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권리의 위기, 그리고 이를 위해 노력했던 독자적 진보정치의 위기 국면에서, 성소수자 권리 보장과 평등한 한국 사회를 위한 진보정치의 역할과 실천들을 다시금 돌아보고자 합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이 있는 11월을 맞아, 독자적 진보정치를 선언한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의 진보 3당이 공동으로 오마이뉴스 기고를 진행합니다. 트랜스젠더 권리 보장을 위한 각 당의 정책들과, 성소수자 당사자인 당원들이 가진 삶의 경험을 함께 나누며 트랜스젠더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려 합니다.[기자말] |
그간 지워지고, 저자신의 이름으로 지상에 기입되지 못한 많은 트랜스젠더의 삶, 투쟁, 죽음에 애도와 연대를 표한다. 리타 헤스터를 비롯해 혐오폭력으로, 사회적 혐오와 제도적 공백으로 취약한 자리로 내몰려 죽음에 이른 이들의 삶과 상실을 살피며, 비통함 이후를 살아갈 길을 고민하며 글을 나눈다.
'그 무엇이 트랜스젠더퀴어를 오롯이 살아가는 존재로 만들 수 있을까?'
이 물음은 내가 소위 성전환증을 경유하는 트랜스젠더퀴어의 몸으로 5년간 비급여 항목 호르몬주사를 맞고, 트랜스젠더/퀴어 동료들을 마주하며 속으로 품어온 질문이다.
너무 다른 삶의 조건에서 닮은 면들을 발견하며, 달라서 아직 더 많은 생각을 놓치 못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국가기구가 이행하는 인구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없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에서조차 호명되지 않고 철저히 사적이라 치부되며 자리를 잃은 삶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폭우에 반지하방 집이 잠기고, 가야 했던 학교가 만드는 불화감과 괴롭힘으로 탈학교를 하고, 수술이나 호르몬치료(그리고 호르몬치료를 위한 F64.0 코드 진단)에 우선해 안정된 노동과 안전한 섹스를 더 고민하고, 성별재지정 수술과 등록부 정정 이후에도 삶이 시작된 것이냐 한탄하다가 먼저 먼 길을 떠난 이. 불안을 품고서도 성노동이나 원나잇을 통해 자기인정의 힘을 얻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꿈꾸는 이. 이런 면면들이 트랜스젠더가 살아가는 어제와 오늘의 삶이었고, 사랑하고 애증한 인연들, 그리고 연인들과 나였다
우리가 우연하게 서로를 만나듯, 트랜스젠더들은 우연하게 그리고 부단히 저마다의 경로를 만들어 왔다.
커밍아웃으로 원가정과 협의가 가능했던 이들과 집에서 쫓겨나 다시 집을 만들어야 했던 이들 사이 간극처럼, 트랜스젠더의 삶들 틈에도 조율될 수 없는 큰 장벽들이 있다. 그럼에도 공통의 삶, 사회적인 것이 트랜스젠더의 삶에 존재한다면 어떤 삶의 경로를 떠올릴 수 있는지 물음이 남는다.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들의 공통된 일상에 남은 빈틈을 기준으로 한다면, 즉각 이런 답이 나올 것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성소수자의 몸이 존재할 수 있는 교육과 화장실·교실이 있다면, 구직과정과 일자리에서 존재에 대한 의심으로 괴롭힘을 겪지 않고, 국민건강보험의 급여항목에 성별 불일치감에 의한 의료비용이 포함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덜 내몰리는 삶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미세한 변화에 대한 갈망에도, 이곳에 남은 건 '지금 여기'에 당도한 현실의 트랜스젠더들이다. 저마다가 놓인 삶은 자의적으로 규율된 공간에 갇혀있고, 원가정의 경제적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질적인 이들이라 치부되는 이 일상들은 기존의 사회를 덜 나쁜 방향으로 바꾼다하여 나아질 가능성은 희미해보인다. 사실 필요한 건 '존재하지 않는 삶의 자리였던 공백을 매우면서 이후의 삶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다.
공통의 사회적 토대를 위해 혐오와 차별을 금지하며, 사회 속에서의 삶이 가능케 하는 현실적인 생각들은 오랜시간 제도정치권에서 계류돼 왔지만, 여전히 필요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필수적이다.
학교를 비롯한 공공기관에서의 필수적 포괄적 성교육과 성중립화장실 의무설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과 인구조사에 있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따른 취약지점을 반영하는 것은 분명한 유효성을 갖는다. 바로 오늘도 이어지고있는 혼인평등을 위한 투쟁이 성소수자 전반의 삶을 덜 나쁜 방향으로 이끌고 평등사회를 가능하게 할 주춧돌이 될 것임은 명료하다.
