 시 수업이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이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등학교 교과서와 참고서에 있는 대로 읽는가?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능 시험을 치르고 나면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가? 고등학교 3년 내내 참고서의 언어를 빌린 교사의 일방적인 시 해석을 지겹도록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시를 읽고 싶은 생각이 선뜻 들지 않으리라. 시를 보면 읽고, 감상하고, 감흥을 느끼는 대상이 아니라 해석하고, 분석하고, 오지선다형 시험에서 하나의 정답을 골라내야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리라. 지금과 같은 일반계 고등학교의 시 교육은, 시를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할 뿐이다.

시 한 편이 또는 시의 한 구절이 한 사람에게 큰 위안을 줄 수도 있다. 사람들이 시를 읽도록, 즐기도록 해야 한다. 자기 마음에 드는 시 구절을 자연스럽게 흥얼거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고등학교에서의 시 수업의 틀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수능 국어 영역 문제 풀이에 초점이 맞춰진 고등학교의 시 수업 풍경을 하루라도 빨리 바꾸자. 그러면 도서관에서 공원 벤치에서 시를 읽는 사람들이 늘어날 터이고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이 촉촉해질 터이고 세상은 조금 더 살아갈 만한 곳이 될 수 있을 터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고등학교#시#수업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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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교사로 재직 중. 2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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