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민심이 매섭게 돌아서고 있다. 독단적인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졌다는 점을 아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11월 4일
"정부와 함께 변화와 쇄신으로 나가서 남은 2년 반 승리의 길로 함께 나가자." - 11월 11일
'조선제일검'이라 불렸던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가 이번에도 칼을 뽑지 않았다. 새롭지는 않다. 비상대책위원장 시절부터 반복된 그림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듯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고개를 숙인다. 용산 대통령실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당정의 하나 됨을 강조한다.
반전은 있었지만, 반전의 복선은 없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한동훈 대표는 원내 '친한계'를 규합해 나가면서 세를 늘렸고, '친윤계'의 견제에도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냈다. 밖으로는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인적 쇄신을 강조했다. 김건희 여사의 대외 활동 중단을 공개적으로 요구했고, 윤 대통령에게 국정 기조의 변화를 주문했다.
그런데 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이후, 그의 메시지가 말 그대로 '급변침'했다. 전당대회 시절부터 자주 언급하던 '국민의 눈높이'가 실종됐다. 이쯤 되면 칼집에 칼이 들어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갑자기 바뀐 한동훈의 메시지
이미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 '제로 콜라'만 마시고 돌아왔을 때부터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이었다(관련 기사:
두 손 짚고 한동훈 노려본 윤 대통령... 무슨 얘기 했길래
https://omn.kr/2an31).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전까지 한 대표와 그를 위시한 친한계는 용산 대통령실을 향한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높이고 있었다.
심지어 기자회견 직후에도 전반적인 평가는 매우 나빴다. 7일 오후, 조경태 의원은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서 "한동훈 대표께서 주장했던 제3자 특검에 대해서도 논의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지 않는가"라며 "우리 당도 정말 국민을 바라보고 저는 정치를 해야 된다. 용산을 바라보고 하는 정치는 끝내야 될 그런 시점에 오지 않았나"라고까지 이야기했다. 용산의 '역린'이라 할 수 있는 김건희 여사 특검법까지 거론한 것이다.
다른 친한계 인사 역시 당시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할 말이 없다. 정말 참담하다"라며 "내용이 없어서 어떻게 평가도 할 수 없다. 앞으로의 당이 걱정이 많다"라고까지 말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를 주변으로부터 적극적으로 청취한 것으로 전해진다(관련 기사:
추경호 여전히 "대체로 긍정 평가"...한동훈, 의견 청취중 https://omn.kr/2aw4r). 기자회견 다음 날에는 소수의 친한계 인사들과 비공개 조찬까지 하며, 기자회견 이후의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고 한다. 용산 대통령실과의 전면전이 임박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메시지의 수위를 놓고 돌아오는 월요일까지 장고에 들어갈 것이라는 추측도 많았다.
그런데 한 대표의 반응은 빨랐고, 내용은 의외였다. 그는 8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대통령께서 어제 현 상황에 대해 사과하고, 인적 쇄신, 김 여사 활동 중단, 특별감찰관의 조건 없는 임명에 대해 국민들께 약속하셨다"라고 수용의 자세를 취했다. 여기에 "민심에 맞는 실천을 위해서 당은 지금보다 더 민심을 따르고, 지금보다 더 대통령실과 소통하고 설득하겠다"라고도 덧붙였다.
한 대표의 메시지가 이렇게 나오자, 용산 대통령실도 이에 호응하는 듯 몇 가지 가시적 조치를 내놓았다. 소위 '김건희 라인'으로 지목된 인사 중 일부의 '물갈이'를 예고했고, 오는 해외 순방에 김 여사가 동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또한 친한계가 요구한 '특별감찰관' 임명 역시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며 공간을 열어줬다.
친한계 인사들도 일제히 수위 조절에 나서며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명태균씨 관련 의혹을 발판 삼아 14일 '김건희 여사 특검법 수정안' 제출을 예고하며 대여 전선을 강화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같은날 특별감찰관 문제를 놓고 의원총회를 열기로 한 가운데,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을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가져가려는 한 대표 측은 대응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한 대표 본인 역시 이번 주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자제하고 있다.
대신 공개 발언에서는 당정 화합을 강조하는 점이 눈에 띈다. 그는 지난 11일 '국민의힘·윤석열 정부 합동 전반기 국정성과 보고 및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의 성과를 나열한 뒤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추켜세웠다(관련 기사:
"대통령께서 약속하셨다" 한걸음 물러선 한동훈 https://omn.kr/2awa5)
그러자 다음 모두발언 순서였던 추경호 원내대표는 "제 말씀은 조금 전에 우리 한 대표께서 다 하신 것 같다.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말씀까지 담아서 우리 의원들 마음을 다 녹여내서 말씀하시지 않았나"라며 너스레까지 떨었다. 바로 직전까지 '패싱(무시·배제)' 논란까지 겪으며 갈등하던 투톱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관련 기사:
한동훈 또 '패싱'당했나? "추경호 용산 간 줄 몰랐다" https://omn.kr/2auq1).