하지만 물음이 남는다. 매워진 빈터가 토양이 될 때, 그곳은 오롯한 평등한 자들만이 남는 사회인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20년 실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5.3%는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과 혐오표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 바 있고, 이런 차별과 혐오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 손상되는 몸으로 이어짐을 보여줬다.
손상된 몸들과 손상을 입히는 구조를 살아온 이들이 함께 만들 수 있는 토양을 가능하게 할 조건은 사회공공의 기초적 삶의 보장 그리고 공통의 토양에서 서로 오염되며 만들어가는 삶이다.
오염되며 서로를 살피고 돌보는 토양은 시민을 소비자가 아닌 사회적 삶 속에서 다른 삶을 옹호할 수 있도록 하는 전환의 정치에서 촉발된다. 동네에서 편견과 시선을 비롯한 다층적 혐오로부터 자유롭게 교육과 노동, 주거, 의료 등에 대한 접근이 동질하게 보장되는 변화를 전제로 한다면 다른 상상과 더욱 치열한 변화를 추동할 힘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사회적 삶을 가능케 할 길을 한 정책에서 찾아보고 싶다. 바로 '성별 인정에 관한 기본법'이다. 몇달 전, 성확정 수술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부당함을 명시한 성별 재지정 판결 이전까지, 한국에서는 그간 지방법원의 자의적이고 재량적 해석에 기초해 성별 재지정이 이뤄져왔다.
성전환증 코드와 호르몬 치료를 비롯한 성확정 수술을 전제로, 트랜스젠더 개인에 큰 비용을 부담하게 했다. 누군가는 비수술 트랜스젠더이고, 누군가는 금전적 어려움으로 접근하지 못하거나 처방전 없이 구한 약으로 건강이 악화되기도 한다. 그리고 호르몬 치료를 하더라도 여성과 남성의 성별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나와 같은 이들도 있다. 기존의 성별 재지정을 위한 규율도구로서의 법이 아닌, 여성과 남성 이외의 성을 법률상 명시하고, 성별 인정의 조건으로 의료적 조치를 요구하지는 않되, 호르몬 및 성기수술 등 의료적 조치에 대한 지원을 명시하는 제도를 상상한다.
기존의 사회보장, 의료, 노동, 주거, 인구조사 등에 개입을 전제로 하며, 이에 따라 공공기관 내 성중립 화장실 설치(ex. 여성장애인화장실 - 성중립화장실) 성적 자기인지를 위한 포괄적 성교육을 공교육체계에서 보장할 기본법령으로서의 나와 다르고 닮을 이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간절히 바란다.
여러 공간에서 나는 성별교란자로 머물렀다. 여성호르몬을 맞고 머리를 기르지만 사회적 남성성을 비꼬아 수행하며 남성화장실을 침입하며 뭇남성들을 놀라게 만든 남정네였다. 한국 사회의 특성상 이런 성별 표현은 용인될 수 있다. 다만 꼬리표가 성가시다는 생각을 버릴 순 없다. 그리고 헛기침으로 화장실 입장값을 내는 일상도 이제는 피로하다. 어쩌면 이 무딘 일상의 양식으로 수면장애와 양극성장애라는 성소수자의 덕목을 감추고 지내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동안, 나보다 먼저 겪은 불화의 경험과 실패하는 젠더의 기술들, 그리고 담배를 알려 준 이가 떠올랐다. 트랜스젠더퀴어로 스물넷에 지상을 떠난 전 연인이다. 저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기입되지 못한 그의 생각이 지상에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의 존재는 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한 트랜스젠더 활동가의 말처럼, 우리는 단일한 생애각본으로 구성된 세계를 오염시키는 존재다. 우리의 존재가 지금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탓에 정보에 기초한 대안을 찾기는 어렵다. 평등과 존엄은 세속적인 것이라 일상적으로 숙의되고 훈련돼야 한다.
트랜스젠더의 몫이 없는 지금의 세계에서 다른 삶과 평등의 기술을 연마해온 정당이 녹색당이라 믿는다. 숫자가 될 수 없는 이들을 이름으로 기억해왔고, 서로를 옹호하며 버티지 않고 살아갈 길을 만들어 왔기에, 여전히 녹색당에서 다른 삶의 경로와 정치의 각본을 그려가고자 한다. 이 길이 너르고 단단해지도록, 당신이 이야기를 이어가주길 바란다.
[관련 기사]
[노동당]
'내 성별은 내가 결정', 지금 한국 정치에 필요한 발상 https://omn.kr/2ax8o
[정의당]
떠난 이들이 꿈꾸던 세상 실현, 그것이 우리의 추모 https://omn.kr/2azov
덧붙이는 글 | 글쓴이인 인해씨는 인천녹색당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