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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딱 30년이 되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 온 것일까.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김남주 정신이 필요하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지금 여기에서 김남주가 다시 살아 서 있는 모습을 그려 본다. 24인의 문학인들과 활동가들이 2024년의 한국 사회를 짚어 보며,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자 한다.[기자말]
연일 좋지 않은 소식을 듣는다.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해치는 남성에 대한 뉴스를 연달아 접하고 있다.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끝도 없이 낮아지는 때이기에 반대로 사랑을 구하게 된다.

사랑아, 제발 우리 세상에, 우리의 곁에 있어 주면 안 되겠니?
애원에 가까운 간절한 부탁 끝에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도 청해본다.
그가 뭔가 말해주기를.

*

당연하지만, 나는 김남주를 만난 적이 없다. 그가 전설적 인물이라는 말은 익히 들었으며 그의 시 몇 편을 읽은 적이 있지만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그러니 내가 그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주제넘을 수 있으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

01 2024년 8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김남주 시인 30주기 행사 <2024, 지금 김남주> 현장 스케치
012024년 8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김남주 시인 30주기 행사 <2024, 지금 김남주> 현장 스케치 ⓒ 이효영

30주기를 앞두고 김남주를 기리는 행사의 스태프로 잠시 참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김남주를 알아가는 게 도리라 생각해 그의 전집을 읽기도 하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어보기도 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서로 취향이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김남주를 좋은 사람이라 증언하며 30주기를 준비하는 데에 기꺼이 힘을 보탰다는 점이다.
그중 내가 평소 '내 어른 친구'라 표현했던 K 시인도 있었다. 그 또한 나보다 한참 윗세대이다. 그가 오랜 시간 세간의 존경을 받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나는 10년 전에 처음 알았다.

나는 문학청년이 아니었고, 소설 전공으로 뒤늦게 입학한 문창과에서 처음 시를 공부했다. 또한 운 좋게도, 내공도 없는 주제에 등단이 빨랐다.

이렇게 뭣도 모르는 내가 K 시인과 친하게 지낸다는 소리를 했더니, 초면인 운동권 선배가, 나를 아주 재수 없는, 그러니까 자신이 이렇게 권력자 친구가 있다는 걸 자랑하는, 약은 인간이라 하는 게 아닌가?

황당한 말이었고 엄연한 매도였으나, 앞으론 함부로 누구와 친하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 정도는 얻었다.

그러니까 김남주도, K 시인도, 감히 어린 것들이 언급해서는 안 되는 전설의 레전드였다는 걸, 무식한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실은 나는 전설이든 나라님이든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는 친구를 할 수가 없으며 그렇기에 권력자든 아니든 간에 친구가 별로 없다.

*

이렇게 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내가 김남주란 사람에 매력을 느끼는데, 그에 대해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하거나 호의를 표하기 어려운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전태일 열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들의 특수하고 특이한 성정이나 행동 방식에 큰 흥미를 느끼고 결국 호의를 갖게 됐다. 그런데 죽음은 사람을 신으로 만드는지, 살아있다면 친해졌을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를 사람들에 대해서도 친근히 말하는 게 눈치 보인다. 나는 그게 좀 답답했다. 나는 그들의 공적인 업적을 존경하는 만큼, 반대로 실생활에선 어느 정도 어리숙하고 괴짜인 사람들을 사랑한다.

한편으로 나는 친구가 마냥 편치만은 않다. 친구가 어렵기에 그들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알아도 알아도, 사람에겐 새로운 면모가 생기며, 그걸 알아야 내가 조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관계는 유지될 수 없다. 그건 나이와 성별을 떠나서 모든 관계가 똑같이 그러하다.

김남주를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마음이며 감정이다.
만나지 못했기에 위인으로 우상화하지 못하지만, 그의 작품이나 기록은 남아 있다.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호의와 동경은 품을 수 있다. 내겐 그에 대한 미화가 없다. 그렇기에 더 호기심을 갖고 호의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멀찍이 떨어진 자의 장점이라 본다.

*

친구들에 대한 궁금증처럼, 나는 세상을 떠나 우리의 곁에 없는 사람들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지금 그 사람이 살아 있다면 뭐라고 말할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남주에 대해 상상할 때, 그는 변함없이 다정하고 정의롭다. 그래서 서로 의견이나 작풍이 안 맞는 사람들도 입을 모아 그의 인품을 칭송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끝끝내 훌륭해서 저런 사람하곤 마음을 터놓고 싶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생전의 행보로 미루어 보았을 땐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살아 계신다면 '꼰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아직 아름다울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본다. 나는 무럭무럭 늙어가고 시시각각 꼰대가 되어 가는데, 그는 그대로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 나는 내 친구뿐 아니라 친구가 될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들도 존경하는 김남주에게 어떤 희망을 본다.

떠나간 분들이 가지는 특권은 무조건적인 신격화가 아니라, 이와 같은 희망의 가능성이라고 나는 믿는다.

*
02 위와 같은 행사에서 낭독 공연을 하는 시인 장미도, 서재진, 박다래, 소리꾼 최용석(좌측에서부터)
02위와 같은 행사에서 낭독 공연을 하는 시인 장미도, 서재진, 박다래, 소리꾼 최용석(좌측에서부터) ⓒ 이효영

나는 더 많은 후배 세대가 김남주를 친근하고 가깝게 여기길 바랐다. 그래서 더더욱 궁금해하고 알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바란 김남주 30주기의 모습은 그랬다.

그러나 이 글은 내 바람과 달리 김남주를 친근히 여기게 해줄 글이 아니라, 내 한탄에 그친 것 같다.

한탄과 고발이 과연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실은 둘 다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될 수 있으면 고발도 한탄도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그런 걸 김남주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김남주 정신을 알아가는 계기가, 김남주라는 사람에 관한 인간적 호의에서부터 비롯되면 좋겠다.

어쨌든 김남주는 매력적인 인간이며, 어쩌면 나 같은 범부는 이해하지 못할, 그러므로 늘 경외심과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할 만한 면모를 지닌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김남주를 감히 이렇게 소개해 본다. 그 사람 정말, 특이하고 이상하고 대단해. 단순한 투사가 아니라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야.

03 위와 같은 행사 종료 후 기념 촬영
03위와 같은 행사 종료 후 기념 촬영 ⓒ 이효영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시인입니다.

공동주최 : 김남주기념사업회·한국작가회의·익천문화재단 길동무
후원 : 더숲문화재단


#김남주#김남주30주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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