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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외국어를 배운 지 두 달차다. 이 외국어는 요가 아사나(자세) 수련 할 때 쓰는 선생님의 언어다. 한국어이지만 외국어만큼 새롭다.

코로나 시절, 집에서 유튜브 요가를 해본 적이 있다. 유튜브 선생님은 어떤 한 자세에서 '버티세요'라고 했다. 요가원에서 같은 자세가 나왔는데 선생님의 다른 문장이 꽂혔다.

"그곳에서 잠시 머물러 봅니다."

마법이 일어났다. 요가원이 갑자기 낯선 여행지가 됐고 나는 그곳에 묵어가는 여행자가 된 것이다. 단어가 주는 힘이었다.

'버티다'의 국어사전 정의는 '어려운 일이나 외부 압력을 참고 견디는 일'이다. 반면 '머무르다'는 '도중에 어떤 곳에 멈추거나 일시적으로 어떤 곳에 묵다'라는 뜻이다.

버티는 건 외부 힘이 작용하는 반면 머무르는 건 온전히 내 의지다. 여전히 팔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이게 온전히 내 의지라는 마음이 들자 '버티는' 것보다 덜 힘들었다.

 강아지들도 이리 머물고 있으니 나도 그래봐야지
강아지들도 이리 머물고 있으니 나도 그래봐야지 ⓒ 최은영

버틸 때는 숫자를 천천히 세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머물 때는 선생님 숫자에 상관없이 아사나를 완성하려고 한 호흡 더 기다리는 내가 있었다. 같은 동작이 말 한 마디로 달라지니 어찌 마법이 아니겠는가.

데미안에 나온 '나 자신에게 이르기 위해 내디뎠던 걸음들'을 시각화 하면 요가 아사나에서 머무르는 이 모습이 아닐까 싶다. 초급반 주제에 뭐 그리 거창하냐고 반문한다면 요가는 내가 몰랐던 내 몸을 들여다본다는 걸 먼저 말하고 싶다.

그 들여다봄이 결국 나에게 다시 오기에 데미안 구절이 소환됐다. 데미안을 읽을 때 그 구절은 추상적 관념이었다. 요가에서는 매우 실제다. 손가락 끝, 발가락 끝, 등과 엉덩이, 골반으로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팔을 뻗을 때 골반이 밀어줄 수도 있음을 요가로 배운다.

 운동하러 가서 외국어를 깨치는 중이다
운동하러 가서 외국어를 깨치는 중이다 ⓒ 최은영

초급반에서는 '머물다'를 배웠다면 기본반에서는 '충분하다'를 배운다. '사람 몸이 저렇게 된다고?' 싶은 아사나는 절대로 한번에 하지 않는다. 아주 기초부터 하나씩 쌓아 올라간다. 기초반에서 봤던 아사나까지 간 후 선생님은 "거기까지만 하셔도 충분히 좋고요. 선택지를 드립니다" 하면서 다음 동작을 설명한다.

헬스와 수영 선생님들에게는 '충분히 좋아요'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무게를 더 올려야 하고 속도를 더 내야 했다. 도저히 안 되면 아쉽다는 듯 다음에 하자고 했다. 내가 의욕에 넘칠 때는 그게 목표가 됐지만 어느 날은 부담감에 안 가고 싶었다.

요가 선생님들은 당최 욕심이 없는 건지 더 가자는 소리를 안 한다. 늘 충분하다고 한다. 그 말이 또 묘하다. 청개구리 본능을 자극한다. 머물러도 충분하다는데 나는 더 가겠노라 낑낑댄다.

스트레칭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터덜터덜 가볍게 온 몸이었다. "충분해요." 마법에 걸린 나는 한 스텝 더 하다가 온 몸이 탈탈 털린다. 몸은 털렸고 마음은 고요하게 발랄해진다.

요가어는 나도 모를 자발성을 슬금슬금 꺼내준다. 그 자발성은 발랄이 고요함과 손잡게 한다. 신묘막측한 외국어다.

 양초도 가부좌를 트는 요가원
양초도 가부좌를 트는 요가원 ⓒ 최은영

마무리 전에 선생님은 꼭 이 말을 추가한다.

"내면으로 의식을 가져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해주세요."

요가원에 온 것도 나이고 한 시간 수련도 내가 했는데 뭘 또 나한테 고맙지? 싶었다. 완벽한 한국어가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말을 주 4-5시간씩 두 달 간 들어서 일까. 갑자기 귀가 트였다. '나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온 몸 근육으로 알려준 내게 고마워졌다.

그날 처음으로 합장한 채 내게 감사 인사를 하는데 콧날이 시큰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요가는 셀프 돌봄의 한 방법이었다.

 임시 공휴일이지만 오전 수련은 있다고 해서 얼른 달려갔다
임시 공휴일이지만 오전 수련은 있다고 해서 얼른 달려갔다 ⓒ 최은영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많다. 복부를 지퍼 채우듯 잠그라는 말도 모르겠고 갈비뼈 사이에 숨을 채우라는 말도 모르겠다. 모르지만 기꺼이 더 헤매보려고 한다. 언젠가 귀가 열려서, 혹은 몸이 트여서 그 말을 반갑게 맞이할 거라는 기대를 한다. 그런 시간이 가지런히 내 앞에 쌓이면 나는 더 또렷해지겠지. 요가를 수련이라고 하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요가#외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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