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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각에서 정부의 조세재정정책의 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세금과 예산은 민주정치의 전제이자 결론이며,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기자말]
 2021년 12월 29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해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2021년 12월 29일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해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8월 29일 역사적인 헌법재판소 판결이 있었다.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에서 일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현행 탄소중립기본법이 2031년~2049년의 감축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것을 두고 환경권에 대한 침해로 판단했다. 이에 국회와 정부는 2026년 2월까지 법을 개정해 중간 감축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목표와 계획은 모든 일의 전제다. 그런 측면에서 헌재의 판단은 중요한 계기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목표와 계획을 똑바로 세운다고 해서 이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제대로 해낼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재정 문제다.

윤석열 정부의 '위반할 결심'

그럴듯한 계획이 있더라도 돈을 투입하지 않으면 그 계획은 종이 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된다. 온실가스 감축은 저절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최근 2년(2022, 2023) 연속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었지만, 태풍 힌남노 때문에 포항제철이 가동을 중단하고, 경기불황으로 공장을 덜 돌린 탓이 크다. 태풍이 제철소를 또다시 덮칠 것을 기대한다거나 저출생과 저성장을 방치하는 맬서스적 방식으로 탄소를 감축하는 것이 국가전략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는 재생에너지 비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하고, 화석연료 산업 종사자들이 다른 업종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산업을 육성하고 생계와 교육을 보장해야 할 것인데, 여기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모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은 보통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삶의 수준을 지켜내면서도 사회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하는 엄청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규모 재원을 안정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결의가 필요하다.

계획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4월 윤석열 정부는 탄소중립국가기본계획을 의결했다. 2018년 대비 40%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2030년 목표를 설정하고, 에너지·산업·건물· 수송·폐기물 등 각 분야별 세부 감축 계획과 목표 달성을 위한 사업들을 열거했다.

여기에는 정부의 재정투입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예산 사업 내역조차 공개하지 않는 한페이지에 불과한 계획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89.9조 원, 연간 18조 원을 쓰겠다고 적시하고 있다. 연도별로는 2023년 13.3조 원, 2024년 17.2조 원, 2025년 18.6조 원, 2026년 20.1조 원, 2027년 20.7조 원으로 증액되는 구조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계획만큼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2024년 예산안에서는 목표에서 3.2조 원 미달한 14.0조 원을 국회에 제출했고, 국회는 이것도 지켜내지 못해 최종적으로는 3.4조 원 미달된 13.8조 원으로 확정됐다. 목표에서 무려 20%나 미달한다.

총액으로 20%씩 줄일 수 있는 계획이라면 정부가 계획 자체를 약속으로 여기지 않거나 그 자체로 애초에 계획이 허술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다. 계획을 수립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중위)는 재정계획 하단에다가 '변경 가능'을 명시했다고 하겠지만, 이는 깨알 글씨로 계약서에 독소조항을 써 놓는 보험사의 행태와 다를 것이 없다. 이행을 하다 보면 계획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별다른 설명도 없이 총액의 20%를 날려버리는 행위까지 국민이 인정해 줘야 하는지는 심히 의문이다.

문제는 이런 삭감이 국가계획의 차질만이 아니라 지자체 계획의 불이행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광역지자체들도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대다수 사업이 국비-지방비 매칭 사업이다. 국가기본계획에서 국비 지원이 삭감되면 전체 사업비도 함께 줄어드는 구조다. 사업의 축소 및 중단 가능성은 덩달아 높아진다.

부자감세의 쓰디쓴 대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 세법 개정안과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 세법 개정안과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혹시 2024년의 일시적 현상일 뿐 앞으로는 계획대로 재정투입을 잘 이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그렇게 보기 어렵다. 이 정부가 스스로 만들어낸 강력한 구조적 제약 때문이다.

최근 3년간 이 정부는 연평균 20조 원 이상의 감세를 시도했고, 대부분 관철됐다. 여기에 경기부진에 따른 세수부진까지 겹치면서 법인세와 소득세를 중심으로 세수기반이 크게 주저앉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적자를 감내하거나 지출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수 조건 속에서 '기후예산' 역시 삭감 압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역대급' 세수결손에서 정부가 취한 조치를 생각해 보면 올해 벌어질 일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기금 여유자금을 헐어 보태는 것도 모자라서 응당 보내야 할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18조 6000억 원을 보내지 않는 방식으로 지방재정에 임의적인 불용을 종용하는 수법으로 해결했다. 올해 역시 20~30조 원 수준의 결손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제는 지난해의 외국환평형기금처럼 20조 원 단위로 대규모로 헐어낼 수 있는 기금도 마땅치 않은데, 어떤 수를 쓸 것인가? 노골적 혹은 은밀하게 이뤄지는 예산 불용은 올해도 기승을 부릴 것이다.

