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였던 통합사회 통합과학 수능 예시 문제, 26문항이 공개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교과가 수능과목으로 신설되다 보니 발표된 예시 문제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사탐, 과탐 교과군 내 개별 학문의 경계를 넘어 융합적 사고력 함양을 수능교과 신설 취지로 밝힌 이번 내용은, 2,3학년 때 배운 수능응시과목 2과목이 고1 때 배우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교과로 대체되는 셈이다.
이런 변화로 2025년 고등학교 입학생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입시에 대한 부담을 기존 수험생들보다 더 떠안게 된다. 실제 고1의 통합사회와 통합과학 과목에 대한 수능 부담은 없었다. 학생들은 1학년 때 탐구영역에서 배운 교양적 수준의 내용을 기초로 2, 3학년 때 본인의 흥미와 진로에 따라 4~6개 정도의 교과를 선택하여 심화한 후 그 중 2과목을 공부하여 수능에 도전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2025년 신입생부터는 1학년 때부터 국영수 외에 통합사회, 통합과학을 수능 교과로 받아들이고 학교생활에 임해야 한다. 거기다 1학년 때 배운 과목에 대해 2년이라는 공백기를 거친 후 수능을 치러야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에 발표된 수능 예시 문제의 유형과 난이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통합사회를 수능교과로 신설한 취지에는 학생들의 융합형 사고력 향상 외에 사탐 교과에 대한 지식의 편식 제거 및 일부 교과목에 대한 수능 응시 쏠림 현상 방지 등의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공개된 문제 유형을 접하면서 이런 변화의 목적이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22개정교육과정의 취지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든다. 또, 학교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융합적 사고력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부터 점검해보자. 보통 학교 현장에서 받아들이는 융합적 사고력은 같은 교과군 안에서 찾기보다는 다른 교과군, 예를 들면 사탐의 지식을 활용하여 언어영역/과탐영역/예체능 교과군 간의 융합을 시도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다른 교과군과의 융합수업을 교육과정 내에서 꾀한다. 따라서 융합적 사고력 향상을 교과군 외가 아닌 교과군 내에서 찾겠다는 시도는 융합적 사고력 향상의 실효성 면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두 번째, 수능교과 신설은 고교학점제의 근본 취지인 학생선택권 보장과 교육적 계통성에 역행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선택권 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교과선택권 보장으로 본인의 진로에 맞는 교과를 선택하여 자신의 진로를 구체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이번 수능과목 신설로 학생들은 고교학점제에서 주어진 선택권을 활용하지 않고 생존전략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탐구영역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진로선택 교과를 버리고 수능경쟁력 확보를 위해 탐구영역 안의 4개의 일반 교과를 선택하여 내용에 대한 심화 학습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
결국, 학생들의 진로를 위해 설계해둔 선택권을 그들의 생존을 위해 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교육적 계통성과도 맞지 않는다. 교육적 계통성은 기초적인 학습 내용을 토대로 그 위에 새로운 학습을 덧붙여 발전되고 통합된 새로운 내용을 형성하는 것을 뜻한다. 즉, 1학년 때 탐구영역에서 맛본 4개 교과에 대한 기본지식과 교양수준의 내용을 2, 3학년에 진로와 흥미에 맞는 교과를 선택하여 심화 발전시킬 때 적용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런 설계는 교육적 계통을 무시하는 것을 넘어 계통을 깨고 있다. 기초와 기본이 심화로 이어져 가던 틀을 거꾸로 돌려 뒤흔드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탐구영역교과 내 지식의 편식 제거라는 목적은 통합사회 교과 개설의 본래 목적과 22개정교육과정의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 특히, 통합사회는 학생 중심 활동 수업을 토대로 교과군 내의 융합적 사고력 향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교과이다. 즉, 기존의 교사 중심의 주입식 교육을 학생 중심으로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지식의 양보다는 학습 주제에 대한 수행과정에서 학생의 자기주도성, 능동성, 주체성, 협동성, 의사소통능력을 중시하고 그 과정에서 이뤄낸 문제해결에 대한 성취와 경험을 통해 학생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교과이다. 하지만 이번 통합사회, 통합과학 교과에 대한 수능교과 신설로 수능의 경쟁력을 위해 학생들은 많은 양의 지식을 필요로 한다.
