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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경기도 가평,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여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기자말]
딥페이크로 온 나라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충격이 큰 건 대다수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십대이기 때문이다. 사실 딥페이크 사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N번방 사태를 다룬 추적단 불꽃의 책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에서 가장 눈여겨 봤던 부분이 바로 '지인능욕'이었다. 가해자가 지인이다 보니 비공개 계정을 운영한다 해도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데다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자인지조차 모를 수도 있기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여겨졌다.

딥페이크 뉴스들이 쏟아지자 터질 게 터졌구나 싶었다. 딥페이크 학교 지도를 보니 참담한 마음은 더 깊어만 갔다. 십대 지인들부터 머릿속에 떠올려 보고 아는 학교들을 검색해 보았다. 대다수의 학교가 포함돼 있었다. 당장 검색되지 않는다 해서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지금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부모 SNS 계정에 등장하는 아이들

 딥페이크로 떠들썩한데도 여전히 아이들의 사진을 동의 없이 올리는 양육자는 넘쳐난다.
 딥페이크로 떠들썩한데도 여전히 아이들의 사진을 동의 없이 올리는 양육자는 넘쳐난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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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마음을 안고 SNS를 열어 본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직 십대는 아니지만, 부모의 계정 속에서 울고 웃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이 타임라인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딥페이크로 떠들썩한데 여전히 다른 한쪽에서는 별일 없다는 듯 아이들의 사진을 올리고 있었다. 일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른바 셰어런팅(sharenting). 공유를 뜻하는 share와 양육을 뜻하는 parenting을 합성한 말이다. 이 신조어는 아이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모가 자녀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게는 딥페이크와 셰어런팅이 전혀 상관 없는 일로 보이지 않았다.

실은 나도 한때 셰어런팅이란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엄마였다. 아이들이 막 태어나 온종일 엄마로만 살아야 했을 때, SNS는 내게 대나무숲 같은 곳이었다. 매일 혼자 집에서 물고 빠는 아이들과 지내자니 행복하다가도 문득 적적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SNS에 단상을 올리며 아이들 사진을 게재했다. 아이들은 아직 어렸고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를 SNS에서 발산한 것이다.

그러다 몇 년 전 셰어런팅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아직 우리나라는 인식이 덜 되어 있지만, 해외에는 이미 널리 퍼져 있는 개념이다. 처음 이 단어를 사용한 건 2012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다.

2016년 캐나다에서는 대런 랜달이라는 당시 13세 소년이 부모가 자신을 당황스럽게 하는 유아 시절 사진을 10년 넘게 페이스북에 올렸다며, 부모에게 약 3억 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프랑스의 경우 부모가 자녀의 사진을 본인 동의 없이 SNS에 올릴 경우 최대 1년 징역에 벌금 4만 5000유로(약 5900만 원)를 부과하고 있다.

그래도 부모인데 너무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4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아이들의 사진을 수집해 범죄 대상으로 삼은 한 인터넷 카페가 경찰에 적발된 바 있다.

영국의 다국적 금융서비스 기업인 바클레이즈는 '2030년 성인이 될 현재의 아동들에게 일어날 신분 도용의 3분의 2는 셰어런팅에 의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대부분의 지인이 양육자인 내 SNS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 아이들 관련 검색어를 입력하면 수많은 얼굴 사진이 버젓이 노출되는 걸 볼 수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검색하면 아이의 이름과 얼굴, 사는 곳, 다니는 기관, 특징들을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얼마든지 도용하거나 악용할 수 있는 것이다. 메신저 어플의 프로필 사진도 안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웹 환경의 특성상 본인이 원치 않아도 누군가가 몰래 사진을 복사하거나 합성해 재생산할 수 있다. 부모가 원본을 지운다 해도 어딘가 복사본이 남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업체에 의뢰해 완전히 삭제한다 해도 일말의 가능성이 남는 게 사실이다. 찜찜하긴 하나 이게 바로 온라인 생태계의 현실인 것.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인보다 정치와 기술이 나서야 한다. 하지만 기술은 개개인의 인권까지 챙기지 않고, 정치는 온라인 생태계 문제 대처에 게으르다. 더 큰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양육자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과오를 반성하고 셰어런팅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십대가 가해자가 되는 것도 끔찍하지만, 아이를 보호해야 할 양육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 역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아이를 사랑하는 양육자라면 한 번쯤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사진을 게재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봤으면 좋겠다.

아직 어린 아이들의 경우 이런 상황 자체를 인식하지 못해 스스로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실제로 아이 사진을 올리면서 당사자에게 허락을 받는 경우는 몇이나 될까. 아이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고 한 개인으로서 입장을 가지지만, 어른들은 이를 무시할 때가 많다. 1989년 유엔이 아동권리협약을 선포하며 어린이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자신의 삶을 위해 스스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걸 강조했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인권은 자주 짓밟힌다.

내 아이는 과연 괜찮을까?

 아이들은 마땅히 보호 받아야 하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아이들은 마땅히 보호 받아야 하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 justchris87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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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런팅이라는 단어를 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아이들에게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용서를 빌었다. 앞으로는 절대 동의 없이 사진을 게시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따금 사진이 필요할 때면 아이들의 뒷모습 사진이나 명확히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운 사진 정도만 동의를 구하고 사용한다.

이후에도 미련이 남아 계정을 삭제하지는 못하고 검색할 수 없는 비활성화 상태로 오래 놔두었다가 얼마 전에는 아예 삭제해 버렸다. 게시물에 대한 아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졌다. 타인은 공개적으로 볼 수 없지만, 내 외장하드에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들을 내가 기억하는 한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아직 어린 아이들인데 너무 지나친 걱정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여전히 성범죄의 상흔이 여자에게 더 짙게 남는 점을 감안할 때, 남자아이 부모의 경우 디지털성범죄에 상대적으로 무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딥페이크 범죄의 대상은 대다수가 청소년이지만 초등학생 피해자도 분명 포함되어 있다. 피해자 다수는 여자지만, 남자 피해자도 엄연히 존재한다. 경각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제3조 아동에 관한 모든 결정에 있어 아동의 최상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한다."

"제12조 아동은 자신들과 관련된 문제 상황에 대해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으며, 아동의 의견은 존중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제16조 아동은 사생활과 가족, 집, 통신 등에 불법적 간섭이나 공격을 받지 않아야 한다."

'나는 괜찮겠지, 내 아이는 별 일 없겠지.' 안일한 생각이 화를 부른다. 채 활짝 펴보지도 못한 아이들이 자유를 박탈 당하고 권리를 침해 당하는 일만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마땅히 보호 받아야 하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그런 세상은 어른들이 만들어 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양육자 스스로가 묻고 답했으면 좋겠다. 아이를 진짜 사랑하는 길이 무엇인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딥페이크#셰어런팅#아동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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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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