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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立秋)와 처서(處暑)를 지나면서 대부분 집에서는 추석(秋夕)을 앞두고 조상을 모신 선산 혹은 분묘의 잡풀을 베는 벌초를 하게 된다. 이 같은 벌초 행사는 오래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하나의 풍습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좋은 생활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전통의 벌초 행사는 주로 한 집안의 남성들이 주축이 되어 나무를 벨 수 있는 낫과 톱, 갈퀴 그리고 삼태기 등의 도구를 들고 산소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잡풀과 웃자란 나무 등을 베어 산소 주변을 깨끗하게 하는 행사다. 단순히 산소의 풀을 베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가족과 친족이 함께 소통하며 조상의 산소를 돌본다는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벌초가 된 말끔한 선산 풍경 업체에 의뢰하여 벌초를 하게 되면서 가족들이 모여 벌초를 했던 옛날이 그리워진다.
▲ 벌초가 된 말끔한 선산 풍경 업체에 의뢰하여 벌초를 하게 되면서 가족들이 모여 벌초를 했던 옛날이 그리워진다.
ⓒ 이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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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점차 가족과 친족 단위의 벌초 행위가 줄어들고 전문적으로 벌초를 대행하는 업체가 늘어나면서 전통의 벌초가 지녔던 여러 가지 의미 중 산소의 풀을 베는 행위만 남고 나머지 의미들은 점차 퇴색해가고 있는 모양새다. 바쁜 일상에서 여럿이 함께 모이는 기회 역시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벌초에 대한 생각도 단순히 산소를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보통의 벌초 풍경에서 어른들은 주로 낫을 들고 힘 좀 쓰는 청년이 예초기를 담당하며 어린이들은 베어진 풀을 갈퀴로 긁어모아 삼태기에 담는 역할 분담이 이뤄진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이동할 때 낫과 예초기 등 위험한 장비는 어른들이 짊어지고 어린이들은 시원한 물이 든 주전자를 담당한다.

종종 벌초의 가장 중심이 되는 예초기를 담당하는 이들은 자신의 기량을 뽐내려는 의욕에 과도한 행동을 하는데 그때마다 어른들의 호통이 잦아진다. 그렇게 벌초는 세대 간 유쾌한 소통을 통해 나와 조상을 이해하는 현장 학습장소가 된다.

벌초가 끝난 선산풍경 선산 등성이에서 아랫쪽으로 바라본 풍경으로 조부와 중조부의 묘소가 보인다.
▲ 벌초가 끝난 선산풍경 선산 등성이에서 아랫쪽으로 바라본 풍경으로 조부와 중조부의 묘소가 보인다.
ⓒ 이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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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벌초 대행업체에 맡긴 탓에 그 시절 벌초 풍경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부친이 작고하신 이후 5년째 계속이다.

업체는 문자메시지로 벌초가 된 선산의 사진을 찍어 보내왔고 비용은 사촌들이 균등하게 나눠 지급하기로 했는데 올해는 칡덩굴이 너무 많아서 고생했다며 약속한 금액보다 10만 원을 더 요구하는 탓에 행사를 준비한 내가 추가 비용을 지급했다.

그렇게 올해 벌초는 업체로부터 받은 사진을 가족 단체방에 올리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더 이상 가족의 소통과 조상에 대한 현장학습 시간은 마련되지 못했다. 내년 벌초는 대행업체의 손을 빌리지 않고 우리 손으로 그 시절 벌초 풍경을 회상하며 가족이 함께 모여 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칡덩굴의 위력 칡덩굴로 뒤덮인 산소 주변
▲ 칡덩굴의 위력 칡덩굴로 뒤덮인 산소 주변
ⓒ 이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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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산소#선산#예초기#삼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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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그리고 조선중후기 시대사를 관심있어하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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