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뜨거운 민생 쟁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배달 플랫폼 수수료가 아닐까 한다.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음식점들은 이어진 물가 상승과 경기 악화에 더해 팬데믹 시기 급성장한 배달 플랫폼의 높은 수수료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자영업자 단체와 플랫폼 사업자, 공익위원들로 구성된 '배달앱 상생협의체'는 3개월간 11차례 논의에도 사실상 합의에 실패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자영업자들의 요구는 분명했다. 수수료는 5%로 인하, 자사 앱 음식 가격을 경쟁사 앱 판매가(또는 매장 판매가)와 같게 강제하는 '최혜대우'(또는 자사우대) 금지, 영수증에 자영업자 부담 항목 명시 등이었다. 그러나 플랫폼 사업자들은 수수료 인하에는 요지부동이었고 다른 요구에도 소극적이었다.
그동안 배달의민족(배민)은 매출 구간별 9.8%, 6.8%, 2%의 차등 수수료율을 고수했고, 쿠팡이츠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다가 10차 회의에서 배민 안에 편승하며 플랫폼 연대를 구축했다.
외국은 플랫폼 마음대로?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일부 국내 언론은 미국 배달 플랫폼 기업들이 뉴욕시 '수수료 상한제' 조례 위헌 소송에서 승리했다고 보도하며 국내 플랫폼 사업자를 옹호하는 듯한 기사를 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2023년 9월, 맨해튼 연방지방법원은 플랫폼 기업들이 제기한 위헌 소송에 대해 뉴욕시의 기각 요청을 거부했을 뿐이다. 이는 단순히 소송 진행을 허용한 것이며, 플랫폼 기업이 승소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수수료 상한제가 음식점과 배달기사의 수익을 떨어뜨렸다는 보도 또한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는 뉴욕시의 '플랫폼 노동자 최저임금제' 시행에 대한 플랫폼 기업들의 노골적인 맞대응에서 비롯된 결과다. 최저임금제 시행 이후 플랫폼 기업들은 주문 감소를 이유로 배달기사들의 앱을 일시 제한하거나 우버의 경우 6천 명의 플랫폼 노동자 접근권을 차단했다고 한다.
다만 외국의 중개 수수료가 30%에 이른다는 내용은 사실이다. 이는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이 자신들 수수료가 저렴하다는 근거로 자주 이용했던 자료다. 그렇다면 외국 음식점들은 우리보다 3배 높은 수수료를 부담하면서도 어떻게 식당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
매듭을 풀려면 매듭을 제대로 봐야 한다
외국 음식점은 배달 앱 주문 시 수수료를 반영한 '이중가격제'로 플랫폼에 맞서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제야 일부 프랜차이즈가 이중가격제를 시행 중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국내 배달 음식점들은 그동안 모든 앱의 음식 가격을 점포 내 가격과 같게 했다. 이유는 최혜대우 압박과 외국 대비 지나친 경쟁 환경이 이중 가격제 도입을 주저하게 했기 때문이다.
특히 프랜차이즈는 본사가 플랫폼과 직접 계약을 맺기 때문에 개별 점주들은 가격 결정권이 없다. 한 치킨 프랜차이즈 점주는 "본사에 이중가격제 시행을 요청했지만 다른 브랜드도 하지 않는 걸 우리만 할 수 없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성비를 무기로 한 개인 음식점들이 이중 가격제를 도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에 우리나라 배달 전문 음식점의 특수성도 작용했다. 외국은 접객 음식점이 덤으로 배달도 병행한다. 그러나 우리는 외식업에서 접객이 거의 없는 '배달 전문점' 비중이 적잖다. 이는 동네만 돌아봐도 알 수 있다.
국내 외식업계에서 배달 음식 전문점은 최소 자본 창업 시장이자 마지막 보루로 불린다. 사업 실패나 부업 등 갖가지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소자본으로 임대료가 싼 이면도로 상가에 때론 주방 설비만 갖추고 시작하기도 한다.
이런 특성상 창업자들은 반제품 수준으로 인력을 최소화 하는 식자재를 선택하게 되고, 이 수요의 공급자가 바로 프랜차이즈다. 그래서 코로나 시기에 신생 프랜차이즈 본사가 급증했다.
다듬어진 식자재는 일반 식자재보다 비싸고 본사 수익까지 더해져 가맹점 수익은 매우 낮다. 그런데 여기에 플랫폼이 숟가락까지 얹은 것이다. 음식점으로선 시쳇말로 플랫폼이 자신의 뺨에 붙은 밥풀조차 떼가는 형국이 되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플랫폼끼리 경쟁을 방해하는 최혜대우 중단과 영수증에 점주 부담 수수료 표기는 합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속내는 달랐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최혜대우 중단은 공정위의 결과가 나온 후 결정하겠다고 했으며, 영수증에 음식점 부담 비용 표기 요구에 대해서는 실제 금액 표시가 아닌 수수료 기준만 요율로 명시하겠다고 해 자신들 명분만 챙기는 것으로 보인다.
오랜만에 정치권과 행정부가 힘을 모아 시행한 민생 프로젝트 중 하나인 '배달음식점 구하기'는 실패로 끝날지도 모른다.
미국과 EU의 시사점
현재, 우리와 미국은 물론 서비스업이 발달한 대부분 국가에서 코로나19와 함께 플랫폼 기업이 급성장했고 그에 따른 성장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처는 확실히 달라 보인다.
미국과 EU 국가의 음식점들은 음식값 원가 요소인 배달앱 수수료를 즉각 음식값에 반영했다. 물론 고객들은 높아진 음식값과 배달비에 불만스러워했지만, 서비스에 따르는 비용으로 인식했고 불만과 비난의 화살은 플랫폼 기업에 돌렸다. 그래서 미국 시민단체는 플랫폼이 음식값 인플레이션을 조장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들 국가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긱워커'(초단기 노동자)라 불리는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나서고 있다. 미국 뉴욕시는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고 유럽은 이들 노동자에게 연금, 유급휴가, 고용보험 등의 권리를 부여하는 '플랫폼 근로 지침'을 승인했다.
이처럼 외국은 거대 자본을 앞세운 플랫폼 기업이 상대적 약자인 음식점과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각종 규제를 만들고 감시하고 있다.
2024년 현재 배달 플랫폼 문제를 촉발한 코로나19는 거의 종식되었다(적어도 통제 안에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함께 불현듯 경제 시장에 등장한 '플랫폼 기업'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사회적 면역력을 시험하며 각국 경제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유독 우리나라 대응 상황이 답답하고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