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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집을 꿈꾼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집을 갖고 싶냐고 물으면 절반쯤은 시뻘건 눈으로 '강남 아파트'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갈망해야 할 것은 고단한 하루 끝에 몸을 누일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house)만이 아니다. 피를 나눈 가족들과 하나가 되는 정신적인 공간으로서의 집(home), 더 나아가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근원으로서의 집은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설치미술가 박혜원은 오랫동안 '집'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삶과 죽음의 세계를 표현했다. 그가 오랫동안 주목했던 집은 인간이 가장 마지막에 머무는 집, 바로 무덤이었다.

작가는 무덤을 표현한 작업을 통해 가까웠던 사람들의 죽음을 묵묵히 애도했다. 애도의 시기를 거친 작가는 살아있는 동안 인간이 거주하는 집을 다양한 작업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이 '궁(宮)' 시리즈였다. 죽음에서 출발해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작가의 작업이 마침내 생의 근원인 자궁에 도달했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 '마이 디어 리틀 홈(My Dear Little Home)'을 통해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최초의 집, '자궁'을 선보인다. 10월 11일,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이태원 골목길에 자리 잡은 인가희갤러리에서 박혜원 작가를 만났다.

박혜원 작가 설치 작업을 끝낸 후 작품을 바라보며
박혜원 작가설치 작업을 끝낸 후 작품을 바라보며 ⓒ 박혜원

- 오랫동안 설치 미술을 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평면적인 형태의 회화에 익숙한 독자들을 위해 '설치 작업'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설치 미술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공간을 다루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흔히 보는 작품들은 캔버스 같은 평면을 활용한 겁니다. 설치 미술은 평면 작품들과 달리 공간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예술 분야입니다."

- 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다음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제가 한창 공부하면서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할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는 그때까지도 쪽머리를 하셨던 분이에요. 그래서인지 머리카락을 이용한 작업에 관심이 생겼어요. 인조 머리카락을 구해서 인형을 만들어 보곤 했죠. 그때의 작업은 지금과는 좀 다릅니다. 하지만 그때의 작업이 계기가 된 건 사실이에요.

영국에서 첫 전시회를 한 후 한국에 돌아왔어요. 미술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어유치원에서 미술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뽕잎과 누에를 보다가 소름이 돋았어요. 실을 뽑아낸 다음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던 누에가 다시 살아나오는 모습을 보고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유치원을 관두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실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 빨간 실을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여우비', '한 평의 집', '세한도' 등 여러 작품에서 빨간 실이 눈에 띕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대개 빨간 실은 '인연의 실', 혹은 '관계의 실'로 불립니다. 제게 빨간 실은 혈연이나 피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각적으로도 빨간색이 매우 강렬하게 느껴져서 마음에 듭니다."

- 집의 골조를 만든 다음 빨간 실로 감는 작업을 자주 선보이십니다. 작가님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또, 집에 붉은 실을 감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저한테 집은 단순히 하우스(house)나 홈(home)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근원적인 개념입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자궁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지금은 왕이나 황제가 사는 집을 '궁'이라고 부르는데요, 예전에는 일반 집에도 '궁'이라는 글자를 썼다고 합니다. 인간이 잉태되는 첫 집인 '자궁'과 사람이 사는 집인 '궁'이 결국은 연결된 거죠. 저한테 집은 사람이 태어나 살고, 또 죽는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곳입니다. 집은 삶과 죽음이 있는 공간인 거죠."

- 그렇다면, 인생은 엄마의 집, 즉 자궁에서 태어나, 우리가 흔히 '집'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살다가, 무덤이라는 또 다른 집으로 가는 여정이군요.

"네,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요. 집의 골조에 붉은 실을 감는 이유를 물어보셨는데요. 첫째 아이를 가진 후 자궁에 엄청난 피가 몰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혈관들이 그곳에 모여있는 느낌이 든 거죠. 그런 느낌이 집에 실을 감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얻는 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누에를 보고 영감을 얻은 적도 있습니다. 여자 작가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작업하는 게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해요. 그런데 저는 아이들한테서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임신과 출산, 생명의 탄생 같은 데서도 영감을 얻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그림, 말, 행동에서도 영감을 얻습니다.

아이들은 웬만한 예술가보다 훨씬 창의성이 뛰어난 것 같아요. 아이들이 가진 그런 매력 때문에 어린이를 위한 전시 프로젝트를 종종 진행합니다. 사실 어린이를 위한 전시는 모두를 위한 전시입니다. 부모들도 함께 오거든요. 가족을 위한 전시, 사람과 삶에 대한 전시,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예술 놀이터 만들기 말을 걸어오는 예술 첫 번째 워크숍
예술 놀이터 만들기말을 걸어오는 예술 첫 번째 워크숍 ⓒ 박혜원

-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해 다양한 전시 활동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전시를 소개해주세요.

"얼마 전에 '말을 걸어오는 예술'이라는 전시를 선보였는데요. 아이들이 참여해야만 완성되는 '참여형 전시'였습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아이들을 참여시켜 여러 차례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여러 연령대의 아이들이 원하는 미술의 개념을 함께 논의하고 고민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었죠."

전시 전경 말을 걸어오는 예술
전시 전경말을 걸어오는 예술 ⓒ 박혜원

- 이번 전시회 제목이 'My Dear Little Home'입니다. 어떤 관점으로 보면 좋을까요?

"이곳에 전시된 작은 집들은 임신 32~35주 정도 된 임산부의 자궁 크기로 만든 겁니다. 자궁은 모든 사람이 태초에 있었던 곳입니다. 그곳을 거치지 않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초의 집이 바로 자궁인 거죠. 엄마의 자궁을 닮은 작은 집을 보며 모든 인간이 얼마나 소중하게 잉태되고 태어났는지 다시 떠올리기를 바랍니다. 예술가로서 제 목표는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는 겁니다. 이 전시를 보는 분들이 잔잔한 감동을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 얼마 전, 브뤼셀에서 열린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선보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을 선보이셨나요?

"옻칠한 한지에 빨간 실을 바느질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외발 뜨기 방식으로 만든 전통 한지 위에 장인이 직접 옻칠한 한지를 이용해서 작업했어요. 전통 방식으로 만든 한지는 천년을 간다고 합니다. 거기에 옻칠을 하면 좀 더 오래 가죠. 오랜 세월을 견디는 한지 위에 궁을 표현해 천년의 시간을 같이 버티는 작업을 했다고 볼 수 있지요."

- 앞으로 예정된 활동이나 작품 계획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드려요.

"내년쯤 미국 워싱턴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어린이나 청소년과 관련된 작업도 좀 더 진행해볼 생각입니다."

박혜원 작가의 'My Dear Little Home'은 이태원 인가희갤러리에서 10월 30일까지 진행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Asian American Art Review에도 실립니다.기자의 개인 SNS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박혜원#설치미술#설치작가#전시#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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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사랑하는 번역가. 원작자의 글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새로운 언어로 재탄생시키는 직업적 특성을 살려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작품을 알기 쉬운 언어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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