실제 모의문제가 공개된 후 사교육계의 반응은 난이도가 평이하다고 평했다. 난이도 조절이 관건이라는 화두를 교육계에 던진 셈이다. 이런 반응을 학교현장에서 받아들인다면 수업에서 교과에 대한 지식의 양과 교과 내용에 대한 심화학습 위주로 학교 수업을 바꾸어야 한다. 이것은 22개정교육과정이 추구하는 미래핵심역량인 고등사고력(비판적 사고력, 창의성 등)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만든다. 게다가 학생이 갖는 주도성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해 학생을 배움의 능동적인 주체에서 수동적인 참여자로, 교수-학습 방법을 학생활동중심에서 교사중심으로 선회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네 번째, 탐구교과 내 지식의 편식 제거 및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교과목으로의 수능 응시 쏠림 현상 방지 목적은 학생들의 선택권을 훼손할 것이다. 사탐교과의 경우 난이도가 높은 교과, 그래서 학생들이 기피하는 교과는 단연코 경제과목이다. 사탐교과 4개 중 경제교과는 해마다 응시자 수가 절대적으로 낮아(2023년 수능인원의 1.1% 응시) 수능교과목 폐지가 22개정교육과정이 확정되기 전 이미 결정된 바 있다. 그런데 통합사회의 수능교과의 신설로 '죽었던' 경제교과가 제대로 부활한 셈이다. 학생들의 기피하는 교과, 학생들의 선택권을 무시한 교과가 난이도 조절에서 활용도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실제 그런 조짐이 통합사회 경제영역의 예시 문제에서 보여진다.
위의 내용은 2022년과 2024년 9월 통사 모의고사 문제 중 경제 영역의 평가요소인 재화의 구분과 특징, 그리고 시장실패에 대해 묻는 문항이다. 이것을 이번 수능 예시 문항과 비교해보면 기존의 모의고사 문제는 시장실패 중 외부효과의 의미와 사례를 묻는 정도였다면 수능 예시 문제에는 시장실패의 내용이 추가(정보비대칭)된 데다 외부불경제가 갖는 결과와 영향까지 묻고 있다. 이렇게 내용이 추가 및 심화되면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선택과는 별개로 주어진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난이도 높은 교과에 대한 편식 제거라는 목적하에 이뤄진 통합사회 교과의 수능 신설은 경제교과와 같이 수능 난이도가 높고 학생 선호도의 호불호가 극명한 교과를, 간접적으로 수능교과로 편입하고자 하는 의도로 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교직 경력 34년차에 들어서면서 몇 차례의 교육과정의 변화를 경험했다. 그 과정 속에 시대의 변화를 인지하고 사회교사로서 학생의 문제해결력과 비판적 사고력 함양을 목적으로 수업을 설계하고 진행해왔다. 하지만 이번 수능교과의 신설은 무엇을 기대한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것에 맞는 교육과정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와 함께, 아니 이보다 먼저 선행 또는 함께 변화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대학서열화의 폐지,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간의 상생문제, 수능 시스템의 변화, 실업계 학교 교육의 질적 변화와 이에 맞는 근로조건의 개선 등이다.
이런 변화 없이 미래교육을 대응하고자 하는 노력은 가성비 떨어지는 설계와 시행일 뿐이다. 때마다 주어진 교육과정의 변화 속에서도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묵묵하게 노력하는 교사들의 작업환경을 주기적으로 더이상 흔들지 말기를 당부한다. 교사들은 학생의 교육적 성장이 이런 교육과정의 변화에만 있지 않음을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