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서울국제도서전이 약 15만명의 유료관람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한 이유 중 하나는 지역마다 자리 잡은 동네책방 덕분이다. 동네책방이 작은서점 이상의 문화공간을 만들고 있다. 과거의 동네서점은 교재와 참고서, 월간지를 주로 취급했지만 요즘 뜨는 동네책방은 단행본이나 독립서적 위주로 개성을 추구하는 로컬 문화공간이다.
김민섭 작가가 자신의 고향에 대해 쓴 책 <아무튼 망원동>은 레트로 문고판으로 출간되어 공전의 히트를 쳤다. 망원역과 망원시장 사이에 자리 잡은 '작업책방씀'도 아무튼 망원동이다.
무더위가 한 풀 꺾인 지난 9일 오후 '작업책방씀'을 찾았을 때 윤혜은 작가는 책방 구석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2020년에 오픈한 '작업책방씀'은 올해 4주년을 앞두고 있다. 책방을 운영하는 윤혜은 작가는 책 <매일을 쌓는 마음> 과 <우리들의 플레이리스트> 2권을 잇따라 내놓았다.
동네 골목길에서 서점을 운영하기가 어렵다는 건 출판 관계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공감할 텐데, 일기를 쓰고 소설을 상상하면서 묵묵하게 책방을 운영해 온 비결이 있을까? 팻캐스트 '일기떨기'의 주인공 윤혜은 작가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책방 운영과 집필을 겸하시느라 바쁘실 것 같은데 요즘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올해는 상반기에 에세이와 소설이 함께 출간되어서 많이 분주했습니다. '작업책방 씀'으로 서울국제도서전에도 참가했고요. 여러모로 책과 책방을 부지런히 알리고 나니 가을이네요. 책방이 4주년을 맞이하는 계절이라, 그동안의 시간을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전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희 책방의 대표 프로그램이자 자랑인 '작가의 책상(매달 한 명의 작가를 초대해 작가의 신간과 작업 공간을 구현하는 전시)이 9월에는 저희를 주인공으로 채워지는 셈이죠."
- 24년 3월에 출간된 <매일을 쌓는 마음>은 어떤 책인가요?
"출판사 오후의 소묘와 함께 마음의 물성을 살피는 '마음의 지도' 시리즈로 작업한 에세이입니다. 저는 '쌓는 마음'이라는, 제가 살아온 삶의 태도를 마음으로 치환해 쓴 이야기들을 담았어요. 원고가 모일수록 제가 쌓은 것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요. '단지 내가 되어가는 지금'이더라고요. 그 작고 시시한 진리, 하지만 제대로 마주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거기서부터 무엇이든 시작해 볼 힘이 생기는 마음. 그렇게 이 책의 제목은 '매일을 쌓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 올해 4월 <매일을 쌓는 마음> 북토크가 있었는데요, 북토크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3월 30일에 '작업책방 씀'에서 첫 북토크를 열었습니다. 동업자와 함께, 또 직접 운영하는 공간에서 진행한 북토크라 감회가 남달랐어요.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이나 <아무튼, 아이돌>처럼 앞서 펴낸 에세이들은 한창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극심할 때에 출간된 책이라 대면으로 독자분들과의 만남을 가질 기회가 없었거든요.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표정을 보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어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 2020년 11월에 책방을 오픈해서 현재까지 운영하고 계신데, 오픈 당시의 심정에 비하면 현재의 마음가짐은 어떠하신지요?
"우선 햇살 가득한 한낮의 책방을 홀로 차지하는 기쁨만큼이나 이 공간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걸 점점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공간을 운영하고 수익을 내야 하는 일이니 당연한 말이겠지만요(웃음). 내 것이되, 결코 내 것이기만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커지고 있어요. 그래서 더 이 일을 아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개인 작업을 하다가도 책방에 들어오시는 손님을 맞이하는, 말하자면 자영업자로서의 스위치가 켜져야 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책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작업책방씀의 큐레이션 방식와 이유를 독자들에게 설명해 주세요.
"별도의 방식이 있다기보다는, 동업자인 이미화 작가와 제 취향이 반영된 책들로 서가를 채우고 있어요. 문학과 에세이를 좋아하지만, 책방 바깥을 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인문 및 사회과학 서적을 꾸준히 읽으려고 노력하고요. 환경과 동물에 관한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어른들과 함께 읽고 싶은 그림책이나 성인이 된 이들에게 더 추천하고 싶은 청소년 문학 등 각각의 책이 갖고 있는 주제가 흥미로우면 그때그때 새로운 장르를 더하는 걸 자주 시도하는 편이에요."
