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가슴에 70여 년 동안 배우지 못해 응어리져 있던 돌덩이들이 따뜻한 봄을 맞이하며 녹아내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올봄, 평균 79세 어르신들 15명이 증산초등학교 신입생으로 입학한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돌덩이처럼 뭉쳐있던 한이 풀리는 모습을 보면서, 학교라는 존재에 대해,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 든든함과 고마움이 몸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르신들의 행복은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꺾이고 말았다.
지난 7월 19일 김천교육지원청은 증산초등학교 분교장 개편 행정 예고를 하고, 8월 14일 증산초등학교 분교장 개편 행정 예고에 대한 주민들의 철회 요구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표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근거에는 '학령초과자인 어르신들은 정식 학생이 아니다'라는 것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과연 학령초과자인 어르신들은 정식 학생이 아닐까? (관련 기사 :
<인간극장>도 나왔는데... '79세 초등생'들 학교가 위기입니다)
경상북도교육청은 '적정규모 학교육성 계획'의 분교장 개편 기준(2016~2024)에 따라, '최근 3년간 신입생이 없는 학교', '학생 수보다 교직원 수가 많은 학교'는 분교장 개편을 권고하고 있다.
현재 증산초등학교 교직원은 13명이고, 학생 수는 22명이다. 그런데 학령초과자 15명을 제외하면 7명이 된다. 교육청은 타당한 근거도 없이 학령초과자를 학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어르신들의 가슴에, 잠시나마 풀렸던 그 응어리들이 다시 뭉쳐지고 있다. 이 응어리를 풀어달라며 초등학교 어르신들과 마을 주민 20여 명은 11월 5일 오후, '삶의 힘을 키우는 따뜻한 교육'을 구호로 내세우고 있는 경북 김천교육지청에 찾아가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11월 6일에는 마을 주민들이 대표단을 꾸려 '증산초등학교 분교장 개편의 부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20쪽에 달하는 인쇄물을 만들어 경상북도 도의회 교육위원장을 예방했다. 오는 11월 27일에 경상북도 도의회 교육위원회에서 증산초등학교 분교장 개편에 대한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학령초과자도 정식 학생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마을 주민 대표 김창국(74, 증산면 이장협의회장)과 대표단은 경상북도 도의회 교육위원장에게 준비해 간 20쪽 자료를 펼쳐가며, 학령초과자도 정식 학생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이유와 근거를 하나하나 설명하며 간곡하게 호소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첫째, 학령초과자는 의무교육 대상자로 당연히 초등학교에 입학할 권리가 있다. 학령초과자는 취학 의무 대상자는 아니지만, 의무교육 대상자이다. 취학 의무는 부모의 의무이지만, 의무교육은 모든 국민의 권리이다.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교육권'은 국민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또렷하게 밝혀놓았다. 그리고 의무교육 대상자의 나이나 기한을 제한하는 규정은 헌법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학령초과자는 마땅히 의무교육 대상자로 초등학교 입학이 가능하다.
둘째, 교육청에서 학령초과자를 초등학생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주요 근거로 들고 있는 것이,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 제51조(학급수ㆍ학생 수) 5호이다.
제51조 학교의 학급수 및 학급당 학생 수는 교육감이 정한다. 이 경우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학생 수에 포함하지 아니할 수 있다.
1. 유급생
2. 제82조 제3항 제2호 및 제3호에 해당하는 자
3. 재입학ㆍ전학 또는 편입학하는 자
4.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한 국가유공자의 자녀
5. 기타 지역 실정에 따라 교육감이 정하는 자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 51조는 사회적 약자, 또는 특별한 사정에 놓여 있는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해 학급의 정원을 초과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규정이다. 그런데 이 수혜적인 조항을 오히려 학령초과자를 학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기 위한 조항으로 악용하고 있다. 지역 실정에 따라 교육감이 학생 수를 정할 수 있다는 재량권을 취지에 맞지 않게 적용해 학령초과자를 학생 수에 포함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셋째, 적령 아동의 학습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증산초등학교에서는 학령초과자들이 적령 아동들에게 피해를 준다기보다는 서로 도우며 학교생활을 즐겁게 해나가고 있으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니라 마음 깊숙이 공경과 배려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런 행복한 경험을 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그만큼 따뜻해질 것이다.
설사 학령초과자들이 적령 아동들의 학습에 방해가 되는 미세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신적ㆍ육체적 능력이 부족한 자에 대하여도 적절한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헌법에 명시해 놓았다. 이에 맞는 교육과정을 융통성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청과 교육부는 길을 열어주고, 지원하고, 북돋워 주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령초과자가 입학하면 다른 지역에서도 따라 하는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한다. 그 나쁜 선례라는 말 속에는 교육세가 증가하여 국민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도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국민의 기본 권리를 위해 세금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교육 복지국가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니, 국가의 세금을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쓰는데 그 누가 말리겠는가?
이렇게 증산면 주민 대표단은 경상북도 도의회 박채아 교육위원장에게 1시간여 동안 주민들의 정성과 간절함을 모아 '증산초등학교 분교장 개편의 부당함'을 설명하였다.
증산면 주민 대표 김창국은 박채아 교육위원장이 주민들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신 데 대하여 더없이 고맙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뗏법을 쓰는 억지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어르신들의 행복한 삶을 찾아 주는 것이기에 우리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며 함께 온 대표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학령초과자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으며 당연히 학생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말을 듣고 어르신의 5명의 자녀가 각 100만 원씩, 500만 원을 학교발전기금으로 기부하였다. 얼마나 기뻤으면 그렇게 했겠는가?
이들은 산골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농사를 짓고 자식들에게 못 배운 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가르쳤다. 이제 그 자녀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 기꺼이 기부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진정한 효와 공경과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이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이지 않은가?
늦게나마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학교에 다니는 어르신들의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사람을 살리고 마을을 살리는 너무나 멋진 학교 정책에 감동했다. 마을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학교장(권경미)에게 그 고마움을 어떻게 전할지를 몰라 마음속으로나마 격하게 응원을 보낸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국가는 한 사람, 한 가족의 아픔을 모른 척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아픔이 녹여질 때까지, 사라질 때까지 국가가 할 수만 있으면 할 수 있을 때까지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책무이다. 어르신들의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