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의 처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이 사안이 기사화될 만한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듭니다."
위는 매출 규모가 적잖은 중소상공인들이 자신들보다 더 우월적 지위에 있는 기업과 분쟁에 휘말렸을 때, 이들의 피해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신기할 정도로 비슷하게 보인 반응이다.
이를 직설적으로 말하면, 우리 사회에 영세한 사업자들의 억울한 사연도 차고 넘치는데, '벌 만큼 벌고, 사업도 할 만큼 하신 분들의 사연'까지 전달하기에는 내부 결정권자는 물론, 독자들의 관심이 염려스럽다는 뜻이다.
예전, 한 유명 문화 평론가가 방송에서 "호랑이의 자유를 토끼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라는 표현을 했다. 이는 일반 시민들이 거대 자본가나 권력자와 같은 사회적 강자의 권익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래서일까? 우리 사회는 종종 중산층 또는 '상위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권익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경향을 보인다.
사실 필자 또한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피해 사례를 간접적으로 접했을 때, '웬만큼 사는 사람들의 비교적 덜 간절한 호소' 정도로 여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편견인지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날 이후, (본사와 맞섰던 점주들) 모두 뿔뿔이 흩어졌죠. 이제 어떤 이는 식당을 차렸고, 누구는 택배에 뛰어들었고요, 예전 수리 경험을 살려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나는 지인 사업체에서 단순노동을 하고 있어요.
법원에 본사의 계약 갱신 거절에 대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기각되었어요. 당시 판사님이 '그만하면 (사업을) 오래 한 것 아닌가?'라는 뜻으로 말씀했을 때 솔직히 화가 났어요. 그동안 들인 내 모든 노력이 부정되는 것 같았죠. 물론 이후에도 먹고는 삽니다. 하지만 가슴 속 응어리는 없어지지 않네요."
이와 같은 말을 전한 이윤호씨는 작년 필자가 기사로 쓴 쿠쿠전자 서비스센터에 대한 본사의 대량 계약 갱신 거절 피해자 중 한 명이다(관련기사:
돌아온 건 모욕과 계약해지, 어느 쿠쿠 점주의 비극 https://omn.kr/228xu). 그는 쿠쿠전자 제품의 수리 서비스센터와 제품 판매 대리점을 20여 년 성실히 운영해 왔었다.
비록 소박한 서비스점(판매점)이지만 그가 직장인의 안정성을 포기하고 더 많은 시간과 땀 그리고 적잖은 자본까지 투자해야 하는 이 사업을 선택한 이유는, 은퇴 이후의 삶을 걱정하는 직장인들과 달리 몸만 괜찮으면 경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동안의 노력이 본사에 의해 폄하된 채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이룩한 그 모든 것을 잃고 노년의 나이에 낯선 환경 속으로 떠밀린 것이다.
그런데 '아디다스' 점주들의 피해는 이보다 더했다(관련기사:
"아디다스가 진짜 이랬다고?" 18억 손해 본 점주의 기막힌 사연 https://omn.kr/25kg3). 작년,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가맹점에 대한 부당한 계약 갱신 거절은 이런 분쟁으로는 드물게 KBS 추적 60분에 <"인기 상품은 전부 온라인에..." 남은 건 빚뿐이라는 아디다스 일반 매장 점주들의 눈물>이란 제목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날 이후, 점주들의 80%가 계약 해지되어 이제 한 30여 명 남았고요. 남은 그들도 근근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폐업자 중 예닐곱 명은 이미 파산했고요. 현재 진행 중인 사람도 있고 파산은 면했지만, 살던 집을 정리하고 더 작은 집으로 이사 간 사람들도 있고요.
사업 환경 변화로 회사가 정책을 바꾼다면 파트너들에게 사전에 방향을 제시해야지요. 그런데 정반대였죠. 본사가 같이 가자고 해서 점주들이 재투자까지 했음에도 갑자기 온라인 사업권을 박탈하고, 이에 항의하니 싫으면 '그냥 나가라'며 소모품처럼 취급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헌법소원까지 넣었습니다. 저 또한 벌써 3년째 적자 운영 중이니 폐업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도 폐업하면 이조차도 하소연 못 할까 봐, 울면서 적자 운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어떤 결론이 나도 저는 파산 신청하게 될 것 같습니다."
중년의 나이에 한때 성공한 사업가였던 아디다스 가맹점주 김정중씨, 그가 다수의 낯선 사람들 앞에서 흘리는 눈물을 보았을 때, 적어도 나는 그 눈물이 과장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의 눈물을 보기 딱 1년 전, 모 언론 기자와의 만남을 위해 방문한 아디다스의 다른 피해 점주의 표정은 그야말로 '넋이 나간' 상태였다.
그 또한 얼마 전까지 성공한 사업가로 가족과 주변은 물론 자신도 자랑스러웠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순식간에 무능한 사업가라는 오명을 쓴 채 자신은 물론 그의 소중한 가족까지 절벽 끝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디다스 피해 점주들 상당수는 수입 절벽에 몰렸고 그 중 몇몇은 파산까지 가는 재산상 큰 피해를 봤다. 그런데도 경제 질서를 감시 관리하는 정부 기관의 유의미한 도움은 받지 못하고 있다.
수년 언론에 오르내린 '쎈수학'의 피해 가맹지사장들 역시 같은 상황이다. 쎈수학 가맹점과 지사장들은 본사의 정책 변경으로 전원 폐업하는 피해를 봤다. 작년 9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피해 가맹 지사 간담회에서 증언한 전 지사장 K 씨는 대기업 출신이었다. 그는 본사의 부당한 정책과 일방적 철수로 2억 원 이상의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노력으로 일궈낸 재산과 지위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K 씨는 이번 사태로 재정적 손실을 넘어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은 듯했다. 기업은 법 위에 있는 듯 자신을 농락하며 지위와 재산을 빼앗았고 이를 통제해야 할 국가는 방관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제 이런 인터뷰에 관심 없어요. 이게 벌써 몇 년 되었죠? 그동안 의원들이 참석하는 간담에서 호소하고 언론에도 수차례 보도되었지만, 뭐가 달라졌나요? 본사가 처벌을 받았나요? 하다못해 그 법(현재 이들 권익 보호를 위한 일명 '가맹지사법'은 국회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이 통과되었나요? 제 사연을 주변에 이야기해 보면 모두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냐고 해요. 제가 보기에는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고 봐요. 여론을 끌 만한 소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무너지는 허리 중소상공인
평생직장이나 평생 직업을 보장하는 나라는 없다. 그렇다 해도 일반적으로 직장인이라면 수십 년의 노고에 대해 최소한의 위로와 보상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위로는커녕 모멸을 당했고 재산까지 잃는 상황에 놓여 있다.
214년 전 독일에서 출간된 소설 <미하엘 콜하스>는 당시 오작동하는 사법 체계와 상인과 농민에 대한 귀족 계급의 폭력을 다루며 사회적 불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 이는 현재 상황과 놀랍도록 유사하며 소설 속 주인공의 절규는 오늘날 피해자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법의 보호를 믿고 모은 재산을 들고 이 사회에 들어왔는데, 보호받지 못한다면 저 자신을 지키라고 제 손에 몽둥이를 쥐여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중산층'은 근대 산업 사회의 최고 발명품이라 불릴 정도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안정을 보장하는 필수 계층이다. 따라서 이들의 위기와 분노가 국가 안정을 흔드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정치인과 관료들이 하루라도 빨리 깨닫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