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기업에 계약으로 종속된 일명 '종속적 사업자'들에 대한 미국 쪽 자료를 찾아보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한 가지가 있다. 중소상공인의 권익 보호에 대한 미국 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내게 미국은, '사적 자치'를 중시하는 계약 문화와 자유 경쟁 시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중심지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사실이 상당히 의외였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는 바로 이 연재를 시작한 동기가 되었고, 그 일환으로 직전 회차에서 우리나라 자동차 보증수리 업계의 문제를 다루었다.
방치된 중소상공인 권익
지난 9월 28일, <한국일보>는 '멀쩡한 진단기 5년 마다 강매한 르노자동차, 공정위 조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는 르노코리아 자동차를 보증수리하는 정비업체 단체인 '르노코리아자동차전국정비사업자연합회'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르노코리아가 정비협력 가맹점을 운영하는 점주에게 CLIP(자동차 부품의 고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계)을 5년마다 강제로 재구매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번 신고의 주체인 점주 단체 관계자에 의하면, 신고 내용에는 <한국일보>에서 보도한 고가의 진단기 강매뿐만 아니라, 부품 밀어내기와 부당한 보증공임(자동차 수리에 투입되는 기술자의 기술료) 지급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담겼다고 한다.
먼저 필자가 직전 회차로 보도한 바와 같이 자동차 보증수리 정비업소에 대한 보증공임 차별은 비단 르노코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5개 제조사에 종속되어 사업을 영위하는 보증수리 정비사업자 모두가 같이 겪고 있는 문제다(관련 기사 :
"똑같은 일 하는데..." 보증수리 카센터 업주들이 문제제기 하는 이유).
상기 사진은 국내 모 자동차 기업이 진출한 각 나라에서 시행한 보증 공임률 자료다. 조금 복잡해 보이는 이 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맨 오른쪽의 '평균 임금 대비 보증수리 공임률'이다. 이 부분은 OECD가 조사한 해당 국가의 '시간당 평균 임금' 대비 '자동차 기술자의 시간당 공임 비율'이다. 이 공임은 전문가의 기술료와 정비소의 직원 운용 비용, 정비소 영업이익도 반영되는 만큼 평균 임금에 비해 높은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대한민국 공임률이 161%로 바닥에서 두 번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 아래에 벨기에(147%)가 있다. 그런데 벨기에 시간당 평균 임금이 우리보다 두 배인 4만8627원이다. 이를 고려하면 단순하게 벨기에 공임률이 낮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간당 2만 원대의 평균 임금을 가진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비교해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이탈리아의 공임률은 202%, 스페인은 258%로, 한국보다 각각 41%, 97% 가량 더 높다.
이로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국내 자동차 기업들이 자국의 자동차 정비 기술자들을 홀대하고 있는 증거이거나, 보증수리 정비사업자의 권익이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전자는 아닌 듯 하다. 르노코리아자동차전국정비사업자연합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르노코리아만 보아도 직영점 공임이 보증수리 수탁 정비업체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후자의 해석이 타당해 보인다.
"한국 카센터들은 정말 이 정도만 받고 보증수리 하나?"
한 외국계 자동차 보증수리 정비사업체 사장 A씨는 해당 외국계 기업이 한국에 진출하여 보증수리 공임을 설계할 때 '한국 카센터들은 진짜 이 정도 공임률로도 보증수리를 하는가?'라며 반문을 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르노코리아 보증수리 정비사업자들의 공정위 신고 내용을 보니 19년 전 발생한 프랑스계 대형마트 '까르푸'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까르푸는 납품업체에 대한 과도한 단가 인하 강요와 고압적 태도로 물의를 일으켰고, 2005년에는 계산원을 파견직으로 운용하면서 노동분쟁을 겪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이 사건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인기 웹툰 '송곳'의 소재였다. 이 웹툰(드라마)에는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초중등 교육 과정부터 노동자의 권리를 교육한다'라는 노무사의 설명에, 마트 본사 직원인 주인공은 '자신의 회사는 프랑스 회사이고 한국 법인 대표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할까?'라고 묻는다. 이때 그 노무사는 이렇게 답을 한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19년 전 시대 상황을 그린 이 명대사가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한지는 공정위의 판단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