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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충북지역 노동자들이 928충북노동자기후정의행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릴레이 연재를 통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역에서 존엄하고 평등한 일터와 삶을 만드는 기후정의의 목소리가 더 많은 시민들에게 가 닿기를 바랍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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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 열대야"에 이어 "역대급 9월 폭우"가 찾아왔다. 폭염과 폭우는 가을을 집어 삼킨 '긴 여름'의 일상적 풍경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제 기후재난의 예고편은 거의 끝나고, 예측하기 힘든 본 편이 시작된 듯싶다. 최근 1년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평균 기온보다 1.5도가량 상승했고 "가장 더운 달" 기록은 계속 바뀌고 있다. 1.5도는커녕 2도 이내로 지구 기온 상승을 억제하는 것마저 힘겨운 과제가 되고 있다.

버거운 과제를 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온실가스 배출량부터 신속하게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화석연료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탄소 포집 및 저장(CCUS)이나 핵발전과 같은 우회로를 찾는 이들이 있지만 위험성, 경제성, 확산 속도 등의 측면에서 재생에너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수소연료 역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전제되지 않으면 화석연료를 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은 우회로에 기대는 것은 온실가스 감축을 지연시킴으로써 오히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더 힘들게 만들 따름이다. 화석연료를 빠르게 줄이면서 재생에너지를 과감하게 늘리지 않고 기후재난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이제 관건은 어떻게 재생에너지를 늘릴 것인가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전력산업의 구조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소규모 태양광 발전을 제외하면 전기는 대부분 발전 공기업이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 20여 년 간 전력산업은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무엇보다 민간 LNG 및 석탄화력발전소가 꾸준히 늘면서 발전 공기업의 점유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으로 좁혀 보면, 한국의 전력산업은 더 이상 공기업이 주도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대규모 해상풍력은 민간 대기업과 해외 자본이 주요 프로젝트를 선점한 상태다. 재생에너지를 빨리 늘리기만 하면 되지, 누가, 어떻게 늘리는지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재생에너지가 늘기만 하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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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과 바람은 누구의 것일까?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자주 접하게 될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주민 수용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인센티브가 제공되거나 기존의 이용권을 침해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 부분적으로 이뤄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햇빛과 바람의 이용권은 기본적으로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되고 있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광물이나 강물, 지하수와 같은 것들은 '자연의 선물'로 여겨져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독점적인 소유·이용을 억제해 왔다. 말 그대로 누군가 특별히 기여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자연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연장선에서 많은 나라에서 자연의 선물은 공적 개발을 원칙으로 하고 이익의 독점적 향유를 억제하는 제도를 발전시켜왔다. 이제 햇빛과 바람의 상업적 이용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햇빛과 바람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향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부적인 제도 구성의 원리와 운영 방법은 다르지만, 햇빛·바람 연금,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공유부 기본소득, (제주) 풍력자원공유화기금 등이 주목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대다수의 재생에너지 사업에서 햇빛과 바람은 "우리 모두의 것"이 아니다. 햇빛과 바람이 좋아 경제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민간 사업자들이 선점해 가고 있다. 대부분 공동자원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만큼 재생에너지 사업은 불로소득을 얻는 새로운 통로가 되고 있다. 나아가 RE100을 매개로 기업 간 전력구매계약(PPA)이 확대된다면, 좋은 입지 덕분에 발전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대기업이 독점하는 일은 더 빈번해질 것이다. 전력산업을 포함한 공공서비스의 사유화 과정에서 알짜 사업만 매각되었던 것과 같은 '체리피킹'이 재생에너지 사업에서 조금 다른 양상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 장기간 안정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민간 사업자에게 재생에너지의 가격 하락보다 중요한 것은 사업의 수익성이다. 이에 따라 전환을 위한 투자를 시장에 맡길 경우, 다양한 형태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부침을 겪는 것처럼 재생에너지 사업은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우리의 미래를 시장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공공투자를 토대로 공공 주도 전환을 추진할 것인지,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여기서 괜한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공공재생에너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현재의 발전 공기업을 있는 그대로 두자는 말은 아니다. 발전소와 송전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한국전력과 발전 공기업이 숱한 문제를 야기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동안 전력공기업들이 사회환경적 비용을 저평가하면서 에너지전환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공공 주도 전환은 이 문제를 우회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즉 공공재생에너지는 노동자와 지역주민, 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공기업의 사업 방향과 운영 방식을 대폭 수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한발 더 나아가면, 에너지 협동조합과 같은 공동체 에너지의 활성화를 매개로 공공(公共) 협력의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공공재생에너지의 길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여기서 돌파구를 찾는다면, 전력 공기업이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은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단적으로 탈석탄의 속도를 높이면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인한 고용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재생에너지 공기업으로의 변신을 통해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신속한 전환을 추진할 수 있다. 전환을 명분으로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꾀한다면, 그 출발점은 공공재생에너지다.

충북에서 시작하는 정의로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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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지역에는 폐쇄를 앞둔 석탄화력발전소나 대규모 재생에너지 시설이 없으니 공공재생에너지가 먼 곳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충북에서 시도를 하는 게 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부끄럽게도, 충북은 광역지자체 중 에너지 자립률이 가장 낮은 곳 중 하나다. 충북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이 수립되었지만, 수송 부문 탄소 배출량 증가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변화의 의지마저 대단히 약하다.

기후재난 시대를 마주한 상황에서 지역 에너지전환을 위한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변명을 내놓는 것은 너무 궁색한 말일뿐더러 현실과도 맞지 않다. 햇빛과 바람이라는 자연의 선물은 어디에나 있다. 당장 쓸 수 있는 CCUS 기술은 없지만, 한동안 "생명과 태양의 땅, 충북"을 외칠 만큼 충북 지역의 태양광산업 기반은 탄탄한 편이다.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전담 행정조직이나 지역에너지공사와 같은 기구를 만들고 에너지 협동조합 등 지역사회가 힘을 모을 수 있는 통로를 확대한다면, 공공재생에너지는 결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공공재생에너지로 한걸음 내딛으면 충북은 새로운 정의로운 전환의 모델을 만드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928 충북노동자기후정의행진을 통해 드러나듯이, 정의로운 전환을 모색하는 움직임은 이미 지역에 존재한다. 정의로운 전환을 내세운 행진이 충북에서 처음 개최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규모 에너지 시설이 밀집하지 않은 곳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사례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기대를 담아 말하자면, 928 충북노동자기후정의행진이 내딛는 만큼 정의로운 전환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9월 28일을 전후로 전 세계 곳곳에서 기후행동이 펼쳐지는 것까지 떠올리면, 충북노동자기후정의행진을 통해 기후위기에 맞선 지구적 행동이 더 넓고 깊어진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정의로운 전환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지금 이곳, 충북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

이제 전환의 싹이 숲을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아마도 동료 시민으로서의 관심과 참여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충북대 사회학과 소속입니다.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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