정부는 2025년 총지출을 2024년에 비해 20.8조 원 늘리기는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증액은 의무지출이고 재량지출 증액은 2.6조 원에 불과하다. 기후대응 예산은 당연하게도 거의 재량지출일 텐데(의무지출은 법적으로 지출이 정해지는 인건비나 사회복지예산 등이 대부분을 차지) 2025년 국가기본계획 재정투입 목표는 18.6조 원에 이른다. 지난해 13.8조 원에 비해 무려 4.8조 원, 34.8%나 증액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는데, 재량지출 증액이 2.6조 원에 그치는 제약 속에서 도저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정부의 중기재정계획을 고려한다면 탄소중립국가기본계획 예산은 '대폭 미달'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내몰렸다고 봐야 한다. 2024~2028 중기재정계획의 재량지출 연평균 증가율 1.1%를 적용해 기본계획 예산이 결정된다고 가정하면, 27년까지 5년간 투입될 재정은 69.4조 원에 그쳐 계획인 89.9조 원에 무려 20.5조 원이 미달하게 된다. 이번 상속세 개정안이 초래하는 5년간 18조 원의 감세액과 비등하다.

경합하는 예산 속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예산당국과 윤석열 정부의 시야에 '기후위기'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예산안 제출 시점에 발표하는 예산안 20대 핵심과제에 2024, 2025년 연속으로 '기후위기'는 들어가지 못했다. 기후 문제가 5대 과제도 아닌 20대 과제에조차 끼지 못하는 현실인 것이다. 도리어 감액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기후대응을 위해 얼마를 써야 하나?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8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8월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이 대답해야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부족하나마 나라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웠고 국민들이 '졌지만 잘 싸웠다'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다면, 기후위기 대응에 돈을 얼마나 써야 하는 것인지 막연하게가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 비용을 정부와 지자체, 민간금융과 정책금융이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도 마련해야 한다.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합의된 숫자가 없다.

국제기구들의 추산은 인프라 투자 중심으로 대체로 GDP의 5% 내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에너지 전환에만 GDP의 4.5~5% 투자가 필요하다고 하고,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GDP의 2.6~3.8%를 제시한다. 저명한 스턴과 스티글리츠의 지난해 연구는 고소득국가의 경우 2030년 투자 목표로 인적 자본 투자를 제외해도 GDP의 5.3%는 되어야 한다고 봤다.

GDP의 5%를 적용한다면 대한민국은 향후 5년간 연평균 130조 원은 써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돈을 정부와 민간이 분담해야 할 텐데, 앞서 언급한 대로 국가기본계획상 현실적인 예상 투입액은 연간 14조 원 언저리에 그치고 올해 수립된 광역지자체 기본계획상 지방비 투입 목표액은 연평균 9조 원 수준(환경부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 종합보고서)이다. 나머지 100조 원 이상의 투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금융투자를 연간 100조 원 이상 동원할 수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녹색금융도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다. 지난해 녹색채권 발행량은 7조 4000억 원에 그쳤고, 녹색대출은 제대로 된 통계조차 찾기 어렵다. 무엇이 녹색활동인지를 분류하는 K-택소노미가 만들어진 지 2년이 흘렀지만 실무안이 없어 현장에서는 전혀 활용되고 있지 못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녹색금융의 폭발적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일 수 있다.

지난 3월 금융위원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452조 원 규모의 정책금융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담대한 숫자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금융은 사업과 이익을 좇는 존재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실제로 탄소감축을 위한 프로젝트를 누군가 벌여야 하고, 여기에 투자를 할 만한 사업성을 만들어 줘야 452조 원이니 하는 숫자도 의미가 있게 된다.

태양광을 설치하는데 1부 이자를 받지 않으면 수지가 안 맞는다고 금융이 판단하면 몇십 조 여력이 있거나 말거나 그 돈은 투자되기 어렵다. 녹색금융을 활성화시키는 영역에서부터 정부가 시장조성자 역할을 자처해야 하는 상황이고, 애초에 이익이 날 수 없어 금융이 접근 불가한 영역에서는 정부가 대규모 재원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UNFCCC는 기후대응을 위한 민간:공공 재원 투입 비율을 7:3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를 대한민국에 적용해 본다면 연 130조 원 중 줄잡아 40조 원은 공공부문이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비하면 20~30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 정부와 지자체의 재정 투입은 그 질적 수준을 논하기 이전에 총액으로서도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성숙하지 못한 녹색금융 수준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이 정부에게 묻는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어디에 얼마를 쓸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기후재정#탄소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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