사라진 '국민 눈높이'... 특감에 집중하는 한동훈
대표적인 친한계 인사이자 수석 최고위원인 장동혁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대표의 의중에 대해 "담화가 종결이 아니라 그래도 변화를 시작하는 출발이다"라며 "그러니 이제 그 내용들을 조금 더 구체화하고 신속하게 속도감 있게 결론을 내고 뭔가 성과를 낸다면 그래도 민심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다"라고 전했다.
"이제 시작됐고 뭔가 그래도 출발을 했는데 여기에서 자꾸 또 뭔가 이렇게 대립하고 각을 세우는 것보다는 이제는 그렇게 했던 그 힘들을 이제 이재명 대표의 선고가 얼마 남지 않았고, 또 위증교사 선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라며 "그 사이에는, 즉 대통령실에서도 성과를 내고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 시간을 기다려주고 그 기다리는 시간 안에는 그동안 흩어졌던 힘들을 대야 공세에 집중하자라는 쪽으로 지금 전략을 짜고 있다"라는 해석이었다.
문제는 친한계의 이런 기대와 달리 '국민 눈높이'가 그러지 못하다는 데 있다. 하나는 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이고, 또 하나는 특별감찰관 임명에 대한 부분이다.
친한계의 자의적 해석과 달리, 13일에 발표된 두 여론조사 모두 윤 대통령 기자회견을 향한 국민 여론이 매우 비판적이다. 쿠키뉴스 의뢰로 여론조사업체 한길리서치가 지난 9~11일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부족했다'는 응답은 73.5%(매우 부족함 63.3%, 조금 부족함 10.2%)로 압도적이었다(유선 전화면접5.8%, 무선 ARS 94.2% 병행, 응답률은 5.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 3.1%p).
<스트레이트뉴스>가 여론조사업체 조원C&I에 의뢰해 지난 9~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윤 대통령 담화 및 기자회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한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긍정 평가'가 25.7%에 머무른 반면, '부정 평가'는 70.6%나 됐다(휴대전화 100% RDD 방식, 응답률 3.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2%p)
특별감찰관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여당 내부는 특감을 마치 소위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해결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처럼 다루고 있지만, 당 밖에서는 특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훨씬 높다. 특감으로 특검을 막을 수 없는데도, 당장 특감에 당력을 집중하고 있는 한 대표의 선택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국민을 보고 가든가 아니면 같이 죽든가"
결국, 중도층까지 지지세를 확장하고, 수권 정당으로서 지지층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은 아닌 셈이다. 탈출하려는 '집토끼'만이라도 잡아보겠다는 궁여지책이다.
그러다 보니 차기 '대권주자'로서 한동훈 대표의 지위도 흔들린다. <스트레이트뉴스>가 조원C&I에 의뢰한 위 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를 물었을 때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고른 이들은 46.9%였다. 반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지지율은 17.0%에 그쳤다.
거기다 변수가 하나 더 생겼다. 이른바 '당원 게시판' 논란이다. 한 대표가 본인과 배우자 등의 이름으로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무더기로 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관련 기사:
진짜? 장예찬 "한동훈 가족 동일 명의 게시글 총 756개" https://omn.kr/2ayk0). 당은 동명이인일 뿐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의혹의 불길이 번지며 결국 추 원내대표까지 나서서 조사를 지시했다. 친윤계를 중심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는데, 이를 방어하는 친한계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한 대표가 이 문제로 궁지에 몰린 탓에, 용산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기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오마이뉴스>에 "그동안의 과정을 복기해보면 '약속대련'인 것 같다. 용산과 물밑에서 조율한 흔적이 있다"라며 "여권의 위기 국면이 조금 완화는 됐지만, 근본적인 개선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차별화와 공조 사이의 딜레마인데, 한동훈 대표는 이제 결정을 해야 한다"라며 "가장 좋은 그림은 윤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쇄신하게 만드는 것인데 그걸 지금 못하고 있다. 그러면 남은 것은 국민을 보고 가든가 아니면 같이 죽든가 하는 시나리오"라고 꼬집었다.
덧붙이는 글 | 기사에 언급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참조하면 된다.