- 올해 11월이면 작업책방씀이 4주년이 됩니다. 책방 운영하는 동안 겪은 일 중에서 기대 이하와 기대 이상으로 구분해서 하나씩 말씀해 주세요.
"정식 오픈은 11월에 했지만, 계약서 상으로는 9월이면 4주년이 되는데요. 오랜 시간 독자이자 동네책방을 애정하는 사람으로 지냈을 때부터 책방 운영의 사사로운 부분들은 익히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낭만을 갖고서만 도전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기대 이하의 일은 없었습니다(웃음). 예상하거나 대비했던 만큼의 힘듦과 괴로움이 있었어요. 그 밖에는 모두 상상할 수 없던 기쁨만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시간이 갈수록 동업자와 여전히 우정을 지키며 책방을 함께 꾸리고 있다는 점이 가장 멋진 성과가 아닐까 싶어요."
- 최근에 청소년 소설 <우리들의 플레이리스트>를 쓰셨습니다. 책의 출간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창 시절 내내 실용음악 입시를 준비했거든요. 남들보다 '꿈'을 일찍 찾은 셈인데.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했던 경험도 빨랐던 것 같아요. 그 과정이 돌이켜보면 건강하지 못했어서, 스스로에게 오랜 상처가 남았고요. 그래서 저에게 꿈은 스스로 매몰차게 끊어 내버린 것. 그럼에도 오랫동안 내 곁을 맴돌았고, 그걸 알았지만 더는 해줄 있는 게 없어 몇 번이고 묻어버리다 끝내 잊는 데 성공한 것에 가깝거든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소설을 쓰려고 했을 때, 10대를 주인공으로 쓰고 싶었어요. 어떤 시절을 없던 척 하는 일을 이제 그만 하고, 제가 다시 경험하고 싶은 꿈 꾸기를, 그리고 도전과 포기의 과정을 새로 써보자고요. 그래서 이 소설에는 변해 가는 자신의 모습이 '우리'로 겹쳐지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나래, 이나, 소영, 유림, 정현과 함께 글을 쓰는 동안 제가 마냥 연약했다고만 여긴 시절에 깃들어 있는 용기를 알아볼 수 있었어요. 어떤 외로움은 고백하면 꿈이 된다는 것을 알려준 다섯 친구들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 올 여름의 무더위는 지난해와 다르게 확실히 지독해졌습니다. 폭염과 열대야를 어떻게 극복하며 보내셨는지요?
"맞아요. 스콜 식으로 내리는 소나기가 잦고 습도가 굉장히 높았잖아요. 이런 변화가 일시적인 이상 기후가 아니라 기후위기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날씨 자체를 견디기보다는 그러한 현실이 주는 무기력함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그럴수록 여름이 갖고 있는 특징들을 잘 누려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햇빛, 무성한 나무, 여름밤 공기, 매미 소리 같은 것들이요. 오히려 아직 여름에 남아 있는 멋진 장면들을 더 간직하려고 많이 걸어다녔습니다."
- 작가님의 일상을 책방운영과 글쓰기, 북토크 등의 외부 활동으로 구분한다면 세 가지 활동의 비율이 어떻게 되나요?
"말씀하신 카테고리에서라면 다 비슷한 균형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요. 책방 운영, 글쓰기, 그로 인한 외부활동 등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지점들이 있어서요. 오히려 제가 가장 많이 마음을 쓰는 것은 퇴근 후의 일상입니다. 집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스스로 밥을 지어 먹고, 건강하게 운동하고, 친구들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면서 일상을 잘 굴러가게 만드는 기본의 정도를 만드는 것이요."
- 동네책방 운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방 오픈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혼자서 책방 운영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제 조언은 무의미할 것 같아요(웃음). 그렇다고 동업을 권장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고요. 일단 책방 오픈을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저마다 책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책으로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이미 알고 계신 분들이겠죠. 책으로 얻는 수익이 얼마나 적은지에 대해서도요(웃음). 이런 말이 도움이 될 진 모르겠지만… 저는 책을 향한 마음을 기준으로 오픈을 결정했다기보다, 책방을 하다 망해도 제 인생이 망할 것 같지는 않아서 결심한 케이스랍니다."
- 추석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24년도 곧 저물어 갈 텐데요,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마무리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지요?
"새 청소년 문학, 또는 어린이를 위한 장편 동화 초고를 써보는 것이 계획입니다. 별도의 마감이나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올해 첫 청소년 소설을 출간하면서 마주하게 된 10대 독자들과 그들의 세상에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서 무슨 이야기를 더하면 좋을지, 계속해서 생각해나갈 계기를 만드는 하반기를 보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